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월간 성수동] 이제는 커뮤니티에 집중할 때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회사 주변의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꼭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행여나 아는 사람이 있는데 알아보지 못해서 인사를 놓칠까 생긴 버릇이다. 소셜벤처 업계에 몸담은 지 햇수로 15년째. 성수동만 해도 수백 개의 소셜벤처가 모여 있고, 거리를 걷다 보면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는 얼굴을 마주치면 ‘여전히 성수동에 계시는구나’하는 반가움과 ‘계속 모험을 하고 계시는구나’하는 고마움이 뒤섞여 찾아온다. 다만, 분명히 얼굴은 아는데 이름이나 회사 등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잦다. 상대는 친밀하게 인사하는데 나는 뇌의 온갖 회로를 돌려 기억해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면 그만한 고역이 없다. 

많은 사람과 마주치고, 상당히 많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매일 새로운 창업팀과 마주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이러한 버거움은 생태계에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소풍벤처스 역시 누적 투자기업이 100개를 넘은 상황이다. 투자기업들이 많아지다 보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가끔 창업자의 얼굴과 이름이 매칭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기라도 하면 당황스럽다. 투자한 기업의 창업자를 매일 한 명씩 만난다고 해도 3개월이 걸린다. 

과거에는 한 명 한 명의 창업자를 직접 연결했지만, 이제는 소풍의 개별 구성원들이 네트워크 관리를 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소풍 역시 다양한 분야의 창업가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또 소통해야 하는지, 즉 어떤 커뮤니티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구상이 필요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창업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다는 것은 자금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도 함께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네트워크 중에 손꼽는 것이 창업가들의 커뮤니티다. 소풍의 투자를 받음으로써 소풍 투자기업의 창업가들과 느슨하지만 강력한 커뮤니티에 속하게 된다. 문제는 100명이 넘는 창업자 중에서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창업자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는 것이 있다. 인류학자인 로빈 던바 교수의 연구에 기반한 것으로 인간의 대뇌피질 크기를 고려했을 때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대략 150명이라는 분석이다. 이후 이를 반박하는 분석과 연구들도 이어졌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결론은 개인 간 편차가 있을 뿐, 개인이 관계 맺으며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 한계가 주는 시사점은 모두와 관계 맺어야 한다는 생각, 즉 많은 사람과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다. 우리는 이미 넘치는 관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창업가들도 마찬가지다. 성향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이미 대부분의 창업가는 한계치에 근접한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다. 따라서 창업가 커뮤니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다. 관계성의 숫자가 아니라 언제든 접속하고 연결되어도 서로 돕고 지지하는 그런 문화 말이다. 

사실 네트워크란 소속된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만한 우군도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장벽이자 폐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네트워킹을 즐기지 않는 내향적 성향의 창업가들도 많다. 그렇기에 네트워크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고, 또 손쉽게 타인을 검증하고 싶어 한다. 소풍에서 투자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신뢰하는 창업가들도, 성수동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좀 더 손쉽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성수동은 우연히 몇몇 기관들이 비슷한 시기에 자리 잡으면서 민간 주도로 형성된 독특한 지역이다. 특별한 원칙을 세우지 않았지만 지리적 매력만으로도 어느새 수백 개의 소셜벤처에 소속된 수천 명의 사람들과 이름난 기업, 투자사들이 모여들었다. 이제는 좀 더 커뮤니티에 집중할 때다. 성수동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때보다도 많은 혁신가, 창업가, 모험자본가들이 활동하는 시대다. 앞으로도 얼굴과 이름이 매칭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고, 잊고, 기억하겠지만 함께 이 혁신의 대열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소속감을 느끼게 만들 필요가 있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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