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하 더나은미래 편집국장
[김경하의 우문현답] 기업재단, 돈만 잘 쓰면 되는 곳 아닌가요?

“기업재단은 그냥 돈만 잘 쓰면 되는 곳 아닌가요?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남의 돈 쓰는 일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종종 듣는 질문입니다. 멀리서 보면 그럴듯해 보입니다. 기부금을 정해진 기준에 맞춰 집행하고, 공시와 보고만 하면 역할을 다 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장을 조금만 가까이에서 보시면 이 질문을 쉽게 꺼내기 어려우실 겁니다. 어디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원을 흘려보낼지 결정하는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한 번의 선택이 어떤 지역의 복지 체계를 바꾸기도 하고, 반대로 몇 년간 쌓아 온 현장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돈 쓰는 것은 쉬울지 모르지만, 돈을 ‘잘’ 쓰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모든 기업재단이 그런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잘하는 곳도 있고, 여전히 형식적인 집행에 머무는 곳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잘 쓰인 돈이 한 사회의 흐름을 바꾸는 지렛대가 될 수 있고, 잘못 쓰인 돈이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더 고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기업재단을 여전히 ‘감시와 감독의 대상’ 정도로만 상정하는 순간, 재단은 적극적인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요즘 제 머릿속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재단이라는 조직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존재일까.” 기부를 ‘얼마나’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자원과 구조를 가지고 ‘어디까지’ 상상해볼 수 있는지, 그 상상의 끝을 한 번쯤 밀어붙여 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상상력이 없다면 위기 앞에서 늘

[김경하의 우문현답] 임팩트 생태계에 ‘이찬혁적 사고’가 필요하다

“스포트라이트는 원래 제일 유명한 사람이 받는 것 아닌가요?” 얼핏 당연해 보이는 이 질문이, 요즘 같은 시대에는 가장 시대착오적인 우문(愚問)에 가깝다고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가수 이찬혁 씨가 선보인 무대는, 이 질문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정면에 세우는 대신, 뮤직비디오 속에서 스쳐 지나가던 인물을 무대 앞으로 불러내 스포트라이트를 온전히 내어주었습니다. 노래와 안무, 카메라 동선과 조명이 모두 그 사람을 중심에 맞춰 재배치되는 순간, 이 무대의 ‘주연’은 조용히 바뀌었습니다. 예술적 완성도를 넘어 “누가 이 자리에 서야 하는가”를 다시 묻게 만든 연출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두고 많은 분들이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감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주연과 조연을 나누던 위계 대신, 각자의 서사가 동등한 무게를 갖는다는 인식, 다양성을 배경이 아니라 구성의 중심으로 끌어오는 감각이었습니다. 선언적인 ‘포용’의 구호를 외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대의 구조 자체를 바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술이 시대의 감각을 미리 보여주는 거울이라면, 이 무대는 지금 우리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압축해서 보여준 셈입니다. 이른바 ‘임팩트 생태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문제 해결을 내세우는 수많은 프로젝트가 존재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이는 여전히 자금을 대는 주체인 경우가 많습니다. 각종 홍보 기사나 영상 속에서 현장의 당사자는 종종 ‘감동적인 사례’를 위해 소환되는 조연으로 소비됩니다. 누가 기획했고, 누가 지원했고, 어느 기업이 참여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빼곡한 반면, 정작 그 변화로 삶의 궤도가 바뀐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흐릿하게

[창간 15주년 편지] 선의(善意)로는 부족합니다

2012년 5월, 더나은미래에 막내 기자로 입사한 저는 취재 현장마다 신문을 들고 다니며 “공익 분야 전문 기자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공익 저널리즘’이라는 용어조차 낯설었던 때였습니다. 개척자로서 사명감 하나로, 동료들과 손품 발품 팔며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100대 기업 CEO 대상 CSR 설문조사, 30대 기업 사회공헌 기획, 100대 공익법인 이사회 대해부…독창적인 기획을 위해 직접 뛰고, 때로는 공익 프로젝트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미디어는 5년만 버티면 안 망한다”는 말을 반신반의했는데, 올해 더나은미래가 창간 15주년을 맞았습니다. 2018년 5월, 편집장 직무대행으로 8주년 특집을 준비했던 시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도 ‘더나은미래는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키운 공공재다’라는 믿음 하나로 자리를 지켰습니다. 지금은 편집국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다시 질문합니다. 우리는 어떤 미디어가 되어야 하는가. 사실을 보도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좋은 사례를 소개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아니면 더 깊고 본질적인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가. 지난 1년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의’는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엔 그 자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선의가 실질적 행동으로 이어지고,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 낼 때 비로소 ‘선한 영향력’이 됩니다. 하지만 구조가 잘못돼 있으면 선의가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기부도 흐름이 왜곡되면 무력감과 회의로 되돌아옵니다. 기부와 선의의 행동이 진정한 변화를 만들려면, 어디에 자원을 배분할지, 누구에게 먼저 자리를 내줄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제는 선의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고 효과적인 개입을 설계하는 ‘올바른 영향력’을 고민할 때입니다. 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