[더나은미래 x 희망친구 기아대책 공동기획]
우리는 N년째 항해 중입니다 <1> 같은 말을 써도 다르게 들리는 사회
| 우리가 만날 이주배경청년 7명의 항해는 낯선 바다를 건너온 이들의 기록이자, 한국 사회가 향해야 할 항로를 비추는 나침반입니다. 부모의 이주로 시작된 여정은 이제 한 세대의 진로가 되었고, 그들의 커리어는 한국 사회의 포용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이주배경청년 당사자가 인턴기자로 참여해 함께 기획하고 취재한 ‘저널 액티비즘 프로젝트’로, 보도를 통해 변화를 모색하는 공익 저널리즘의 실험이기도 합니다. 더나은미래는 희망친구 기아대책과 함께, 이 청년들의 ‘서사’를 조명하며 다문화 시대의 ‘함께 사는 법’을 묻습니다. /편집자 주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중이 5%를 넘으면 그 나라를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분류한다. 미국·캐나다·호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2024년 4월 기준 한국의 외국인 인구는 260만2669명, 전체 인구의 5.07%.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다문화 국가 기준선을 넘어섰다. 그로부터 1년 반, 한국 사회는 얼마나 이들과 ‘함께’하고 있을까.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다문화가구원 중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19만3814명. 전년보다 1만2636명(7.0%) 늘었다. 2012년 조사 이후 매년 증가세를 이어오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학생 중 비율은 약 4%. 이들이 성장하면 바로 ‘이주배경청년’이 된다.
일반적으로 이주배경청년은 ‘본인 혹은 부모 세대를 통해 국경을 넘는 국제 이주를 경험한 청년’으로 규정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인구총조사를 토대로 이주배경청년 규모를 2010년 1만7000명, 2015년 2만7000명, 2020년 3만5000명으로 추산한다. 매년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이들의 성장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미비하다.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대부분 초등학생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한 교육 지원에 집중돼 있다. 2008년 제정된 ‘다문화가족지원법’ 이후 정부 주도의 정책은 지원 대상을 결혼이민자와 아동·청소년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 결과 25세 이상 청년층은 다문화 관련 통계나 실태조사에서 제외돼 왔다.
2020년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발간한 ‘경기도 이주배경청년 생활경험 및 정착방안’ 정책 보고서에서도 “이주배경청년은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에서도 배제되고 있으며, 한국 국적을 가진 다문화가족 자녀의 경우 청년정책 대상에 포함되더라도 실질적인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들이 청년기에 접어든 뒤 진로 탐색과 취업을 아우르는 체계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 ‘꿈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청년들
지난달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발표한 ‘이주배경아동 이슈리포트’에 따르면, “또래만큼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34%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알지 못해서’(34%)가 가장 많았다. 이어 ‘한국 회사들이 이주배경인을 선호하지 않아서’(26%), ‘한국 사람들의 차별·편견이 심해서’(12%) 순이었다.
신소연 기아대책 이주배경사업팀장은 “이주배경아동들이 10년 뒤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할 문제로 ‘취업과 자립’을 꼽았다”며 “이는 청소년기에 진로를 탐색하고 준비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대다수가 이주배경청년의 커리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로 ‘차별’이나 ‘비자 문제’를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로 이들의 첫 장벽은 ‘탐색의 결핍’이다. 언어·교육 환경의 공백 속에서 ‘꿈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청년이 된다.
16살 때 어머니를 따라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정세원(27·가명)씨는 다문화 대안학교에서 처음 한국어를 배웠다. 언어는 익혔지만, 한국의 진학·취업 문화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공업고등학교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가까워서 진학했어요. 전공 과목을 정해야 했는데 ‘시스템’이나 ‘검수’ 같은 단어는 처음 들었죠. 수업도 어렵고, 언어도 힘들어 따라가기 버거웠어요. 친구들이 답답해하거나 불편해할 때도 있었어요. 공고를 졸업하고 기계과 대학에 갔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했죠.”
대학 자퇴 후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인터넷을 검색하다, 20만원을 주고 구직 알선을 받았다. ‘진학’과 ‘취업’ 모두 배운 적 없는 세계였다.
◇ “장점과 단점을 써보라는데, 뭐라 써야 할지 몰랐어요”
북한에서 이주한 허신아(23)씨 역시 비슷했다. 그에게 학교는 언어와 문화의 벽이 교차하는 낯선 공간이었다. 그는 “교육 체계가 달라서 공부가 어려우니까, 고등학교를 울면서 다녔다”고 회상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진로에서도 이어졌다.
“취업 준비할 때 서류에 장점·단점을 쓰잖아요. 저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나의 장점이 뭐지? 단점은 뭘까? 그런 걸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서류는 연습으로 가능했지만, 면접은 또 다른 벽이었다. “내가 말할 때 사람들이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그 불안이 자신감을 삼켰다.
신혜영 서울시글로벌청소년센터장은 “이주배경청년에게 취업 이후의 사회생활은 또 다른 문제”라며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상언어와는 다른 사회적 맥락과 미묘한 뉘앙스, 즉 ‘사회생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사회성은 함께 일하고 부딪히며 익히는 과정에서만 길러진다”며 “이 같은 이유로 내부 인턴십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주배경청년들은 같은 한국어를 써도 ‘사회적 언어’를 배우지 못한 채 사회로 들어선다. ‘공고’의 의미, 이력서 항목의 맥락, 면접에서의 암묵적 규칙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결국 언어를 넘어선 ‘문화의 문법’을 배우지 못하면, 기회의 문턱에서도 길을 잃는다.
김혜미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어려운 것은 모든 청년 세대가 겪는 공통된 문제지만, 이주배경청년에게는 언어와 사회적 자원의 한계라는 이중의 어려움이 따른다”며 “한국에서 성장하고 정주를 희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만큼,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의 논의가 주로 이주배경아동·청소년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제는 청년으로 성장한 이들의 삶을 살피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김지영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