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동물해방 없이는 인간해방도 없다”

[인터뷰]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

1978년 발표된 유네스코 ‘세계 동물권 선언’ 제3조는 ‘어떤 동물도 잘못된 처우나 잔인한 행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그로부터 44년이 지난 오늘,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당시의 선언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동물해방이라는 표현 안에는 인간해방도 포함된다"라며 "동물해방은 곧 우리 모두의 해방"이라고 말했다. /주민욱 C영상미디어 기자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동물해방이라는 표현 안에는 인간해방도 포함된다”라며 “동물해방은 곧 우리 모두의 해방”이라고 말했다. /주민욱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점 풀무질에서 이지연(31) 동물해방물결 대표를 만났다. 동물해방물결은 국내 최초로 ‘동물해방’ ‘종 차별철폐’ 등을 전면에 내건 비영리단체다. 국제동물권단체 LCA(Last Chance for Animals)의 도움을 받아 2017년 11월 설립됐다. 동물해방물결은 동물권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입법을 촉구하기 위한 캠페인, 집회, 추적 조사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대표를 비롯한 활동가 8명과 1000명이 넘는 후원자들이 동물해방을 위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동물해방, 불편한 진실을 외치다

-언제부터 동물권에 관심 있었나?

“어릴 때부터 거의 매년 동물원에 갈 정도로 동물을 좋아했다. 대학교 3학년 때쯤 춘천의 한 동물원에서 바닥에 널브러진 호랑이가 철창문을 두들기며 울부짖는데 불행해 보였다. 사육 환경이 열악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저 호랑이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는 존재구나’라고 생각했다. 한 동물을 보며 시작된 문제의식이 점차 다른 동물로까지 확장됐다. 사육, 실험, 오락 등으로 비인간 동물이 고통받는 현실에 눈을 떴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환경지리학 석사를 하던 중, 우리나라에도 동물권을 위한 움직임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한국에 돌아와 여러 동물권 단체에서 캠페이너로 활동하다가 윤나리 사무국장, 전범선 자문위원과 함께 동물해방물결을 만들게 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나?

“2018년 10월에 국내 첫 ‘동물권 행진’을 주최했다. 시민 150여 명이 참여했고 60건 이상의 보도가 나면서 열심히 준비한 보람을 느꼈다. 개 도살·식용 금지는 동물해방물결이 가장 많이, 자주 외치는 의제 중 하나다.­­ 매년 초복에는 ‘복날추모행동’ 집회를 열고, 국회의사당 돔에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개 도살 금지’라는 문구를 레이저로 쏘기도 했다. 최근에는 도살 직전의 소 6‘명’을 구조해 평생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생추어리)를 만드는 ‘꽃풀소 살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강원도 인제의 한 폐교를 활용해 소 보금자리를 건립할 예정이다.”

-왜 ‘마리’가 아니라 ‘명’인가.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차별하는 언어부터 바뀌어야 우리의 인식도 전환되기 때문이다. 인간을 셀 때는 한자로 ‘이름 명(名)’자를 쓰는 것처럼, 비인간 동물에는 ‘목숨 명(命)’을 쓰고 있다. 다른 예로 ‘물고기’는 ‘물살이’라고 하는데 ‘물에 사는 생명’을 말한다. 일상에서 종평등한 언어생활을 실천하도록 독려한다.”

동물해방물결은 물 속에 사는 생명을 먹을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자고 주장한다. 지난해 11월에는 경남어류양식협회 대표가 집회 도중 활어를 바닥에 던진 행위를 동물 학대로 규정하며 경찰에 고발했다. 이 대표는 “활어를 먹으려는 목적 없이 집회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에 동물 학대로 봐야 한다”며 “동물보호법 위반 행위”라고 했다. 검찰은 지난 5월 10일 식용 목적의 동물은 동물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일명 ‘방어·참돔 학대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해 이 대표는 “과거에는 논쟁조차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동물이 고통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동물권 담론에 대한 논의가 하나씩 쌓여야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고, 세상은 그렇게 변한다”고 말했다.

-비인간 동물의 고통을 대변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다. 첫 번째는 동물에 대한 사명감, 두 번째는 동료 활동가들과의 연대다. 고통받는 동물을 위한 사명감만으로 혼자서 이 활동을 오래 이어 가기 어렵다. 동료와 서로 버팀목이 되어 어려운 상황을 함께 이겨낼 때, 어떤 단단한 벽도 뚫는 힘이 생긴다.”

동물권, 한국서도 이미 시작된 물결

-외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동물권의 현주소는?

“영국은 생후 6개월 미만의 개나 고양이를 펫샵에서 구매하지 못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모피 생산과 판매를 금지한다. 포르투갈도 공공기관의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외에서 이런 변화가 생기는 이유는 동물권 운동이 한국보다 일찍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국내는 관련 법이나 정책이 부족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엇이든 빨리하지 않나. 다른 나라에 비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동물권 인식 확산을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동물원 말고 인간과 동물이 대등한 관계로 만나는 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동물들이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터가 많아져야 하고, 그곳에서 인간과 동물이 지구 공동체의 일원으로 만나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동물권 운동만큼 시장의 변화와 정부의 협조도 필요하다”

-동물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에서 비거니즘을 지향하면 좋겠다. 비거니즘을 번역한다면 ‘살림’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 나와 동물과 지구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물해방물결이 꿈꾸는 미래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세상, 그리고 비인간 동물이 인간을 위해 고통스럽게 살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동물이 착취되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지만, 특정 사람들에게 이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게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존재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해방을 꿈꾼다는 뜻인가?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에 동물해방 안에 인간해방이 포함된다. 동물해방이 우리 모두의 해방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결국은 인간, 비인간 동물, 지구까지 모두 해방되자고 하는 일이다. 다른 존재에게 해 끼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그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찾아 나가려 한다.”

이수연 청년기자(청세담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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