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에서 시작된 실험, ‘사회혁신 커리어’의 길을 만들다

교육·채용·커뮤니티로 만든 사회혁신 인재 생태계
루트임팩트가 설계한 임팩트 커리어 경로

2014년 서울 성수동에는 막 창업을 시작한 창업가, 사회문제에 관심 많은 대학생, 갭이어를 선택한 직장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공통 관심사는 ‘사회혁신’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성수동은 사회혁신을 위해 일하는 조직 500여 곳이 모인 소셜벤처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 짧지 않은 변화의 이면에는 ‘사람이 모이고, 머물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 국내 사회혁신 생태계는 공공 중심의 제도와 과제형 지원이 주를 이뤘다. 반면 성수동에서는 민간 주도로, 사람과 조직을 중심에 둔 비즈니스 기반의 독립적인 생태계가 자라기 시작했다. 사단법인 루트임팩트는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를 설계하고 움직일 ‘사람’이 핵심이라고 보았다. 특히 사회문제 해결을 일로 삼을 수 있는 인재가 생태계에 유입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은 요원하다고 판단했다.

“생태계 초기에 창업가들은 모일 때마다 채용이 쉽지 않다는 대화를 나눴어요. 아직 생태계 규모가 작기도 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도 어려웠거든요.”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의 회상처럼 그 시기 사회혁신 조직들은 공통적으로 인재 유입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010년대 중반, 사회혁신 분야는 청년들에게 하나의 ‘커리어 선택지’로 인식되지 않았다. 당시 주요 청년 고용 통계와 직업 조사에서도 사회혁신·소셜벤처·비영리 영역은 별도의 범주로 다뤄지지 않았다. 관심은 있었지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보이지 않았고, 진입 경로 역시 비공식적이거나 암묵적이었다. 낮은 보상과 고용 불안정에 대한 인식은 사회혁신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이었다.

루트임팩트는 이 문제를 사회혁신 생태계 성장의 병목으로 보았다. 인재가 준비되고, 진입하고, 이후에도 머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준비–진입–지속’이라는 인재 경로를 중심으로 사회혁신 커리어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선한 마음을 넘어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가 탄생하다

인재의 준비 단계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은 교육 프로그램 ‘임팩트 베이스캠프(IBC)’였다. 사회혁신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조차 불분명하던 시기, 루트임팩트는 “어떤 사람이 이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IBC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Project Based Learning)을 통해 실제 사회·환경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도록 설계됐다. 참가자들은 제한된 시간과 자원, 팀 내 갈등 등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문제를 끝까지 다뤄보며 사회혁신이 ‘선한 마음’이 아닌 구체적인 역량과 태도를 요구하는 일이라는 점을 체감했다.

임팩트 베이스캠프 10주년 기념식에서 100여 명의 알럼나이가 과거와 현재를 함께 이야기했다. /임팩트닷커리어

지난 10년간 458명의 인재가 이 과정을 거쳤고, 이 중 약 45%가 현재 사회혁신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IBC는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을 넘어, 생태계로 진입하는 공통의 언어이자 신뢰의 표식으로 기능해왔다.

소셜벤처들을 묶어 ‘진입의 문’을 열고, 머무를 이유를 만들다

준비된 인재가 늘어나도 이들이 조직과 연결되지 않으면 생태계는 확장될 수 없다. 당시 소셜벤처 채용 정보는 흩어져 있었고, 인재 입장에서는 조직의 신뢰성과 지속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려웠다.

루트임팩트는 이를 개별 조직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여러 소셜벤처를 묶는 공동채용 프로그램 ‘임팩트 챌린저스(현 임팩트커리어Y)’를 시작했다. 개별 조직이 갖기 어려운 채용·홍보·온보딩 기능을 생태계 차원에서 공동으로 설계한 것이다.

2014년 1기 공동채용에는 마리몬드, 점프, 임팩트스퀘어 등 15개 조직이 참여했다. 지원자들은 여러 조직의 미션과 포지션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었고, 합격자들은 입사 전 공통 부트캠프를 통해 사회혁신 생태계 전반을 이해했다. 이후 공동채용은 정규직 중심으로 확장되며 12기까지 100여 개 조직과 인재를 연결했다.

진입 이후의 ‘지속’을 가능하게 한 것은 커뮤니티와 공간이었다. 교육과 채용 프로그램에 ‘기수제’를 도입해 인재들이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맺도록 했고, 이는 사회혁신을 업으로 삼는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세심한 개입과 적절한 지원이 필요했다. 기수별 채팅방을 만들어 이들이 연결될 수 있는 초기 기반을 마련하고, 멤버들의 사이드 프로젝트 활동을 지원하거나 관심사 기반의 1:1 수시 연결 등을 통해 정보와 관계가 순환할 수 있도록 했다. 매년 진행된 커뮤니티 네트워킹 행사는 기수를 넘어 모든 멤버가 한자리에 모이는 장이었다.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은 인재는 현직자의 사례를 보며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미 진입한 사람은 새로운 인재와 연결되며 생태계의 선순환이 강화됐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커뮤니티 오피스 헤이그라운드 2개 지점은 사회,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현직자를 만나는 장이자 서로의 존재를 통해 스스로의 선택을 확신할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한다. /헤이그라운드

여기에 커뮤니티 오피스 ‘헤이그라운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수동에 위치한 헤이그라운드 2개 지점에는 약 100개 조직, 1000여 명의 현직자가 모여 있다. 예비 인재들은 이곳에서 사회혁신이 실제 산업으로 존재한다는 감각을 경험했고, 현직자들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선택을 재확인했다.

본질을 지키며 구조를 확장하다

시간이 흐르며 루트임팩트의 모델은 시장과 제도로 빠르게 확산됐다. 교육 방식은 커리어 교육 시장으로, 공동채용은 지자체 사업으로 복제됐다. 그러나 포맷만 확산되고 ‘사회혁신 인재 양성’이라는 본질이 희석되는 한계도 드러났다.

이에 루트임팩트는 다시 본질로 돌아갔다. 임팩트 베이스캠프의 정체성을 ‘사회혁신 생태계 입문 교육’으로 재정립하고, 대학과 협력해 정규 교과로 확장하는 실험에 나섰다. 2025년 한양대 글로벌사회혁신단과의 공동 커리큘럼 개발, 2026년 정규 교과화가 그 일환이다. 또한 개발된 커리큘럼을 서울여자대학교 SI교육센터를 통해 교과의 일부 콘텐츠로 제공하는 실험도 했다.

채용 영역에서도 역할을 조정했다. 인건비 지원 중심의 공동채용 모델이 확산된 상황에서, 루트임팩트는 진입 이후의 온보딩과 지속에 집중하며 생태계 ‘온보딩 부트캠프’와 ‘상시 매칭 플랫폼’으로 확장했다. 현재 1만 명 이상의 인재와 600여 개 조직이 이 플랫폼을 통해 연결돼 있다. 이는 단순한 플랫폼 론칭을 넘어선 채용을 일회성 이벤트에서 생태계 인프라로 진화시키려는 시도다.

◇ 다음 10년을 위해 더 많은 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구조적 실험은 단독으로 실행할 수 없었다. 또한 인재를 통해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단기간의 성과로 측정되기 어렵고, ‘준비–진입–지속’으로 이어지는 삼중 구조 역시 단일 프로그램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루트임팩트의 실험이 10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파트너들의 장기적이고 일관된 지지가 있었다.

구글닷오알지는 약 10년간 비연속적이지만 꾸준히 루트임팩트의 인재 경로 설계를 뒷받침해왔다. 처음부터 모든 방향이 완벽히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생태계의 변화에 따라 지원의 방식과 초점을 조정하고, 전환기마다 필요한 해법을 함께 모색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협력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조직이 바라보는 문제의 출발점이 같았기 때문이다. 기술과 자원을 기반으로 지역 사회혁신 조직을 지원해 글로벌 임팩트를 확장한다는 구글닷오알지의 원칙은, 현장의 요구에 귀 기울이며 사람 중심의 사회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루트임팩트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었다.

이 같은 공감대는 일회성 후원을 넘어, 생태계의 변곡점마다 이어지는 신뢰의 축적로 이어졌다. 구글닷오알지뿐 아니라 청년 고용 확대에 주력해온 JP모간체이스, 청년 일자리 접근성을 지원해온 씨티재단과 한국씨티은행, 고용 격차 해소를 위한 자원과 전문성을 제공해온 뱅크 오브 아메리카, 비영리 조직 성장을 지원해온 브라이언임팩트 재단 등도 각자의 핵심 미션과 맞닿은 지점에서 이 여정에 힘을 보탰다.

이들 파트너십을 통해 루트임팩트는 생태계의 성장 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과제를 대응하며 인재 경로를 점진적으로 정교화할 수 있었다. 축적된 신뢰와 협력의 경험은 루트임팩트가 단발성 사업을 넘어 구조적 인프라를 구축해온 기반이 되었고, 향후 시스템 체인지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가 되고 있다.

이제 질문은 다음 단계로 향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인재가 사회혁신 생태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을까?” 여전히 많은 청년들은 사회혁신을 하나의 ‘직업적 선택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그 경로를 알고 있는 사람도 제한적이다. 인프라가 존재한다고 해서 인재가 자연스럽게 유입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지난 10년간 구축해온 인재 인프라의 가시성을 높이고, 이를 더 넓은 스케일로 확장할 수 있는 협력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는 더 이상 루트임팩트 한 조직의 역량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의 인식 변화, 대학 교육 구조의 전환, 생태계 플레이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맞물려야 인재 중심 생태계가 사회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일 해법이 아니라 다층적인 협력 구조다. 이는 루트임팩트가 지난 10년의 실험을 넘어, 다음 단계의 시스템 체인지로 나아가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 이 기사는 SSIR 코리아에 게재된 ‘사회혁신 커리어 경로의 설계: 선택지에 없던 길을 만들다’ 아티클을 바탕으로, 독자를 위해 분량과 구성을 조정해 재편집한 기사입니다. 원문 전문은 SSIR 코리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이혜란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NGO, 사회적기업, 스타트업 등을 거치며 커리어를 쌓았다. 현재는 루트임팩트 임팩트닷커리어 팀에서 인재의 생태계 진입을 위한 브랜드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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