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2일, 아름다운재단 대회의실에서 매우 특별한 협약식이 열렸다. 이름하여 ‘마중물기금 협약식’. 아름다운재단 구성원들의 성장과 미래를 위한 운영비 전용 기금으로, 기부자는 김강석 님이다.
김강석 님은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블루홀(현 크래프톤)의 창업자이자 대표적인 자산가다. 그는 청소년부모와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바오밥나무기금’을 가족과 함께 출연했고, 지난해부터 아름다운재단 이사로 활동 중이다. 이밖에도 루트임팩트에 소셜섹터 육성을 위한 ‘조건없는 기금’ IP1기금(20억 원)을 출연했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도 10억 원을 기부하는 등 국내 비영리 혁신을 이끄는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마중물기금’은 아름다운재단이 창립 25주년을 맞아 새롭게 개발한 기부금에 매칭 기부 방식으로 작동한다. 말 그대로 ‘원플러스원(1+1) 기부’다. 그는 협약식에서 “두 번의 창업을 거치며 사람이 전부라는 것을 절감했다”며 “아름다운재단은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이라고 밝혔다.
이 협약식을 칼럼을 통해 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수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운영비’로 기부하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 운영비에 대한 오해와 현실
운영비는 종종 ‘불필요한 간접비’로 인식된다. ‘적을수록 좋다’고 여겨지는 이 비용에는 인건비, 교육비, 회의비, 교통비 등 조직 운영의 핵심 비용이 포함된다. 이러한 비용은 단순한 소모가 아니라, 조직이 사회적 미션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반이자 인프라다. 특히 인건비는 단순한 인력 유지가 아니라,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의 핵심이다.
운영비 부족은 곧 생존력 저하로 이어진다. 급여가 적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이직률이 높아지고, 전문 인력의 유입도 어려워진다. 인재 육성은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 겉으로는 비용을 아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운영비 절감이 미덕이 되는 조직에서는 실험적 사업이나 장기 전략이 나올 수 없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의 기부문화 심포지엄 ‘기빙코리아 2016’에서 시민들이 생각하는 적정 운영비 비율은 평균 20%였다. 이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15% 수준에 머물렀던 것에서 진일보한 수치다. 미국의 비영리 평가기관 ‘채러티 내비게이터’는 운영비 비율이 25% 내외인 단체를 재무 건전성이 높은 기관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이 범위에 해당하는 비영리기관은 전체의 61%에 달한다.
2019년, 조셉 스틴 미국 마이애미대 교수는 비영리 조직이 겪는 ‘운영비 기근 현상’을 지적하며 이를 ‘비영리 기아 사이클(nonprofit starvation cycle)’이라 명명했다. 그는 “운영비를 인위적으로 줄이면 조직은 곧 기아 상태에 빠지고, 신뢰마저 잃게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운영비 지출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기부 유입도 함께 줄어드는 역상관관계가 나타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조직의 효율성을 앞세워 운영비를 지나치게 억제하면, 결국 미래를 가로막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게 된다는 지적이다.
◇ ‘운영비 논쟁’의 본질은 신뢰다
‘운영비 논쟁’의 본질은 ‘신뢰’다. 아무리 운영비 비율이 낮아도 기부자와의 신뢰가 없다면 기부는 이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신뢰가 구축돼 있다면 운영비가 일정 수준 이상이더라도 기부자는 흔쾌히 동의한다.
아름다운재단은 창립 초기부터 투명성과 신뢰를 핵심 운영 원칙으로 삼아왔다. 수입·지출 내역을 매월 공개했고, 급여 내역까지 웹사이트에 게시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이어왔다. 오래전부터 운영비 전용 기금인 ‘아름다운재단만들기기금’을 조성해 재정 독립 기반을 다져왔고, 최근에는 기부자를 이사회에 직접 참여시키는 등 신뢰 기반의 거버넌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조성된 ‘마중물기금’은 이러한 협력 구조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사례다. 기부자가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조직 운영의 동반자로서 책임을 나누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제 비영리기관은 운영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 단순히 수치를 공개하는 수준을 넘어서, 운영비의 ‘의미’와 ‘쓰임’을 기부자에게 서사적으로 설명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인건비 비중이 높았던 해라면, ‘그해 어떤 변화가 사람을 통해 일어났는지’를 이야기로 전달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기부 문화의 성숙을 위해선 시민들의 인식 전환을 돕는 언론 보도도 중요하다. 비영리조직의 내부 현실을 꾸준히 알리고, 운영비가 사회문제 해결의 필수 조건임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특히 청년이나 신규 기부자일수록 ‘가치 기반 기부’를 중시하는 만큼, 이들과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공공 재정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기부금품모집법이나 각종 보조금 사업에서 설정한 인건비 비율 등 운영비 기준을 재검토할 시점이다. 비영리조직이 축적한 사회적 자본과 신뢰를 기준 삼아, 유연한 제도 설계와 평가 방식이 병행돼야 한다. 운영비를 무작정 통제할 것이 아니라, ‘운영비가 어떻게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했는가’를 중심으로 평가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
운영비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회계 수치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기부자는 자신의 기부금이 의미 있게 쓰이길 바라고, 비영리조직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조직을 운영한다. 이때 운영비는 ‘뒤에서 어쩔 수 없이 드는 비용’이 아니라, 조직을 앞으로 밀어주는 추진력이어야 한다.
마중물기금처럼 신뢰에서 출발한 협력은 조직을 바꾸고, 사회를 바꾼다. 운영비는 더 이상 숨기거나 방어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비영리조직이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실용적인 언어이자, 기부자와의 진정한 관계를 여는 마중물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운영비에 대한 낡은 질문을 던지는 대신 새로운 답을 만들 때다. 그리고 그 답은 결국 ‘신뢰’라는 한 단어로 귀결된다.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필자 소개 아름다운재단에서 15년간 근속하고 2023년 내부선발 1호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건강한 기부문화를 확산하는 아름다운재단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도록 전략적 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난제’가 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간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거버넌스에 대한 연구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