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는 더 이상 관료나 전문가들만의 주제가 아니다. 이제는 밥상머리에서, 날씨를 묻는 일상 인사에서, 거실의 TV 앞에서 누구나 언급하는 공통의 화두가 됐다. 2022년 구글코리아가 발표한 ‘올해의 검색어’ 1위가 ‘기후변화’였다는 사실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이렇게 모두가 이야기하는 주제일수록 그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하는 일이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미국 언어학자 벤자민 리 워프는 “언어는 사고의 본질과 내용을 규정한다”고 했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단어 하나에도 생각의 방향과 세계관이 담긴다. 그 단어를 어떻게 선택하고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관점이 읽힌다.
예를 들어보자. 흔히 ‘신재생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용어다. 신재생에너지는 3종류(수소에너지, 연료전지, 석탄 액화∙가스화 에너지)의 신에너지와 태양광, 풍력을 비롯한 9종류의 재생에너지로 구분한다. ‘신재생에너지’는 ‘재생에너지’ 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를 일부 포함하고 있어 친환경으로 보기 어렵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재생에너지’를 ‘소비되는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재생되는 자연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정의한다는 것을 참고하자.
‘무탄소’와 ‘탈탄소’,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맥락은 다르다. 영어로는 각각 ‘Carbon-free’와 ‘Decarbonization’으로 번역된다. 전자는 단순히 탄소 배출이 없다는 ‘상태’를 뜻하고, 후자는 탄소를 줄여나가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다시 말해, 결과 중심이냐 과정 중심이냐의 차이다. 수학으로 치면 스칼라와 벡터의 관계와 비슷하다. ‘무탄소’는 기술중립적 개념이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원자력 발전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니 ‘괜찮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기술낙관론과 결과 중심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단지 탄소 배출을 멈추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어떻게’ 멈추느냐, 즉 전환의 경로와 방식도 함께 따져야 한다.
더 나아가 ‘공정한 전환’과 ‘정의로운 전환’도 구분해야 한다. 영어 원어인 ‘Just Transition’을 살펴보면, ‘정의’가 보다 정확한 번역이다. ‘정의’는 각자의 사회·경제적 조건, 문화적 격차를 고려한 형평성을 내포한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정’ 개념은 주어진 룰 안에서의 기회 균등에 집중한다. 결과의 형평성보다 출발선의 동일성에 무게를 두는 셈이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충격은 모든 계층에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저소득층, 노동 집약 산업 종사자, 농어촌 거주민 등은 전환의 비용을 더 크게 감당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개인의 능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모두에게 보장되려면, 전환 과정이 얼마나 ‘정의롭게’ 이행되는지가 핵심이다.
‘탄소예산(Carbon Budget)’은 기후위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다. 생소한 용어 탓에 일반인은 물론 정책 결정자들마저 이를 ‘탄소 감축을 위한 정부 재정 예산’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20년 국회 질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조차 이를 정부 예산으로 착각해 답변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탄소예산의 본질은 전혀 다르다. 이는 특정 온도 상승 한계를 넘지 않기 위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총량을 뜻한다. 즉, ‘지구에 남은 시간’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2018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1.5도 특별보고서’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과학계와 국제사회에서 기후정책의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비영리단체 카본브리프(Carbon Brief)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017년에 태어난 세대는 1950년대 출생자에 비해 단 8분의 1 수준의 탄소만 배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탄소예산’이 구조적으로 미래세대가 어떤 기후 부정의(不正義)를 겪고 있는지 드러내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과연 나와 내 주변에는 어떤 기후 용어들이 둘러싸고 있는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사소함이 큰 차이를 만든다. 기후 용어가 내재하는 담론을 인지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타인을 통해 전달되는 기후 용어를 관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맥락과 본질을 이해하는 것부터 기후위기 대응을 시작해보자. 끝으로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가 1914년 ‘정오의 악마(Le Démon de mid)’라는 저서에 남긴 말을 선물하고 싶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김민 빅웨이브 대표
필자 소개 ‘당사자에서 배제되고 파편화된 청년들이 기후위기의 대응의 주체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사단법인 빅웨이브의 대표입니다. 외계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어벤져스’를 모으는 것과 같이, 더 많은 역량 있는 청년들이 성장하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온전히 목소리 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NGO, 국회, 정부 위원회 등 다양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기후위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후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기후 유니버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