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희망별숲’·신한 ‘카페스윗’ 등 장애인 표준사업장 운영
‘4시간 교대제’부터 ‘필담 키오스크’ 등 맞춤 직무 개발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고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제다. 단순한 법적 의무를 넘어 다양성과 포용을 실현하는 기업의 책임이자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2024년 민간기업 장애인 고용률은 2.9%로 법정 의무고용률 3.4%에 미치지 못했다. 전체 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30%대에 머물며, 특히 발달·청각장애인의 고용률은 20%에도 못 미친다. 이러한 고용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이 주목하는 해법이 바로 장애인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장애인 친화적인 직무와 환경을 갖추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인증을 받은 사업장이다. 정부는 2008년부터 자회사형 제도를 도입해, 일정 요건을 갖추면 모기업의 고용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인증 요건은 엄격하다. 장애인 고용률 20~30% 이상, 중증장애인 50% 이상, 최저임금 이상 지급, 편의시설 완비 등이다. 그러나 기업이 얻는 실익도 분명하다. 설립 지원금 최대 10억 원(컨소시엄형 최대 20억 원), 첫 3년간 법인세·소득세 100% 감면, 이후 2년 50% 감면 등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장애인 고용장려금, 저금리 정책자금, 공공기관 의무구매 등도 더해져 최대 수억 원 수준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 발달장애인 제과소 ‘희망별숲’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삼성전자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희망별숲’의 제과 제조실에서는 방진복을 입은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정교한 속도로 반죽을 틀에 채워 넣었다.

삼성전자가 100% 출자해 2023년 문을 연 ‘희망별숲’은 ‘별숲처럼 반짝이는 희망의 공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희망별숲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와 자문 계약을 맺고 발달장애인을 채용한다. 현재 300여 명의 발달장애인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쿠키와 생일카드는 경기 시흥, 화성 등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내 식당 8곳에 직원들 간식으로 공급된다. 매일 8000여 개의 쿠키와 생일카드가 생산되고 있다.
희망별숲의 핵심은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맞춘 업무 설계다. 집중 시간을 고려해 오전·오후 4시간 교대근무제를 도입했고, 감정 조절이 어렵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을 대비해 100평 규모의 휴게실도 만들었다. 직원 간 표현 충돌을 줄이기 위해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로 대화를 시작하는 ‘직원의 약속’ 지침도 마련했다. 발달장애인의 직무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해 2024년 10월에는 기존 제과팀 외에 팝업카드 제작과 포장 업무를 담당하는 P&P(Pop-up & Package) 팀을 신설했다.
임금과 복지도 소홀히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 직원들은 최저임금보다 10% 이상 높은 급여를 받으며, 도서 구입 및 영화 관람 등을 위한 문화 포인트·회사 부담 개인연금·월 2회 야외 체험 등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도 지원받는다.
◇ 청각장애인 전문 바리스타 양성하는 ‘카페스윗’
청각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표준사업장도 있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가로수길 대로변에 자리한 2층 건물에 들어서면 ‘마음과 손으로 소통하는 아이컨택 카페’라는 문구가 방문객을 맞는다. 신한금융그룹의 비영리 공익법인인 신한금융희망재단이 운영하는 ‘카페스윗(Swith)’ 정릉점이다. ‘스윗’은 신한(Shinhan)과 함께(with)를 합친 이름으로, 동시에 ‘달콤함(Sweet)’이라는 중의적 의미도 담고 있다.
이곳에서는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바리스타로 근무하며 음료를 제조하고, 주문은 키오스크와 전자보드, 필담을 통해 진행된다. 다만 긴급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장애인고용공단의 지원을 받아 수어 통역 근로지원인이 모든 매장에 상주하고 있다. 지금까지 카페스윗에서 채용된 인원은 117명이며, 이 중 청각장애인이 67명(57%)을 차지한다.

카페스윗은 2020년 12월 신한은행 본점(시청역 인근)에 1호점을 연 이후, 백년관점, 서울대입구역점 등 현재 서울 내 7개 매장으로 확장됐다.
이 중 정릉점은 특히 상징적이다. 2021년 폐점한 ‘신한은행 정릉지점’을 그대로 개조해 실제 금고와 창구, 전표 디자인 등 옛 지점의 흔적을 살린 레트로 인테리어를 구상했다. 청각장애인 직원과 손님 간의 소통을 돕기 위해 은행 전표 양식을 본뜬 ‘전표 주문서’를 도입한 것도 정릉점만의 특징이다.
신한금융은 카페스윗을 통해 청각장애인들이 단순히 음료를 제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 바리스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직원들은 입사 후 전문 교육을 거쳐 매장에 배치되며, 신한금융은 영업 수익을 재투자하고 매월 원두를 무상 제공하는 방식 등으로 운영을 뒷받침하고 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청각장애인은 등록장애인 비중이 높지만 소통의 어려움으로 고용률은 가장 낮고 이직률은 높은 편”이라며 “카페스윗을 통해 커피 제조 교육을 넘어 전문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훈련과 일자리를 제공하는 선순환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부터 장애인 표준사업장 설립 시 시설투자를 기존 10억 원에서 최대 15억 원까지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제 6차 장애인 고용촉진 기본계획’에 따라 단순 제조 중심에서 벗어나 IT·소프트웨어 테스트·전자상거래 등 디지털 분야로 훈련 직종을 다변화했다. 이를 통해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기업이 즉시 현장에 투입 가능한 ‘실무형 인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로드맵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