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을 오래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진입은 늘었지만 경로는 불안정한 임팩트 커리어
재원 구조와 고용 조건, 이제는 ‘지속성’을 설계할 때

임팩트 커리어는 지난 10여 년 사이 한국 사회혁신 생태계에서 하나의 선명한 언어로 자리 잡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선택은 더 이상 낯선 선언이 아니다. 성수동이라는 거점이 형성됐고, 임팩트 투자와 정책 자본이 유입됐으며, ‘소셜벤처’라는 이름도 대중화됐다. 적어도 생태계 안에서 ‘의미 있는 일’은 하나의 선택지로 존재하게 됐다.

그러나 이 흐름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임팩트 커리어는 여전히 일부 네트워크 안에서 공유되는 경로에 가깝다. 얼마나 안정적인지, 장기적으로 어떤 이동과 성장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았다. 의미에 대한 언어는 빠르게 확장됐지만, 그 의미를 떠받치는 노동 조건과 경로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 간극은 개인과 조직 모두의 경험에서 드러난다. 임팩트 생태계로 유입되는 청년은 늘었지만, 일정 시점 이후 커리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직 역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장기적으로 고용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확보하지는 못한다. 생태계는 커졌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여전히 불안정하게 배치돼 있는 경우가 많다.

◇ 하이브리드 조직의 딜레마 : 미션과 시장 사이의 줄타기

한국 임팩트 생태계의 성장은 정부 지원과 맞물려 전개돼 왔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과 이후 이어진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은 사회문제 해결을 표방한 조직들이 시장과 고용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다만 이 모델은 구조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공공 지원은 대부분 특정 사업 수행을 기준으로 설계됐고, 재원 역시 한시적·성과 중심으로 배분됐다. 조직의 존속이나 상시 인력 운영을 전제로 한 구조라기보다, 일정 기간 과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프로젝트 종료와 함께 짐을 정리하는 조직 구성원의 모습. /AI 생성 이미지

이러한 재원 구조는 고용 방식으로 이어진다. 사업 기간에 맞춰 인력을 채용하고, 프로젝트 종료와 함께 계약을 정리하는 관행이 반복되면서 상시 인력을 전제로 한 성장 경로를 설계하기 어려워졌다. 경험은 쌓이지만, 경력은 축적되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된 셈이다.

공모전과 공공 지원을 넘어선 조직들이 마주하는 다음 단계는 임팩트 투자다. 그러나 한국의 임팩트 투자 시장은 여전히 VC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고, 긴 투자 사이클과 제한된 자본 유입 통로는 불확실성을 키운다.

특히 노동집약적이고 포용적 성격이 강한 영역은 높은 기대 수익률과 빠른 회수 주기를 요구하는 벤처 투자 구조와 충돌한다. 그 결과 ‘투자가 되는 문제’는 성장하지만, 사회적 필요가 큰 영역은 자본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임팩트 투자 시장이 성장할수록 오히려 ‘풀어야 할 문제’와 ‘투자가 가능한 문제’ 사이의 간극이 또렷해지는 역설이 나타난다.

‘비영리 스타트업’의 등장은 이러한 틈새에서 나온 시도다. 비영리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스타트업의 방법론을 결합해 지속성을 확보하려는 실험이다. 그러나 후원과 사업을 병행하는 구조 속에서 안정적인 보상 체계를 설계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미션과 시장 사이의 줄타기는 조직뿐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커리어에도 그대로 전가된다.

설명되지 않은 노동, 공유되지 않은 기준

임팩트 활동은 여전히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이거나 ‘선의에 기반한 선택’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식은 낮은 보상과 불안정한 고용을 구조의 문제로 다루기보다,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조직의 체계 부족이나 리더십의 한계 역시 개인의 적응 문제로 환원되기 쉽다.

문제는 이 영역의 노동 조건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회적기업이나 소셜 섹터 종사자의 임금 수준을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공신력 있는 통계는 사실상 부재하다. 일부 실태조사와 연구가 단편적인 추정치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를 장기적 커리어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단순한 통계의 공백을 넘어, 이 영역의 노동이 어떤 조건에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임팩트 커리어가 하나의 선택지로 논의되면서도, 그 선택이 감당해야 할 생활 수준과 보상의 현실은 명확히 언어화되지 못한 채 개인의 사명감과 각오의 문제로 남아왔다. 설명되지 않은 노동 위에 공유되지 않은 기준이 얹히면서, 조직과 개인은 서로 다른 기대를 안고 만나는 구조가 반복된다.

진입은 늘었지만, 경로는 설계되지 않았다

임팩트 생태계는 정책을 계기로 성장해 왔다. 공공 재원과 청년 일자리 제도는 사회문제 해결 조직과 청년을 연결하는 통로를 열었다. KOICA YP(청년인턴), 서울시 미래청년일자리 사업 등은 이전보다 낮은 문턱으로 ‘한번 일해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시 미래청년일자리 모집 포스터. /서울시

문제는 그다음이다. 제도의 초점은 주로 ‘진입’에 맞춰져 있다. 일정 기간 인건비를 지원하고 청년을 배치하는 구조는 경험을 제공하지만, 그 경험이 어떤 역량으로 축적되고 이후 어떤 경로로 이어지는지는 충분히 설계돼 있지 않다. 문은 열렸지만, 길은 그려지지 않은 셈이다.

현장에서는 이 간극이 더욱 선명하다. KOICA YP를 통해 국제개발 현장을 경험하더라도, 이후 어떤 직무와 경력으로 이어질지는 개인의 네트워크와 역량에 크게 의존한다. 서울시 미래청년일자리 역시 진입 기회를 넓혔지만, 실제 배치는 행정·기획 기능이 갖춰진 중간지원조직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소규모 현장 조직에 배치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조직의 여력이 부족해 역할과 학습 경로를 명확히 설계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역할이 불분명하고 피드백 구조가 없는 환경에서는 경험이 역량으로 축적되기 어렵다. 일부 청년에게 첫 경험은 성장의 발판이 아니라 생태계 전반에 대한 회의로 남기도 한다.

이제 질문은 제도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어떤 조직을 통해, 어떤 경험을 설계하고 있는가다. 진입 이후의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면, 제도는 ‘짧은 경험’만 반복할 뿐이다. 커리어의 축적이 개인의 각오와 운에 맡겨진 구조라면, 생태계의 성장은 절반에 머물 수밖에 없다.

더 넓은 상상력을 위한 조건

임팩트 생태계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서 질문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가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였다면, 이제는 “이 구조 안에서 사람은 얼마나 오래 일하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생태계의 성숙은 조직 수가 아니라 커리어의 길이와 깊이로 판단되어야 한다.

일의 의미만으로는 커리어가 유지되지 않는다. 보상, 성장 경로, 의사결정 구조가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매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현장에서는 HR 투자 부족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대표는 재원 확보에 집중하고, 구성원의 역할 정의와 성장 설계는 후순위로 밀린다. 외부 임팩트는 강조되지만 내부 인재에 대한 체계적 투자는 부족하고, 그 결과 의미를 기대하고 들어온 청년들이 번아웃을 겪는다.

여기서 필요한 ‘합리성’은 높은 연봉이 아니라, 급여와 역할, 성장 속도를 투명하게 조율할 수 있는 구조다. “의미 있으니 감내하라”는 요구 대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AI 시대에는 지식의 양보다 질문의 깊이가 중요해진다. 현장의 긴장을 읽고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판단하는 역량은 반복과 피드백을 통해 축적된다.

Z세대의 가치 지향적 선택은 분명한 흐름이지만, 유입만 늘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준비되지 않은 조직 경험이 반복된다면 생태계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임팩트 커리어를 촉진한다는 것은 숫자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시간과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설계하는 일이다. 문은 이미 열려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문 이후의 길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일이다.

김경하·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 이 기사는 SSIR 코리아에 게재된 ‘임팩트 커리어의 진입과 축적 사이, 좋은 일을 오래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아티클을 바탕으로, 독자를 위해 분량과 구성을 조정해 재편집한 기사입니다. 원문 전문은 SSIR 코리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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