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14 센트면 충분한가요?

지난해 말 글로벌 벤처 투자업계에 대한 통계 자료를 살펴보던 중 수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1달러가 투자될 때마다 14센트가 기후테크 영역에 투자된다는 것이다. 투자금의 14%가 기후 부문에 투입된다는 의미는 뭘까? 우리가 마주한 기후위기 해소에 충분한 비율일까? 아니, 더 나아가 정말로 자본이 기후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까? 질문이 머리속에서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친환경 테마를 중심으로 한 ESG·그린뉴딜 펀드, ETF는 이제 벤처 영역뿐만 아니라 전체 자산 시장 내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환경부에서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발표하고, 녹색채권의 기준뿐만 아니라 세제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검토하고 있다.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시장에서의 환경 기준은 전 세계적으로 점점 강화되고 있으며 이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소풍벤처스 역시 100여 개의 투자 포트폴리오 중 20% 이상을 폐기물 수거, 재생에너지, 대체 단백질, 미생물, 수목 관리 등 기후 영역에 투자해왔다. 최근에는 농식품, 재생에너지, 그리고 순환경제 영역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대량 소비 사회에서 폐기물 이슈는 생산과 재순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플라스틱의 역습은 인류의 건강 문제를 위협하고 있다. 탄소가 가장 많이 절감될 영역으로 에너지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인류·산업의 근간이 에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식탁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또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는 장소다. 조금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기후위기의 해결이 우리 식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먹거리의 생산과 운송, 보관, 가공, 폐기에 이르는 농식품 밸류체인의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이제는 커뮤니티에 집중할 때

회사 주변의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꼭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행여나 아는 사람이 있는데 알아보지 못해서 인사를 놓칠까 생긴 버릇이다. 소셜벤처 업계에 몸담은 지 햇수로 15년째. 성수동만 해도 수백 개의 소셜벤처가 모여 있고, 거리를 걷다 보면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는 얼굴을 마주치면 ‘여전히 성수동에 계시는구나’하는 반가움과 ‘계속 모험을 하고 계시는구나’하는 고마움이 뒤섞여 찾아온다. 다만, 분명히 얼굴은 아는데 이름이나 회사 등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잦다. 상대는 친밀하게 인사하는데 나는 뇌의 온갖 회로를 돌려 기억해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면 그만한 고역이 없다.  많은 사람과 마주치고, 상당히 많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매일 새로운 창업팀과 마주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이러한 버거움은 생태계에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소풍벤처스 역시 누적 투자기업이 100개를 넘은 상황이다. 투자기업들이 많아지다 보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가끔 창업자의 얼굴과 이름이 매칭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기라도 하면 당황스럽다. 투자한 기업의 창업자를 매일 한 명씩 만난다고 해도 3개월이 걸린다.  과거에는 한 명 한 명의 창업자를 직접 연결했지만, 이제는 소풍의 개별 구성원들이 네트워크 관리를 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소풍 역시 다양한 분야의 창업가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또 소통해야 하는지, 즉 어떤 커뮤니티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구상이 필요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창업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다는 것은 자금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도 함께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네트워크 중에 손꼽는 것이 창업가들의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창업가의 부채질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확인하는 요소 중 하나가 회사의 부채(負債)다. 회계적으로 부채는 자본과 함께 자산을 구성한다. 흔히 부채는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오늘날의 경제는 부채를 질 수 있는 것도 능력으로 본다. 부동산이나 자동차 구입 같은 큰 소비를 할 때는 물론이고 몇만원, 심지어 몇천원짜리 물건도 할부로 구매하는 마당에 부채는 그 자체로 문제라기보단 적절히 관리한다면 경제 활동에 활력을 부여한다. 또 하나, 창업자가 어떤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는지도 묻곤 한다. 특히 친하게 지내는 창업자들이 있는지, 사업상의 멘토가 있는지를 묻는다. 흔히 네트워크라는 말로 이야기되는 이 관계들을 나는 다른 말로 관계적 부채라 부른다. 자본적 부채를 조달하는 것이 재무전략에 있어서 중요하듯이 관계적 부채를 얼마나 어떻게 쌓을 것인지는 정보나 기회를 양과 질을 좌우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네트워크 이론에서는 이를 약한 연결 이론(Weak Tie Theory)이라 부른다. 약한 연결 이론에 의하면 나에게 사회생활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가족, 연인, 절친한 친구 등 가까운 관계(strong ties)의 사람들보다 적당히 알고 지내는(weak ties) 사람들이다. 약하게 연결된 사람들은 내 주변과는 다른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미 가진 것이 아닌 필요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이론적 설명이다. 창업가들도 마찬가지다. 작은 부탁도 어려워하고, 모든 문제를 스스로 풀어내려는 창업자와 그렇지 않은 창업자. 어떤 성향이 사업에 더 유리할까? 나의 결론은 빚지는 것, 즉 부채감을 두려워하지 않는 쪽이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시작

벤처 투자자들이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딱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일까?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 산업의 시장성? 시장 내 경쟁상황? 물론 이 모든 다양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검토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을 앞두고서 가장 주의 깊게 살피고 또 고민하는 것은 뜻밖에도 창업자의 됨됨이다. 창업계에는 ‘될 사업도 안 될 창업자가 하면 망하고, 안 될 사업도 될 창업자가 하면 성공한다’는 류의 이야기가 흔히 떠돈다. 아주 희박한 성공 확률을 이겨내고 성과를 만드는 것은 역시나 사업을 이끌어가는 사람 자체에 전적으로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벤처 투자자로서 인터뷰나 강연 요청에 응할 때 ‘어떤 사람들이 창업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창업자를 만나면서 확신하게 된 것은 자신을 더 새로운 경지로 이끌도록 자신을 사랑하는 것 또한 그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창업가들은 도무지 창업을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기에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 없는지, 궁극적으로 무엇을 해야 내가 행복한지를 아주 정확히 알아야만 창업에 뛰어들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창업했노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이내 자신이 이 일을 얼마나 지독히 사랑하는지를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창업가들이 자신을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농식품 꾸러미를 풀며

얼마 전 제주도에서 개최된 한 행사에서 수십 명의 참가자와 함께 농업과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농업만큼 인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산업도 드물 것이다. 그 긴 역사만큼이나 경로의존성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점점 가속화되는 변화의 시대에서 농업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다. 농업의 미래에 대한 뜨거운 논의는 온실가스, 식량안보, 글로벌 밸류체인, 디지털과 청년 등의 다양한 주제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농업과 에너지 전문가가 함께하는 세션은 백미였다. 농업은 친환경에 더 가깝게 느껴지지만 현대의 농업은 실제로는 탄소중립이라는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농업에서도 당장 2030년까지의 탄소 감축 목표량을 달성하기에도 벅차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리고 이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으로 이어졌다. 탄소배출이나 토양, 해양 오염원의 발생지로서 농업보다 기후 위기로 인한 생육환경 변화와 생산량 확보 등이 더 이슈가 되리라는 전망도 등장했다. 특히 농업에서 에너지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30~50%에 달한다. 따라서 면세유 등을 폐지할 경우 소비자들이 이 비용을 지출해야 하거나 농가 소득이 줄어들게 되기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모두 함께했기에 가능한 토론이었다. 지난주에는 강원도 춘천에서 탄소중립 대응방안과 ESG전략을 논하는 지역발전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서 강원도는 2040년까지 넷 제로를 실현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강원도 내 기업들이 모두 RE100 인증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적 기조를 발표했다. 산림이 전체의 약 80%를 차지하는 강원도는 전국 지자체 중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에 가장 좋은 여건이다. 하지만 동시에 강원도는 신규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우주강국 환호에 가려진 탄소배출

얼마 전, 한 커피 브랜드에서 일회용 컵 사용 절감이라는 친환경 메시지를 담아 진행한 굿즈 마케팅이 연일 이슈였다. 지난주에는 정부에서 2050년까지의 탄소중립을 향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발표하며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린워싱, 택소노미, ESG 등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리스크에 대한 단어는 연일 언론에 등장하는 단골 주제가 되었다. 환경운동의 영역에서 그린워싱은 198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하는 등 그 역사가 오래된 표현이다. 지난 수십 년간 잠잠했으나 이제는 폭발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는 ESG에서도 일찌감치 환경요소를 가장 먼저 내세워왔다. 고객들 역시 가격이 비싸더라도 친환경 상품이라면 기꺼이 구매한다는 연구 결과도 이어진다. 특히 기업의 목적을 사회의 개선으로 보는 등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들이 경제 활동의 주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소비자 행동주의 역시 강화될 전망이다. 무엇이 친환경인 척하며 포장하는 행위인지에 대한 문제는 계속 지적되어왔다. 애매모호한 주장이나 부적절한 인증라벨을 통해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특별히 환경적이지 않지만 다른 제품보다 환경적이라고 주장하는 등의 그린워싱에 대한 사례나 정부나 시민사회단체에서 발표한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은 해를 거듭하며 계속 언급됐다. 금융시장에는 예상치 못한 변화로 자산가치가 하락하여 부채로 전환되거나 상각해야 하는 자산을 일컫는 좌초자산이라는 말이 있다. 최근 에너지 기업들을 중심으로 신규 석탄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거나 기존의 석탄 발전소를 매각하는 등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은 고탄소 자산들은 좌초자산이라는 평가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들도 이어진다. 친환경이기에 금융시장과 고객들로부터 선택받지만, 그것이 허위이거나 과장된 것이라면 한순간에 좌초자산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간의 그린워싱이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오늘도 대표직을 내려놓고 싶은 그대에게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제가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한 초기 스타트업의 창업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하면서도 이렇게 서늘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이 그만두시면 회사도 함께 문을 닫게 될 겁니다.” 새로운 리더가 갑자기 등장하여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한다는 이야기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다. 창업의 나라인 미국에서는 실제로 스타트업 대표자 교체가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일은 대부분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라 어떠한 선택이라도 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벌어진다. 회사의 주요 지표들이 호조를 보이고 있고 자금 역시 1~2년 이상 버틸 정도로 거뜬하다 해도 자신이 창업하지도 않은 스타트업의 대표직을 수행할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을 대표로 모셔오는 일은 무척 어렵다. 그리고 그 정도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이미 창업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재미있는 것은 사업을 계획대로 잘 진행하는 창업자들도 ‘대표자를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종종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 즉 ‘메타인지’ 능력이 뛰어날수록 더 그렇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맞나’ ‘내가 대표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은 아닌가’ 등의 의문을 가지게 된다. 내가 없더라도 내가 아끼는 사업은 그 자체로 꾸준히 성장하면서, 동시에 대표직의 무게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대표직을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를 매각하는 것이다. 근래에도 사업의 초기부터 투자로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소셜벤처 법제화, 아직 과제가 남았다

소셜벤처가 드디어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그간 소셜벤처는 민간과 공공 할 것 없이 널리 사용되어온 표현이었지만 법령에는 명시되지 않은 상태였다. 10여 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이제는 벤처기업과 같은 지위를 갖게 된 소셜벤처기업의 법제화를 지켜본 감회는 새롭지만 또 복잡하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업,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기업을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이라 부른다. 이외에도 사회목적기업(Social Purpose Company), 소셜미션중심기업 (Mission driven Company), 베네핏기업(Benefit Corporation) 등의 표현이 있지만 사회적기업이 가장 널리 사용되는 표현이다. 한국에서 이 사회적기업이라는 말을 쓰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하다. 지난 2007년에 제정된 사회적기업지원법에 의해 ‘사회적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인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벤처기업으로 불리기 위해서도 별도의 인증절차를 거쳐야 한다. 스스로 지칭할 길이 막히자 정부 인증이 필요치 않은 조직들은 자신을 ‘소셜벤처’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은 세계에서 소셜벤처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가 되었다. 소셜벤처가 본격적으로 공공의 지원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17년이다. 사회적 경제의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은 수년간 현행 사회적기업 인증제도를 보완하여 소셜벤처를 지원하고 육성하기 위한 제도 정비를 요청해다. 그 결실로, 정부에서는 소셜벤처를 ‘혁신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벤처’라고 정의하고 기존 벤처기업과 마찬가지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지원-육성하기로 하면서 비로소 10년 만에 행정용어로 포함되었다. 그 뒤 몇 년에 걸친 민간과 공공의 노력으로 소셜벤처는 법적 근거를 갖춘 실체가 되었다. 지난 2021년 7월 개정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소셜벤처기업을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통합적으로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사회성과 혁신 성장성을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낭만의 시대는 저물었는가?

“이제 낭만이 없어졌군요.” 성수동의 과거 분위기를 잘 아는 어느 지인이 대화 중에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최근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성수동도 그 파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사회적·경제적으로 스스로를 증명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한 소셜벤처들과 임팩트 투자 생태계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낭만의 시대가 저문 거죠’라고 말했지만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성수동을, 우리가 하는 일을, 낭만이라 생각한 적이 었었던가를 떠올리면서. 낭만.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낭만이라는 단어 뜻을 검색해봤다. 임팩트투자사와 소셜벤처,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 혁신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들이 성수동에 터를 잡은 지 7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성수동은 현대식 마천루가 즐비하고 각기 다른 디자인과 매력을 뽐내는 크고 작은 식당과 편집 매장이 골목마다 들어선 곳이 되었다. 나날이 높이를 더해가는 성수동 빌딩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이상은 얼마나 쌓여가는지를 생각한다. 성수동을 대표하는 기관 중 상당수는 설립 10주년을 맞이하거나 이미 2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2008년에 설립한 소풍 역시 성수동에 터 잡은 지 7년째이자, 설립 13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그간 텀블벅, 스페이스클라우드, 동구밭, 비플러스, 자란다, 스티비, 뉴닉 등 국내를 대표하는 소셜벤처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임팩트투자 생태계도 몰라보게 커졌다. 2018년도부터 연간 2000억원 규모의 투자 조합을 계속 결성해내며 총액만 해도 1조원을 내다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 사이 협력보다는 경쟁이, 연대보다는 자기 증명이 더 중요해졌다. 축적하는 경험, 양적 규모는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하루 세끼, 농업의 임팩트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집의 아침 향기와 맛을 책임지는 커피는 강원도 속초의 칠성조선소에서 로스팅한 원두다. 콜롬비아와 브라질에서 건너온 이 원두를 전동 그라인더에 갈아내린 뒤 아내에게 진상하듯 올리며 마틴 루서 킹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탁자에 앉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수확한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넘는 이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일들은 오늘날 복잡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근래 소풍벤처스가 가장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는 영역도 농수축산업과 식품 분야다. 이 분야는 생산, 운송, 유통, 소비, 그리고 폐기에 이르기까지 워낙 넓고 세분화되어 있어 전체의 가치 사슬을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전 세계 인구 70억 명이 하루 3끼를 먹고 있으니 이보다 큰 산업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언택트 시대에도 농식품산업은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농식품 시장은 2019년 대비 2배 정도 성장하며, 온라인 거래 품목 중 1~2위를 다투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순 있어도, 먹는 것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업이나 식품 분야는 소풍벤처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임팩트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다. 지난 5년간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여 온 시장이자, 약 90%에 달하는 임팩트투자자들이 향후 5년간 농식품분야 투자를 늘리거나 유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산되는 식품의 3분의 1이 폐기되고 있고,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몰라 봐서 미안하다

5년 전 투자한 회사에 이어 작년에 투자한 회사에서도 얼마 전 우리 소풍벤처스로 배당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사업 성과가 뛰어난 두 기업의 배당 통지를 받아 들고 조언을 받아야 하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시드 투자사이자 액셀러레이터이다 보니 배당을 받는 경우가 이례적이라서 배당에 따른 세금과 배분 문제 등이 우리에게 생소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풍이 투자한 소셜벤처는 80곳을 돌파했다. 이 중 95%는 소풍이 첫 투자자였고, 50%는 법인조차 설립되지 않은 곳이었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예 없거나 검증이 안 된 초기 팀들을 마주하는 것이 액셀러레이터의 일상이다. 아무리 좋은 팀, 비즈니스라도 초기 모습은 대부분 엉성하다. 여러모로 부족한 모습으로 만나 투자사와 피투자사로서 인연을 맺은 기업이 어느새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여 배당하는 상황은 금액 크기를 떠나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배당이 가능한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한 이들을 보며 떠오른 곳들이 있다. 바로 소셜미션과 진정성에는 크게 공감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없거나 지속 가능하지 않은 창업팀이다. 의외로 자주 찾아오는 이 안타까운 순간을 마주할 때면 복잡한 감정이 밀려든다.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이를 비즈니스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점을 대면하는 것이기도 하고, 더 괴로운 것은 창업가에게 투자 거절이라는 모진 말을 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언해 줄 방향이나 아이디어조차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경우에는 자괴감까지 더해져 힘이 쭉쭉 빠진다. 액셀러레이터로서, 진정성 있는 창업자와 역량이 좋은 구성원들이 엄청난 비즈니스를 가지고 스스로 찾아오는 행운을 앉아서 기다릴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유니콘·VC도 ‘ESG’를 피할 수 없다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ESG’가 기업의 전략과 운영에 있어서 필수적인 접근으로 여겨지고 있다. ESG의 확산은 어느 정도 예견된 미래였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로 인한 2020년의 위기감이 일종의 ‘가속 페달’ 역할을 한 셈이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Venture Capital)로서 최근 ESG의 폭발적인 확산을 지켜보고 있자니, 지난 십여 년간 급성장한 ‘임팩트투자’와 2006년 UN이 발표한 ‘책임투자(Responsible Investment)’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SG는 책임투자의 한 가지 방법 혹은 고려해야 하는 요소로 ‘비재무적(non-financial) 정보’라고도 불린다. 임팩트투자는 특정한 사회문제 해결 및 가치창출을 위해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의 방식이다. 투자 대상 기업의 ESG 요소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게 자본 투자 과정의 필수적 절차로 자리 잡아가는 상황에서, 얼리 스테이지(Early Stage)에 있는 기업들도 ESG를 수용하게 할 수 있을까. 나아가 임팩트투자의 대상 기업으로 바뀌게 할 수 있을까. 몇 년 전부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자본 투자를 선언하며 기업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전체 자본 투자에서 임팩트투자의 비중은 여전히 소수다. 대부분의 자본이 여전히 수익률만을 기준으로 투자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마치 과거 ESG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ESG 역시 오랫동안 기업들의 자율에 맡겨져 왔다. 지속가능성보고서 혹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으로 불리는 문서를 통해 자본 시장 및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은 소수였다. ESG가 폭발적으로 확산된 데에는 기업을 둘러싼 여러 위험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환경·사회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물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궁극적으로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