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준 LAB2050 연구위원장 인터뷰
“청년은 독립을 추구하는 시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청년에게는 자율성이나 자유가 없죠. 청년기본소득은 모든 청년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해 스스로 인생을 계획할 기회를 주는 겁니다. 대신 지원금을 잘못 쓴 것에 대해선 그만큼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방식도 필요해요.”
LAB2050 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영준(44)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청년기본소득 정책실험’의 설계자다. 그는 소득 수준과 취업 상태에 따라 제한을 두는 ‘청년수당’과 달리 조건 없이 모든 청년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원하는 청년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다. 지난 3월 정부의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제도 도입 이후, 서울시의 청년수당, 경기도의 청년배당 도입으로 청년을 위한 보편복지제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최근 최 교수는 서울연구원과 함께 설계한 ‘청년기본소득 정책실험’을 서울시에 제안했다. 그는 “새로운 공공정책을 도입하기 전에는 항상 논란이 따른다”며 “국내에서는 아직 정책실험 자체가 낯설지만,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청년기본소득 실험, 현존하는 가장 엄격한 평가체계로 설계”
청년기본소득 정책실험은 과학적 실험설계로 만들어졌다. 실험설계는 의학분야에서 신약을 처치한 집단과 처치하지 않은 집단을 비교해 효과를 보기 위한 수단으로 많이 쓰인다. 공공정책 분야에서는 최근 핀란드, 프랑스, 미국 등에서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청년기본소득 정책실험이 무엇인가?
“모든 청년에게 일정한 지원금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는 게 얼마나 효과성이 있는지 평가하는 실험이다. 청년기본소득처럼 복지체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그 효과를 모호하게 둬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실험설계’이라는 현존하는 가장 엄격한 평가설계로 접근했다. 기존 ‘청년수당’의 경우 실험설계처럼 통제집단과 처치집단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수당을 받는 사람들에게 ‘이게 얼마나 좋으셨어요?’라고 묻는 방식이다. 그것도 하나의 방식이고 의미는 있지만 엄밀하지는 않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되는 것인가?
“LAB2050이 서울시에 제안한 ‘청년기본소득 정책실험’ 모델은 서울시에 거주 중인 만 19~29세 청년이 대상이다. 실험 기간은 2년이다. 실험 대상으로는 매달 기본소득 50만원을 받는 집단(800명), 근로소득만큼 수당이 차감되는 집단(800명), 아무 수당도 받지 않는 통제집단(800명) 등 세 집단으로 나뉜다. 각 집단의 800명은 또 근로소득 유무에 따라 400명씩 구분 지어 구성했다. 서울시 인구를 감안했을 때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기 위해선 한 그룹에 400명 정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간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갔는지 차이를 보면서 효과를 측정하는 거다.”
-왜 50만원인가?
“50만원은 우리나라의 중위소득의 30%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가 약 51만원이다.”
-정책의 효과를 실험한다는 게 아직은 낯선 개념인데, 평가는 어떻게 이뤄지나?
“크게 세 개의 조사가 있다. 첫 번째는 기초선조사로 실험이 시작하기 전에 측정하는 것이다. 기준점을 정해야 어떻게 발전했는지 혹은 효과가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실험 시작 전에 조사하고 1년이 지나면 중간 조사, 2년 실험이 완료되면 또 조사를 한다. 이와 동시에 월별조사를 한다. 아르바이트를 했다가 안 했다가 하는 식으로 매달 소득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건 1년마다 측정하면 정보가 너무 늦기 때문에 월별로 측정한다. 마지막으로 몇 명을 뽑아 인터뷰로 질적 조사를 해서 실제로 어떻게 삶이 변하고 있는지, 변하고 있지 않는지를 평가한다.”
-수백명을 월별로 조사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휴대전화를 활용했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매달 평가 조사에 응답하면 돈이 지급되는 방식이다.”
-연구 설계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없었나?
“정책실험에 들어갔는데 제대로 효과 측정을 못 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내부에서도 소득이 발생하면 그만큼 지원금에서 깎는 보충급여형 모델 대신 50만원, 100만원 같이 더 높은 수준의 급여 실험을 해보자는 등 여러 의견이 있었다. 또 학술적인 논의가 아닌 ‘왜 돈 많은 청년에게 돈을 주냐’ ‘왜 취업한 청년들에게 돈을 주냐’ 등의 사회적 논의를 감안하는 게 쉽지 않았다.”
효과성 100% 장담 안해⋯‘도입’ 아니라 ‘실험’ 해보자는 것
-해외와 비교하면 어떤가?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실험은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만 청년기본소득 실험을 해본 나라는 아직 없다. 기본소득 실험은 각 나라의 처한 환경에서 아픈 쪽으로 실험한다. 핀란드는 장기실업자,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빈곤층에 집중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청년이 약한 고리다. 외국은 부양의무자 기준이 없기 때문에 청년들도 공공부조의 대상자가 될 수 있지만, 한국은 성인이 된 청년도 부모가 돌봐야 한다는 인식 탓에 청년 관련 제도가 없는 상황이다.”
-청년을 떠나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 자체가 이르다는 우려도 나온다.
“동의한다. 예산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클 텐데,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이 큰 분들도 기본소득 앞에서는 멈칫한다. 어떤 효과가 나올지도 알지 못하는데, 당장 제도 도입을 주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 같은 소규모 실험이 더 많이 필요하다.”
-청년만을 위한 제도는 세대 간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아동수당을 예로 들어보자. 아동수당은 사회서비스를 아이들이 누릴 수 있게 지급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린 자녀를 둔 20~40대 부모들의 기본소득과 같다. 청년수당의 경우에도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허약해져 가는 50대 부모들에게 간접 수당이 될 수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미래는 인구 집단에 따른 수당 제도의 양을 늘리고, 계층을 확대하면서 하나씩 붙여나가는 식으로 설계돼야 한다. 이렇게 하면 보편적 기본소득제도가 혁명적이라기보다 개혁적인 방안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년기본소득 연구의 목표는 무엇인가?
“연구 결과를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여러 지자체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연구 결과를 7월 안에 보고서 형태로 내려고 한다. 이를 기반으로 사회혁신 분야에 청년들이 더 많이 뛰어들 수 있도록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연구해 나갈 계획이다.”
[조윤정 청년기자(청세담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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