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지구를 생각하는 ‘정의로운 농업’…언니네텃밭의 이유 있는 고집

[인터뷰] 구점숙 언니네텃밭 운영위원장

식탁에 오른 농산물이 어떻게, 어떤 농민의 손에 자랐을지 궁금한 적 있는가. ‘언니네텃밭’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언니네텃밭은 2009년 4월 18일 첫 꾸러미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12년째 건강한 먹거리와 여성 농민의 권리 보장을 위해 힘쓰는 협동조합이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산하 식량주권사업단에서 출발해 언니네텃밭으로 법인 분리됐다. 언니네텃밭은 지속가능한 생태농업 방식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개별 상품 혹은 꾸러미 형태로 배송한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농산물이 생산된 과정과 직접 키운 농민의 ‘이야기’를 담는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마음을 나누는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9일 구점숙 언니네텃밭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구점숙 언니네텃밭 운영위원장은 석유나 석탄을 사용하지 않는 ‘제철 농사’를 강조한다. 그는 “농약이나 약제를 꼭 사용해야 한다면 직접 만들거나 친환경 제품을 쓴다”고 했다. /언니네텃밭 제공

‘언니네’ 텃밭에는 연대와 나눔이 있다

“우리나라 농민의 반 이상이 여성입니다. 여성이 농사 활동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지만 여성 농민은 생산자가 아니라 생산의 보조자로 인식돼 왔죠. 농촌 생활 전반에 걸쳐 주체로 인정되지 않고 있었어요. 여성 농민의 권리를 어디서,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그 공간으로 ‘텃밭’을 떠올렸어요. 집 주위에 넓지 않은 밭에서 다양한 농작물을 수확해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

여성 농민은 오랫동안 생산 활동의 보조적 존재로만 인식됐다. 구 운영위원장은 이러한 인식이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하다고 말한다. 변화가 더디고, 젊은 세대의 유입이 드물다는 농촌 지역의 특징을 그 이유로 꼽았다. 간혹 젊은 세대가 들어오더라도 고착된 가부장 문화를 바꾸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조직된 여성 농민들은 정당한 생산자이자 전문 직업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여성 농민을 정책 대상으로 하는 전담 부서를 설치하라는 요구도 했다.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이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자체들이 생겼다. 이제 공동 경영자로 등록된 여성 농민에게 농민수당도 지급된다.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생산 공동체를 유지하는 건 굉장한 일이에요. 농업에서는 협동·협업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익을 독점하지 않고 노동을 나누는 과정도 필수예요. 여성 농민은 지금까지 사회적 지위가 높게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낮은 곳에서 어려움을 나누며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죠. 서로 돕는 방식에도 익숙합니다. 덕분에 공동체가 끈끈하게 유지될 수 있었어요.” 구 운영위원장은 여성 농민의 강점으로 ‘연대’를 꼽았다. 언니네텃밭은 개별화, 기계화되는 농업 흐름에 맞서 ‘함께’의 가치를 강조하며 공동체를 이어가고 있다. 매주 꾸러미를 포장하고 배송하기 위해 만난 ‘언니’들은 협업 이상의 우정을 나눈다. 좋은 강연을 함께 듣고 문화생활도 즐긴다. 특정 사안에 대해 건설적으로 토론하는 훈련도 함께한다. 이 같은 끈끈한 연대는 ‘언니네텃밭’을 넘어 지역 공동체로도 확장되고 있다. 언니네텃밭은 지역 자활센터나 아동 센터에 정성을 가득 담은 꾸러미를 보낸다.

언니네텃밭은 지역 자활센터와 아동센터에 농산물 꾸러미를 보내는 나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언니네텃밭 제공

지속가능성 고려한 ‘정의로운 농업’

소농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다품종 소량생산도 언니네텃밭이 지켜가는 가치이자 강점이다. 언니네텃밭 농산물은 ‘생태농업’ ‘무 제초제’ 등의 방식으로 생산된다. 특히 석유나 석탄을 사용하지 않는 ‘제철 농사’를 강조한다. 농약이나 약제를 꼭 사용해야 한다면 직접 만들거나 친환경 제품을 쓴다.

“농산물이 표면적으로는 다 같아 보일지 몰라도, 생산방식이나 지향점까지 살펴보면 같다고 보기 어려워요. 품목만 같을 뿐이죠. 그렇기에 온전히 지구를 생각하는 농산물인지 고민해 봐야 해요. 다른 농산물이 지구 환경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더 정의로운 생산방식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봐요.” 구 운영위원장은 “소비자도 농산물을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농산물이 진정한 먹거리로 정의되기 위해서는 소비자 안목도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향하는 일은 ‘식량 주권’을 지키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식량 주권이란 국민, 지역 사회, 국가가 고유한 농업 노동이나 환경조건에 적절한 식량과 국토정책을 정의하기 위해 가지는 권리다. 구 운영위원장은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농민·소비자 모두가 ‘지속가능한 생산’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은 농산물 생산 과정이 분절된 경우가 많아요. 종자와 비료를 사서 심으면 끝인 거죠. 예전처럼 자가 채종하고, 퇴비도 직접 제조해 땅과 농산물이 순환돼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요. 그렇게 농업의 악순환이 일어나는 거예요. 따라서 어떤 방법이 지속가능한 생산방식인가를 고민하고, 농업 구조를 통합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그에 따른 법률이나 인증 제도 개선도 필요하고요.” 구 운영위원장은 분절적 농업에 대한 시각을 통합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농민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구 운영위원장은 소농이 지역 먹거리 체계에 편입되는 것을 꼭 이루고 싶은 꿈으로 꼽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품 가공법에 소규모 농가공에 대한 예외조항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니네텃밭만 잘 된다고 끝이 아니에요. 저희의 지속가능한 생산방식이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소규모 농가공에 대한 법적 예외조항이 필요하고요. 대농이 생산하는 것은 대농이 담당하고, 저희처럼 소농이 생산하는 농산물은 또 소농 시스템에 의해 법적 보호를 받으며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 저는 이야기가 있고, 나눔이 있고, 꿈이 있는 언니네텃밭, 그것을 이용하는 소비자와 한 길을 가려고 합니다.”

언니네텃밭은 변화하는 식생활 문화에 발맞추기 위해 꾸러미 다양성을 확대하고, 젊은 층 기호에 맞는 가공식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소비자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안녕, 토종콩 펀딩’, 제주도에서 언택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토종 씨앗 축제’도 기획 중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생명의 기운을 많이 받아요. 생명이 커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건 굉장히 영광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라 청년기자(청세담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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