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화면해설 자막 덕분에 더 깊이 느꼈어요”

시청각장애 학생 200명, 화면해설·자막으로 같은 장면 공유
“배리어프리는 특별한 서비스 아닌, 모두의 기본권”

“청각장애인용 자막이 있어 두 주인공의 듀엣 장면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었어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상영관 곳곳에서 밝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난 1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넷플릭스 ‘배리어프리 상영회’. 서울맹학교와 서울애화학교 학생 200여 명이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함께 관람했다. 이번 상영은 자막과 음성 해설을 결합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버전으로 진행됐다. “연기가 사라지고 사자보이즈가 춤을 추며 등장한다”는 식의 장면 설명 음성이 흘러나왔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도 함께 제공됐다. 화면 해설과 자막이 동시에 깔리자 학생들은 ‘듣는 영화’이자 ‘보는 영화’를 즐겼다. 감정선을 따라 함께 웃고, OST ‘소다팝’이 흐를 때는 어깨를 들썩이며 리듬을 탔다.

지난 1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넷플릭스 배리어프리 상영회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화면해설 성우와 헌트릭스의 한국어 더빙 성우진들이 오프닝 무대에 올랐다. /김지영 인턴기자

수어 강사이자 배리어프리 콘텐츠 모니터 요원으로 활동 중인 최하늘 씨(청각장애)는 “자막이 노란색으로 표기돼 보기 편했고, 영어 가사에 전부 한국어 번역도 병기돼 있어 좋았다”며 “이런 서비스가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장 통역을 맡은 ‘공인수어통번역 잘함’의 김홍남 대표는 “기존 배리어프리 영상들은 불필요한 설명 자막이 많아 몰입을 방해했는데, 이번 버전은 노래와 대사에만 집중하도록 자막을 재구성해 훨씬 자연스러웠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내 대형 공연은 여전히 접근성이 낮다”며 “한 시즌 몇 회차만이라도 배리어프리 상영이 적용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넷플릭스 콘텐츠 80% 청각장애인용 자막 지원, 누적 화면 해설만 3만 시간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장벽(Barrier)과 자유(Free)를 합친 말이다. 장애인이나 노인, 어린이 등 누구나 불편 없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물리적·제도적·심리적 장벽을 없애자는 운동에서 출발했다. 영상 콘텐츠의 경우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장면·표정·동작을 음성으로 설명)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대사·음향·화자 정보를 문자로 제공)을 추가해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같은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어 청각장애인용 자막과 화면 해설을 처음 도입했다. 단순한 대사 표기를 넘어, 소리의 크기·음색·음향 효과까지 문자로 표현해 청인과 유사한 시청 경험을 제공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은 인물의 표정, 동작, 배경 등을 음성으로 전달한다.

넷플릭스 배리어프리 사례집 중 기능 소개 페이지. /넷플릭스

현재 넷플릭스 전체 콘텐츠의 약 80%가 청각장애인용 자막을 지원한다. 자막은 작품별로 최대 62개 언어, 화면 해설은 최대 17개 언어(‘오징어 게임’은 19개)로 제공된다. 2025년 9월 기준 전 세계 누적 화면 해설 분량은 3만 시간에 달한다. 지난 1년 동안 글로벌 기준으로는 5000시간, 한국에서만 400시간이 추가됐다.

이번 상영회는 ‘배리어프리 사례집’ 발간을 기념해 마련됐다. 이번 사례집은 넷플릭스의 콘텐츠 접근성 철학과 실천 과정을 담은 첫 한국어판 자료다. 표지에는 점자가 삽입됐고, QR코드를 통해 오디오북 형태로도 감상할 수 있다. 서문에서 패트릭 플레밍 넷플릭스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시니어 디렉터는 “접근성 기능은 특별한 부가 서비스가 아니라, 누구나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는 일상의 일부가 되는 것이 목표”라며 넷플릭스의 ‘배리어프리’ 비전을 강조했다.

◇ “배리어프리는 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상영 후 이어진 ‘보이는 라디오’ 세션에서는 청각장애인 아이돌 그룹 ‘빅오션’과 시각장애인 아나운서 허우령이 함께 무대에 올라, 배리어프리 콘텐츠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다.

청각장애인 아이돌 그룹 ‘빅오션’과 시각장애인 아나운서 허우령이 ‘보이는 라디오’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넷플릭스

빅오션의 멤버 PJ는 “청각장애인 학교에 다닐 때 BTS RM 선배님의 기부로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며 “덕분에 아이돌의 꿈을 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멤버 지석은 “비장애인인 제 아버지도 넷플릭스 시청 시 자막을 애용하신다”며 “배리어프리는 장애인만을 위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외국인·어르신·어린이 등 모두가 콘텐츠를 이해하게 돕는 장치”라고 강조했다.

허우령 아나운서는 “장애인이 단순 소비자가 아닌 ‘주체’로 함께할 때 더 큰 시너지가 난다”며 “배리어프리가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했다.

왼쪽부터 루시 황 넷플릭스 더빙 타이틀 매니저, 최수연 넷플릭스 시니어 로컬라이제이션 프로듀서, 코미디언 김경식, 코미디언 이동우, 조현준 넷플릭스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지난 1일 오후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넷플릭스 배리어프리 미디어데이’에서 패널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넷플릭스

한편, 같은 날 열린 ‘넷플릭스 배리어프리 미디어데이’에서는 코미디언 이동우·김경식 씨가 배리어프리 더빙 참여 경험을 나눴다. 두 사람은 넷플릭스 콘텐츠 ‘흑백요리사’ 화면해설 더빙을 함께 맡았다.

김경식 씨는 “넷플릭스가 배리어프리를 장기적으로 고민해온 흔적이 보였다”며 “서로 따로 녹음한 음성이 기술력 덕분에 한 공간에서 녹음한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고 말했다. 이동우 씨는 “양질의 배리어프리 서비스 확산에 넷플릭스가 선도적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루시 황 넷플릭스 더빙 타이틀 매니저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각장애인 내레이터와 협업할 것”이라며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제작 프로세스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영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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