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소셜 임팩트 만드는 ‘얼킨’ 이성동 대표 인터뷰
“친구 졸업 전시에 방문했다가 학생들의 졸업 작품과 습작들이 대량으로 버려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폐기물로 버려지는 캔버스도 아쉬웠고, 청소년 시기부터 예술가를 꿈꾸며 달려왔던 사람들이 생계 때문에 꿈을 접고 다른 업으로 옮겨가는 모습도 안타까웠습니다.”
버려지는 캔버스, 그리고 예술인의 열악한 창작환경. ‘얼킨’은 두 가지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소셜패션브랜드다. 지난 8월 20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얼킨 사무실에서 만난 이성동 대표는 “처음에는 미대생과 신진 회화 작가들의 작품이 버려지는 문제에 주목했지만, 결국은 이 문제가 예술인의 열악한 창작 환경과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예술인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얼킨을 만들었다”고 했다.
폐기된 회화작품으로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 예술인이 창작활동으로 벌어들이는 개인소득은 연평균 1281만원이었다. 월평균 106만원가량 버는 셈이다. 설문 결과 ‘수입 없음’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이 28.8%로 가장 많았다.
“특히 미술분야의 경우 시장의 대부분을 중견, 원로작가들이 차지하고 있어 신진 작가들은 투잡(Two Job)을 병행하는 등 경제적으로 취약했습니다. 판매되지 못한 작가들의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폐기되는 상황이었어요.”
얼킨은 버려지는 신진 회화작가들과 미대생들의 작품을 수거하거나 구매해 업사이클링 가방과 의류, 액세서리로 만들어낸다. 업사이클링 제품 외에도 신진 회화작가들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며 이들의 작품이 프린팅된 티셔츠와 에코백 등을 만든다. 판매 수익에서 작가들에게 로열티를 제공해 소득을 증대시키고, 더 나은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도록 돕는다.
“신진 작가들의 경우 소득도 소득이지만, 무엇보다 대중에 자신의 작품을 알릴 기회가 되기 때문에 얼킨과의 협업을 원합니다. 대량으로 버려질 뻔 했던 캔버스가 제품으로 바뀌어 판매되니 폐기물이 줄어 환경에도 도움이 되죠.”
대부분의 업사이클링 제품이 그렇듯, 회화 작품을 활용한 얼킨의 제품에도 많은 공정이 필요하다. 캔버스 수거와 코팅, 가죽과 유사한 두께감을 표현하기 위한 본딩 작업까지 세 단계의 작업이 추가되고 이에 따라 가격도 올라간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얼킨의 제품을 구입하는 이유는 품질과 디자인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얼킨의 제품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두바이, 싱가포르, 프랑스 등에도 진출한 상태다.
“고객에게 ‘사회적 가치’에만 공감해서 구매하라고 설득할 수는 없어요. 가치를 만드는 건 얼킨의 역할이고, 소비자에게는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상품을 제공해야죠. 그래야 지속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셜 임팩트 확산을 위해 ‘플랫폼’을 만들다
얼킨은 지난해 예술경영지원센터와 임팩트스퀘어가 함께한 ‘문화예술 사회적경제 초기기업 사업기반구축 지원 임팩트투자 유치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 대표는 “얼킨이 창출한 임팩트를 측정해 결과를 받아봤는데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매출 대비 낮은 수치가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얼킨의 사업모델에 대한 자신이 있었고 주변에서도 항상 칭찬과 격려를 받아왔기 때문에 잘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거든요. 부족함을 깨닫게 된 후 얼킨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1월 말 오픈하는 얼킨 플랫폼 베터버전에는 얼킨뿐 아니라 여러 패션 브랜드들이 입점한다. 의류에 활용될 수 있는 회화작가들의 다양한 시각 지식재산권(IP·Intellectual property)가 함께 들어온다. 소비자가 원하는 브랜드의 옷과 선호하는 회화작가의 시각 IP를 선택하면 두 가지를 조합해 해당 IP가 프린팅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그동안 얼킨만이 신진 회화작가들의 IP를 의류와 가방에 활용했지만, 이제는 더 많은 브랜드들이 IP를 사용할 수 있도록 오픈한 셈이다.
“신진 회화작가들의 IP가 제품에 활용될 기회가 많아지고 이를 통해 소득도 증가하게 됩니다. 그림이 프린팅된 셔츠를 만원에 판매하고 저희가 50%를 작가에게 제공한다고 가정하면 신진작가들이 IP를 플랫폼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수익이 창출되잖아요. 브랜드 한 곳에서 매출의 3%에 해당하는 임팩트를 낼 수 있다고 할 때, 저희가 100개의 브랜드를 모은다면 300%의 가치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술이전도 받고 특허 출원도 하면서 플랫폼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이번 플랫폼을 통해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신진 회화작가들이 작품 활동만으로도 수익을 얻고 생계를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만드는 게 우리 얼킨의 최종 목표이자 꿈입니다.”
김효주 청년기자(청세담1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