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장애인을 위한 직무라는 건 없습니다”

전체 직원의 91.2%가 장애인으로 구성된 회사가 있다. 불과 직원 13명으로 시작했던 이 회사는 지난 10년간 장애인 고용과 일자리 개발을 위해 노력하며 올해 8월 기준 직원 250명 규모로 성장했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장애인을 위한 직무’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IT 기업 ‘오픈핸즈’ 이야기다.

올해 창립 11주년을 맞은 오픈핸즈는 삼성SDS의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이다. 주요 사업으로 소프트웨어 테스트, 솔루션 개발, 웹 보안, 서비스 데스크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오픈핸즈는 장애인 고용의 모범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장애인고용촉진대회에서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했고, 올해는 같은 대회에서 근로자부분 고용노동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지난달 24일 오픈핸즈의 성장 스토리를 듣기 위해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이상준, 허민솔, 박형진, 박종성씨 등 직원 네 명과 마주앉았다.

지난달 24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오픈핸즈 직원들을 만났다. 왼쪽부터 이상준, 박형진, 허민솔, 박종성씨. /제은효 청년기자

IT기업이지만 장애인도, 문과도 괜찮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업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업무 난이도를 바꿀 순 없잖아요. 대신 업무 환경에 신경 쓰죠. 장애인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IT사업팀에서 근무하는 이상준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오픈핸즈에서는 장애인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업무 내용을 조절하지 않는다”면서 “대신 업무 환경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회사에 알리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휠체어 이용에 편리한 높낮이 조절 책상이나 낮은 시력에 필요한 대형 모니터 등 직무 수행을 위한 환경 개선을 편안하게 요구할 수 있다. 사내에는 전기 휠체어 충전소를 비롯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블록과 핸드레일도 곳곳에 설치돼 있다.

올해 1월 입사한 신입사원 허민솔씨는 OIS TF(Openhands Information System) 부서에서 회사 내부용 시스템을 개발·보수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경증의 하지 지체 장애가 있지만, 컴퓨터로 시스템을 개발하는 IT 직무 수행에는 지장이 없다. 그럼에도 지난 취업 준비 과정에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으로 심리적 부담을 꼽았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불안감을 많이 느꼈어요. 직무 수행에 비장애인과 다를 바가 없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많이 걱정했습니다.”

심리적 부담을 덜어준 것이 오픈핸즈의 산학협력 프로그램이었다. 허씨는 한국복지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산학협력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직무 관련 심화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직장 내 분위기와 환경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었다.

개발 현장이나 업무 현장에서 장애인들이 IT 업무를 수행하는 곳은 많지 않다. IT기업에서 장애인을 채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IT 전문성을 갖춘 장애인의 수도 적기 때문이다. 오픈핸즈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협업해 맞춤 훈련을 통해 인력을 육성·선발한다. 이상준씨는 “전문성이 부족하더라도 가능성을 보고 신입사원을 선발한 뒤 교육을 통해 업무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서비스 데스크 업무를 맡은 입사 8년차 박종성씨는 ‘문과’ 출신이다. “IT 직무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했었는데, 오픈핸즈에서 교육지원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맞춤 교육을 받았어요. 교육 이수 후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통합운영파트에서 파트장을 맡고 있습니다.”

/오픈핸즈 제공

기술 변화에 따른 교육 지원…장기근속의 힘

소프트웨어 검증 업무를 담당하는 박형진씨는 회사의 대표적인 장기근속자다. 2012년에 입사해 올해로 입사 9년차에 접어들었다. 박씨는 장기근속의 비결로 조직의 변화와 발전을 꼽았다. “담당 업무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진화하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새로움이 많은 분야라 흥미롭죠. 거기다 회사에서 기술 변화에 맞는 교육 기회도 제공하니까 오래 다니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지금은 주4일 근무제 도입을 앞당기는 일을 하고 있어요.”

박종성씨는 객관적인 성과가 나온다는 점이 IT 직무의 장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IT 직무는 성과가 객관적인 지표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장애를 떠나서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장애인 취업 분야의 폭을 넓히기 위해 회사의 채용 의지와 구체적인 로드맵 제시가 필요하다. 허민솔씨는 “채용 공고를 살펴보면 장애인 고용을 원한다고만 쓰여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면서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채우기 위해 무작정 고용하는 행태에서 벗어나, 채용 의지를 갖고 노력한다면 ‘윈윈(win-win)’이 할 수 있다”고 했다. “업무와 환경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으면 장애인 입장에서는 나에게 맞는지 확인하고 지원할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도 정말 필요한 인력을 채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은효 청년기자(청세담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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