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로 흐르지 않는 ‘충분한 자본’…연결 이상의 ‘구조’ 필요해

[인터뷰] 파시안 로우 AVPN 시장 총괄 겸 부대표

아시아의 부(富)는 지난 10년간 세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그 자본이 기후 위기, 불평등, 보건 격차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자본은 존재합니다. 다만 흐르지 않을 뿐이죠.”

아시아태평양 최대 임팩트 투자 네트워크 AVPN(Asian Venture Philanthropy Network)의 파시안 로우(Patsian Low)시장 총괄 겸 부대표(Chief of Markets and Deputy CEO)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임팩트 금융, CSR, 자선, 지속가능성 분야를 넘나들며 30여 년간 미국과 아시아에서 활동해온 ‘임팩트 전문가’다. 비자(Visa) 아시아태평양 지속가능성 총괄 부사장, DBS재단 CSR 총괄, 싱가포르 자선센터 이사를 거쳐, 현재는 AVPN에서 동남아·동북아·오세아니아 3개 권역을 아우르는 시장 전략 총괄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 17일 열린 ‘2025 임팩트투자 생태계 간담회’에서 파시안 로우(Patsian Low)시장 총괄 겸 부대표(Chief of Markets and Deputy CEO)가 발언하고 있다. /김규리 기자

그녀가 몸담고 있는 AVPN은 아시아태평양 최대의 임팩트 투자 네트워크다. ‘임팩트를 향해 자본을 움직인다’는 슬로건 아래, 현재 전 세계 33개국에서 재단·기업·패밀리오피스·정부기관·비영리조직 등 600여 개 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AVPN은 컨퍼런스, 아카데미, 협업 플랫폼 등을 통해 자본과 사회문제를 연결하는 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18일, <더나은미래>는 MYSC가 주최한 ‘2025 임팩트투자 생태계 간담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로우 부대표를 서울에서 만났다.

― AVPN은 다양한 조직과 이해관계자를 연결합니다. 협업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텐데요.

“공통의 관심사와 필요를 찾는 것이 핵심입니다. AVPN은 기후, 성평등, 보건 등 주제별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고, 각 조직은 자신이 속한 의제에 따라 이 플랫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인도에서 인공지능(AI)과 디지털 리터러시 관련 사회문제를 다루고 싶다면, 이미 이 분야에서 경험이 있는 조직과 연결합니다. 건강과 기후, 젠더과 기술처럼 경계를 넘는 의제는 혼자선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임팩트 생태계의 정보 인프라를 표준화해, 보다 쉽게 협력할 수 있는 인프라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협업 사례가 있다면요.

“구글과 함께 만든 ‘AI 기회 펀드(AI Opportunity Fund)’입니다. 총 1500만 달러 규모로, 아시아탱평양 지역에서 AI 기술을 사회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조직을 지원하는 펀드입니다. 한국에서도 두 곳이 선정됐습니다. 교육 기업 ‘어썸스쿨’과 AI 학습 커뮤니티 지피터스를 운영하는 ‘지니파이’입니다. AVPN은 펀드 설계부터 대상 조직 발굴, 실사, 성과관리까지 전 과정에 참여합니다.”

지난해 4월 열린 ‘AVPN 글로벌 컨퍼런스 2024’ 현장의 모습. /AVPN

―미국과 아시아 전역에서 임팩트 및 지속가능금융, CSR, 비영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30년 넘게 활동해 오셨습니다. 아시아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먼저 ‘실질적인 협업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AVPN은 최근’ 풀링 펀드(Pooled Fund)’를 출시했습니다. 재단뿐만 아니라 기업, 패밀리오피스 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의 자금을 모아 공동으로 운용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주체가 자본을 결집해 보다 큰 임팩트를 만들어내도록 지원하는 모델입니다. 단일 주체의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재단 간 공동 펀드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기업이나 개인 자산가도 함께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협업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보 접근성입니다. 자본이 어디에 투입돼야 효과적인지, 어떤 파트너와 손잡아야 할지를 몰라서 협업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VPN은 오는 27일 ‘임팩트 콜랩(Impact Collab)’ 플랫폼을 공식 출시합니다. 아시아 6개국의 임팩트 조직 정보를 통합·표준화해, 수백 개 조직을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실사할 수 있게 했습니다. AI 기술을 기반으로 설계된 이 플랫폼은 자본의 흐름을 바꾸는 정보 인프라가 될 것입니다.”

지난 18일 <더나은미래>와 만나 인터뷰하는 파시안 로우(Patsian Low)시장 총괄 겸 부대표(Chief of Markets and Deputy CEO)의 모습. /김규리 기자

―임팩트 스타트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어떤 자금 구조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가장 필요한 것은 ‘유연한 자금’입니다. 초기나 성장 단계에 있는 조직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확장하기 위해 시드 자본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용처가 제한된 목적성 자금만 지원받는 경우가 많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인건비나 운영비처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제한 없는 자금(Unrestricted Funding)’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AVPN은 일부 펀드를 통해 이런 자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금 외에 임팩트 조직에 필요한 또 다른 지원은 무엇일까요

“임팩트 측정 역량입니다. 많은 조직이 재무성과에는 집중하지만, 임팩트를 체계적으로 추적하고 관리할 여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특히 측정 지표의 일관성이나 기술적 기반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보완하려면 명확한 측정·관리 프레임워크가 필요합니다. AVPN은 회원 조직이 임팩트를 보다 구조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도구와 기준을 함께 지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임팩트’란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계십니까.

“임팩트는 하나의 여정입니다. 단일 지표나 한 번의 성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중요한 건 자본이 임팩트를 향해 흐르도록 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많은 조직이 프로젝트 성과에는 집중하지만, 실제로 어떤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는 측정하지 않거나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자본의 흐름과 사회적 성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로우 부대표는 “진정한 배움은 익숙한 환경을 벗어날 때 가능하다”며 “그래서 AVPN은 국경을 넘어 연결하고,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AVPN은 오는 9월 9일부터 11일까지 홍콩에서 ‘AVPN 글로벌 컨퍼런스 2025’를 개최한다. ‘포용적인 세계를 위한 아시아 리더십(Asian Leadership for an Inclusive World)’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아시아 각국의 임팩트 조직과 투자자, 정책 담당자들이 모여 선도 사례를 공유하고, 글로벌 협업 기회를 모색할 예정이다.

그녀는 “이번 컨퍼런스가 아시아 조직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SDGs 달성을 위한 공동의 전략을 설계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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