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란트로피 인사이트] 우리는 왜 ‘어떻게’만 묻는가: 필란트로피 재고

필란트로피(Philanthropy)에 관한 정기 칼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였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한국에서 필란트로피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관심사와 고민을 살펴보았다.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질문은 한 방향으로 수렴했다. ‘필란트로피란 무엇인가’보다 ‘필란트로피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훨씬 더 큰 관심이 쏠려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필란트로피에 대한 실천적 요구가 커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도 남는다. 필란트로피를 하나의 사회적·문화적 가치로 성찰하기보다, 공익을 실행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접근 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개념에 대한 올바른 탐구 없이 방법론부터 묻는 방식은, 한국적 맥락에서 필란트로피 고유의 방향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어떻게’를 묻기 전에, 반드시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개념에 대한 성찰 없이 이루어지는 실천은 쉽게 방향을 잃는다. 이 칼럼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필란트로피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필란트로피라는 영어를 최초로 사용한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 그리스어 philanthrōpía—’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그 개념의 뿌리를 찾는다. 또 어떤 이는 18세기 계몽주의 전통에서 등장한 독일의 Philanthropismus를 언급하며 사상적 기반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접근은 철학적 기원을 이해하는 데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필란트로피를 이해하려면, 어원보다는 그것이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왔는지를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

특히 미국에서 필란트로피는 19세기 후반 ‘과학적 자선운동(Scientific Charity Movement)’을 계기로 기존의 자선(charity)과 명확하게 구별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단순한 구호나 기부 행위를 넘어, 사회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보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 방식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필란트로피’라는 개념이 독자적인 영역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후 수많은 재단과 비영리 조직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제도화하며 오늘날의 필란트로피를 형성해왔다.

그렇다면 학계에서는 필란트로피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인디애나 대학교(Indiana University)의 마티 술렉(Marty Sulek) 연구에 따르면, 필란트로피의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된 개념적 틀이 존재한다. 존스홉킨스대학교의 레스터 살라몬(Lester Salamon) 교수는 필란트로피를 ‘사적 자원을 공공 목적에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구조적 관점을 강조한다. 인디애나대학교의 로버트 페이턴(Robert Payton) 교수는 이를 ‘공공선을 위한 자발적 행동’으로 이해하며 실천적 의미를 부각한다. 럿거스대학교의 존 반 틸(Jon Van Til) 교수는 여기에 ‘의도’라는 요소를 더해,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자발적 행위를 필란트로피의 본질로 본다. 반면 보스턴칼리지의 폴 셰르비시(Paul Schervish) 교수는 필란트로피를 개인의 선택이 아닌, 도덕적 의무에 의해 자원이 사회적 필요와 연결되는 관계적 실천으로 파악한다. 

이처럼 필란트로피는 자원, 행동, 의도, 관계라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정의된다. 이는 필란트로피가 단순한 기부 행위를 넘어, 사회를 이해하고 개입하는 방식과 깊이 연결된 개념임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가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어떻게 더 잘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는가’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부 방법이 아니라, 필란트로피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다시 묻는 일이다. 필란트로피는 ‘좋은 일을 하는 기술’이 아니다.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인식 틀이다. 이 칼럼은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김성주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사회복지학과 및 행정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며, 비영리조직, 시민사회, 자선·기부, 사회적 형평성을 중심으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의 학문 및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비영리 경영(Nonprofit management), 비영리 교육과 필란트로피(Philanthropy studies)에 관한 국제 비교 연구와 정책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구와 교육뿐 아니라, 학문적 지식을 사회적 실천으로 연결하는 데에도 관심을 두고 있으며, 비영리 조직의 역량 강화, 시민사회 생태계의 발전, 그리고 보다 공정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모색하는 데 지속적으로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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