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대 석유·가스 수입국인 한국, 2030년까지 메탄 30% 감축해야
EU는 ‘정보 요구’, ’성과 기준 부여’ 등 단계적인 규제…한국도 도입해야
세계 5대 석유·가스 수입국인 한국이 국외에서 국내보다 10배 이상의 메탄을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 5000만 톤에 육박하는 국경 밖 메탄을 규제하면 2100년까지 전 세계 기후 피해를 약 165조원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 수입되는 화석연료가 배출하는 메탄, 국내 배출의 10배인 4670만 톤
유종현 서울대 교수와 기후솔루션이 공동으로 연구하고 3일 발간한 보고서 ‘화석연료 수입국 한국의 메탄 감축을 통한 사회적 편익’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이 수입한 석탄·석유·가스의 생산국에서 발생한 메탄 배출량은 약 4670만 톤이다. 이는 연료를 땅에서 추출하거나 운반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국내 에너지 부문 메탄 배출량의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약 80배 강력한 단기 온실가스로 불린다. 대기 중 체류시간이 12년으로 빠르게 지구온난화를 가속한다. 스모그, 호흡기 질환, 작물 수확량 저하 등 다양한 연쇄적 피해도 유발한다. 이 때문에 메탄은 감축 시 기후·보건 분야에서 개선 효과를 빠르게 낼 수 있는 핵심 표적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은 2030년까지 국제메탄서약에 따라 메탄을 30% 감축해야 하고 2050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메탄 감축이 필수적이다. 특히 앞서 발간된 보고서 ‘우리나라 2030 메탄 감축 로드맵은 1.5도 상승을 막을 수 있을까’에 따르면 수입된 화석연료 생산 시 배출되는 메탄 등 숨겨진 온실가스도 감축 대상에 포함해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이날 함께 발간된 보고서 ‘석유·가스 수입국 한국의 메탄 감축 기회’는 한국이 수입 석유·가스의 메탄 누출을 규제하는 ‘메탄 수입 기준’을 도입할 경우, 전 세계에서 약 192조 8000억원, 한국에서는 약 1조 7300억원 규모의 기후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1.5℃ 감축 경로를 따른 것으로 2℃ 시나리오를 적용하더라도 전 세계 기준 약 165조원, 국내 1조 4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추정액은 메탄 감축을 통해 기대되는 자연피해 위험 감소, 농업 생산성 향상, 공중보건 비용 절감, 조기 사망률 감소 등 사회 전반의 편익을 반영해 산출했다.
◇ “EU에서 논의되는 메탄 규제 한국도 적용해야”
보고서는 메탄 감축 기술 대부분이 비용이 적거나 오히려 경제성이 있음에도, 정책적 유인이 없어서 실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누출 감지 및 복구(LDAR), 폐가스 회수장치(VRU) 같은 기술은 이미 상용화돼 있으며, 대부분 1톤을 감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0에 수렴한다고 보고서는 짚었다. 그러나 현재 글로벌 생산국에서의 도입률은 20~30%에 불과하다.
이에 보고서는 한국에 적용 가능한 규제 방안으로 ▲수입 제품에 대한 메탄 배출량 정보를 수출국이 의무적으로 측정·보고·검증하는 ‘정보 기반 규제’ ▲수입 조건으로 LDAR와 VRU 등 기술의 설치를 요구하는 ‘처방적 규제’ ▲제품 단위 메탄 배출량에 상한선을 정해 기준을 초과하는 수입품을 제한하는 ‘성과 기반 규제’ ▲기준을 넘는 수입 화석연료에 메탄세를 부과하거나 기존 탄소세 체계에 연계하는 ‘시장 기반 규제’를 제안했다.
네 가지 규제 방안은 유럽연합(EU)이 실제 도입을 추진 중인 방안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이런 접근법을 통해 산업계의 수용성을 높이면서 실질적인 감축 유인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국제 공급망의 수요국이자 G7 급 에너지 수입국으로서 가지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규제는 국내 정책을 넘어 글로벌 메탄 감축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보고서 ‘석유·가스 수입국 한국의 메탄 감축 기회’를 쓴 이리나 세미키나 박사는 “한국이 자체적인 규제 방안을 마련하는 것보다도 EU 등 국제 기준과 발맞춰 규제안을 마련할 때 글로벌 메탄 감축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제언했다.
메탄 감축은 기후 대응을 넘어 다양한 정성적 편익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메탄 감축은 대기오염 물질인 오존의 생성을 억제해 스모그와 호흡기 질환 발생률을 낮추며, 이는 의료비 절감과 국민 건강 증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메탄 감축이 조기 사망률을 최대 10%까지 낮출 수 있다고 평가했다.
노진선 기후솔루션 메탄팀 팀장은 “한국은 유럽, 일본 등과 같이 화석연료 거대 수입국이다”며 “한국이 화석연료 수출국에 메탄 배출량 정보를 요구하면 온실가스 정보 투명성 제고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온도 상승 저지를 위한 초석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