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과 진로를 넘어 ‘경험’으로 설계된 사회혁신 커리어의 출발점
한양대 사례로 본 사회혁신 이니셔티브의 조건과 한계
사회혁신은 특정 전공이나 직업군의 전유물이 아니다. 실내건축디자인, 경영학, 산업공학을 전공한 세 명의 청년은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사회혁신을 접했고, 이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재설계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대학에서 사회혁신을 개념이 아닌 경험으로 접했다는 점이다.
실내건축디자인을 전공한 이정인 씨는 수업을 통해 사회혁신을 처음 알게 됐다. 사회혁신은 전공과 무관한 영역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업에서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를 인터뷰하며 돌봄의 사각지대를 접했고, 이후 전공 수업에서 수용자 부모와 자녀가 만나는 접견 공간을 설계 주제로 삼았다. 공간 디자인이 사회문제 해결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파이낸스경영학을 전공한 조수연 씨는 취업 준비 과정에서 사회혁신융합전공 수업을 선택했다. 사회혁신을 막연히 사회복지와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하던 그는 수업과 인턴십을 통해 이 영역이 요구하는 전문성과 가치지향성을 체감했다. 졸업 후 대기업인 삼성전자에 입사했지만, 의미와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웠고 결국 회사를 떠나 사회혁신 조직 임팩트리서치랩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백경은 씨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사회적기업 동아리 활동을 통해 캠퍼스 내 자원순환을 촉진하는 기부 모델을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임팩트 지향 조직에서의 인턴십 경험을 거쳐 영리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는,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자신의 업무를 임팩트 관점에서 해석하며 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양대학교에서 사회혁신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양대는 2018년 사회혁신융합전공을 신설하고, 교과·비교과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형 인재 양성을 시도해왔다. 이는 대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흐름 속에서 추진된 이니셔티브였다.
다만 사회혁신을 교육의 주제로 삼는 것과, 이를 대학 안에 내재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회혁신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실험을 전제로 한다. 반면 대학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사회혁신의 방식은 분업화되고 규칙화된 대학 구조와 긴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 간극을 좁히지 못할 경우 사회혁신 교육은 일회성 프로그램에 머물거나, 특정 개인의 헌신에 의존한 채 지속성을 확보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를 촉진한 다섯 가지 역할
한양대는 사회혁신융합전공을 비롯한 교과·비교과 프로그램과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 조직과 예산을 갖추며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왔다. 다만 사회혁신이 대학 전반의 시스템과 문화로 깊이 내재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일정 수준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인의 역할이 구조적으로 맞물린 경험이 있었다. 한양대 사례를 분석하면, 대학에서 사회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비저너리 이니시에이터(Visionary Initiator)다. 대학의 언어와 맥락을 활용해 사회혁신이라는 낯선 개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다. 한양대에서는 이영무 전 총장이 이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건학이념을 재해석해 사회봉사를 넘어 글로벌 사회문제 해결로 확장하는 비전을 제시했고, 이는 한양대가 사회혁신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이는 출발점이 됐다.

둘째는 시스템 전략가(Systemic Strategist)다. 사회혁신이 대학 시스템 안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구조적 경로를 설계하는 역할이다. 초대 사회혁신센터장을 맡았던 서진석 총무처장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설계 원칙으로 삼아 사회혁신센터 설립과 융합전공 개설을 이끌었다. 소셜벤처 연계 봉사, 아시아개발은행과 협력한 APYE(Asia Pacific Youth Exchange) 프로그램 등은 사회혁신을 제도 안에서 구조화한 사례로 평가된다.
셋째 애자일 어댑터(Agile Adopter)다. 대학 밖에서 일어나는 사회혁신의 흐름을 빠르게 포착해 대학 안으로 연결하는 역할이다. 신현상 교수는 아쇼카 U 체인지메이커 캠퍼스 인증을 주도하고, 사회혁신융합전공을 설계했으며,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SSIR) 한국어판을 도입해 한양대를 사회혁신 지식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교수창업제도를 활용해 설립한 임팩트리서치랩을 통해 외부 네트워크와 자원을 대학 안으로 연결하기도 했다.

넷째는 임파워링된 맥락형 실무자(Empowered Contextual Operator)다. 제도와 현장을 동시에 이해하며 학생들의 실험을 실제 경험으로 연결하는 역할이다. 사회혁신 교육은 비선형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실무자가 주어진 업무를 넘어 역할을 능동적으로 재정의하지 않으면 학생들의 경험은 형식에 그치기 쉽다. 사회혁신센터에서 2017년부터 근무한 한양대 김은정 부장은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도록 자원과 기회를 연결하며, 사회혁신센터를 자발적 실험이 이어지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다섯째는 역동을 만드는 개척가형 전문가(Disruptive and Pioneering Professional)다. 현장에서 축적한 사회혁신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과 생태계를 잇는 촉매 역할을 한다. 한양대의 서현선 특임교수는 아름다운재단 국제협력팀장, 진저티프로젝트 대표, 루트임팩트 이사 등을 지낸 사회혁신 전문가로, 2021년 한양대 겸임교수로 임용, 2024년부터는 SSIR 한국어판 편집장을 맡고 있다. 그녀는 사회혁신 실무 경험을 교육 과정에 접목하고, 생태계 실무자들을 겸임교수로 연결하며 대학과 현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들 역할은 결코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비전이 구조로 번역되고, 외부 실험이 제도 안에 안착하며, 현장의 언어가 교육 과정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역할 간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 혁신을 가로막는 허들과 해법
대학에는 사회혁신을 촉진하는 다양한 역할 유형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거나 협력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물도 함께 존재한다. 혁신의 속도를 높이면 내부 긴장과 저항이 커지고,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면 사회혁신의 본질을 구현하기 어려워지는 딜레마가 반복된다. 이는 사회혁신을 시도하는 대학이라면 공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과제다.
첫째, 대학 구성원들은 사회혁신적 태도와 역량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교직원들은 안정적인 운영과 시스템 이해에 강점을 갖고 있지만, 이 같은 특성이 변화에 대한 관성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회혁신 과정에서는 개방성, 유연성, 학습력, 협력적 태도가 요구되지만, 사회혁신이 낯선 구성원들에게는 이러한 역량을 발휘할 동기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실무자는 쉽게 소진되고, 사회혁신 프로그램은 형식화될 위험이 있다. 이를 완화하려면 교직원을 사회혁신 생태계의 일원으로 호명하고, 학습과 성장의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한편, 순환근무 등 경험 축적을 가로막는 구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대학과 생태계 실무자 사이의 상호 이해 부족도 협력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생태계 실무자에게 대학은 절차와 규범이 복잡한 낯선 시스템이고, 대학 구성원에게 생태계의 일하는 방식은 비정형적이고 위험해 보일 수 있다. 이 간극은 오해와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학이 생태계의 전문성과 역동성을 제도적으로 수용하고, 생태계 실무자는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와 문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중개자’의 역할이 중요하며, 대학은 이들의 기여를 조직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전체를 조망하며 조정하는 오케스트레이션 기능의 부재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회혁신은 통제된 실험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진행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프로그램과 자원을 미션 중심으로 정렬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의 분업화된 구조와 칸막이는 통합적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 자원이 중복 투입되거나, 정작 중요한 시도에는 충분한 지원이 닿지 않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미션과 변화이론을 명확히 하고, 실행과 성과를 점검하는 전략적 관리가 요구되는 이유다.
넷째, 대학 구성원 사이에 존재하는 고정된 역할 인식도 협력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학생은 수동적 존재, 직원은 보수적 주체, 교수는 실무와 거리가 먼 존재라는 인식은 실제 역량을 가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질 때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학생, 변화를 밀어붙이는 교직원, 실무 감각을 갖춘 교수들이 존재한다. 대학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협력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실험과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 없이는 사회혁신도 정착되기 어렵다.

대학은 이들이 더 많이 발굴되고 그들 사이의 협력이 활성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생들의 임팩트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하거나 자문하던 교수가 동업자 수준의 페이스메이커로 학생들과 협업한다면 어떨까? 사회혁신 전공의 학습 경험 설계를 학생들이 주도한다면 어떨까? 대학의 사회혁신 시도를 가로막는 구조적 개선 지점을 실무자들이 직접 제안하고, 그것이 대학 차원에서 반영된다면 어떨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새로운 상상과 그것을 실행으로 옮길 용기 그리고 실험과 실패를 기꺼이 허용하는 문화이다.
◇ 개인의 역할을 넘어 시스템으로
한양대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는 완결된 모델은 아니지만, 사회혁신을 교육하고 실천하는 대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비전을 품고, 구조를 설계하며, 현장과의 접점을 늘린 이들의 협력적 노력은, 대학과 사회혁신 간의 간극을 좁히며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대학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촉진되느냐는 결국 대학이 얼마나 사회혁신적 조직으로 거듭나느냐에 달려있다.
개인에 의존적인 초기 단계의 시도를 넘어, 사회혁신이 대학에 내재화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역할을 구조와 문화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 시스템적 전환은 관성을 깨고 협력을 가속화한다는 목표 아래 이뤄져야 한다. 학생과 교직원, 교수, 현장 실무자가 함께 상상하고 실험하는 사회혁신의 장을 열 때, 대학은 심화하는 사회문제들을 앞서 해결하는 혁신의 주체가 될 것이다.
※ 이 기사는 SSIR 코리아에 게재된 ‘사회혁신적인 대학이 사회혁신가를 키운다’ 아티클을 바탕으로, 독자를 위해 분량과 구성을 조정해 재편집한 기사입니다. 원문 전문은 SSIR 코리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현중은 2023년부터 SSIR 한국어판의 에디터 및 콘텐츠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루트임팩트 임팩트베이스캠프와 임팩트커리어Y를 통해 임팩트 생태계에 진입한 그는 씨닷C.에서 동료들과 함께 시스템 변화를 촉진하는 다양한 연결을 만들었다. 이후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혁신단 산하 한양 SSIR Korea 센터에서 근무하며, '현장 출신'으로 대학이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를 가속화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대학과 사회혁신 생태계를 연결하는 일과 사회혁신을 생태계적 관점에서 탐구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