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토)

6명의 NGO 활동가들이 땅만 보고 걷는 이유

‘무중력팀’, 시각장애인 보행권 개선 프로젝트

 

“오는 길에 또 한 건 신고했어.”

“땅만 보고 걸었구만.”

이상한 대화를 하는 이들의 정체는 NGO에서 10년 이상 일해 온 중간관리자들. 이른바 ‘무중력팀’ 멤버들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힘처럼 시각장애인들의 보행권을 가로막는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모인 이들이다. ‘아산나눔재단 프론티어 아카데미’ 팀별 활동을 계기로 뭉친 6명의 멤버들은 지난 5월부터 ‘시각장애인 보행권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 17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본부에서 무중력 팀원 4명을 만났다. 이창신(48) 홀트 일산복지타운 사회복지사, 김경화(41) 한국여성재단 나눔기획팀 팀장, 송민영(38)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자마케팅 팀장, 이상엽(38)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사랑온라인팀 팀장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왜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을까.

왼쪽부터 송민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자마케팅 팀장, 김경화 한국여성재단 나눔기획팀 팀장, 이창신 홀트 일산복지타운 사회복지사, 이상엽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사랑온라인 팀장. ⓒ김신애

 

◇서울시 불편신고 앱에 접수된 ‘노원구 월계 2동 보도블록’

“20년 전, 제가 살던 일산에서 잘못된 보도블록 문제가 큰 반향을 일으켰음에도 지금까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교통표지판이 잘못 설치된 채 바뀌지 않았다면 전국적으로 난리가 났을 겁니다.”

이창신 사회복지사는 무중력팀이 ‘시각장애인 보행권 개선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무중력 팀은 잘못 설치된 점자블록을 시민들이 직접 행자부와 서울시 앱에 신고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서울시에서 발견한 점자블록은 ‘서울시 스마트 불편신고’ 앱에, 서울시 외 전 지역에 있는 잘못된 점자블록은 행정자치부의 ‘생활불편신고’ 앱에 알리도록 한다.

이상엽 팀장은 서울 노원구 월계 2동에 있는 잘못된 점자블록을 서울시 앱에 신고했던 경험을 계기로 앱에 신고하는 방법을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그는 “잘못 설치된 점자블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걸 휴대폰으로 찍어 서울시 불편신고 앱에 신고했다”면서 “3주 뒤, 신고한 점자블록이 개선됐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무중력팀의 프로젝트 페이스북. ⓒ송민영

무중력팀은 시민들의 신고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지난 7월 페이스북 ‘소소한 프로젝트’ 계정도 열었다. 이곳엔 잘못된 점자블록을 구별하고 이를 앱에 신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카드뉴스도 있다. 약 6000명이 카드뉴스를 클릭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이 외에도, 이 곳엔 시각장애인의 보행권을 방해하는 여러 사례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햄버거, 점자잉크, 자동차 등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다양한 콘텐츠도 올라가 있다.  

신고율을 높이기 위한 무중력팀의 노력은 현장에서도 계속됐다. 김경화 팀장은 “지난 8월 팀원들 모두 노원구에서 잘못된 점자블록을 찾아 앱에 신고했다”며 “겹치는 걸 빼면 그 날 40개의 잘못된 점자블록을 신고했다”고 말했다. 11월 25일에는 미스터리 봉사여행 ‘어떤 버스’와 함께 잘못된 점자블록을 찾는 봉사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어떤 버스에 탄 시민 10명과 무중력 팀원 6명이 함께 했다.   

무중력팀이 운영하는 소소한 프로젝트 QR코드 .ⓒ송민영

 

◇“아는 만큼 보이고 신고할 수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잘못된 점자블록을 가려내지 못하더라고요.”

프로젝트의 첫번째 관건은 사람들이 잘못된 점자블록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창신 사회복지사는 “2009년 일산 홀트 앞에서 유도블록이 잘못 설치되고 있는 걸 봤다”며 “설치하는 사람들조차 잘못된 점자블록을 구분해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무중력 팀은 잘못된 점자블록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둔다. 잘못된 점자블록과 개선된 점자블록을 비교한 사진들을 지속적으로 페이스북 계정에 업데이트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종로구 아산 재단 앞 잘못된 유도블록. ⓒ무중력

이게 끝이 아니다. 신고한 점자블록이 개선돼야 한다. 신고하면 언제 개선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상엽 팀장은 “고치면 3주, 아니면 모른다”고 답했다. 민원이 들어간 잘못된 점자블록은 보통 3주 이내에 시정이 되지만, 3주가 지나도 개선이 안되는 건 언제 될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신고한 점자블록을 구청이 시정하지 않은 경우, 이후 구청에선 시각장애인들에게 잘못된 점자블록의 위치를 따로 알리지 않고 있다.

송민영 팀장은 “한 시각장애인분과의 통화가 기억에 남는다”며 점자블록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도왔다고 했다.

“한 시각장애인분은 점자블록이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보행할 때 방해가 된다고 했어요. 비 오는 날엔 점자블록이 미끄러워 넘어질 위험도 있고요. 점자블록이 보완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랜드마크가 되길 바란다고 해요.”

 

◇관심에 혁신이 더해지는 다양한 시도들이 더 나은 세상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의 보행을 돕기 위해 점자블록 외에도 국내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이상엽 팀장은 “시각장애인들의 보행권을 가로막는 장벽이 무너지려면 점자블록과 함께 과학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며 “지난 5월부터 2개월 간 진행된 을지로 3가역의 비콘기술을 활용한 네비게이션 시범사업과 지난 7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강남구의 ‘시각장애인 사물인터넷 無장애길’ 시범사업이 대표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연합회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지원센터 홍서준 연구원은 “점자블록은 멈춤과 직진이란 두 가지 기능만 가진다는 한계가 있다”며 “공간의 용도와 계단 등 낙차의 발생 여부 등을 알려주지 못하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비콘기술을 활용한 음성 서비스가 나왔다”고 말했다. 비콘기술은 GPS가 불가능한 실내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통해 음성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은 아직 시범운영중이라 정확성에 한계를 보였이는 게 현실. 

홍서준 연구원은 “현재 보행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이 걸을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점자블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비콘 기술은 스마트폰 내부에 있는 센서와 연동돼 작동하는데, 스마트폰에 내장된 센서가 달라 기기에 따라서 제공되는 음성서비스의 차이가 난다”면서 “정확하지 않은 기술은 안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시범사업은 더 이상의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채 종료됐다”고 덧붙여 지적했다.

종로구 아산 재단 앞 잘못된 유도블록이 수정된 모습. ⓒ무중력

김경화 팀장은 “앱을 통해 시민들이 신고를 하면 케이스 별로 민원이 들어가니 구청에서도 그냥 넘어가기 힘들다”며 “시민들의 참여는 문제해결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송민영 팀장은 “시민들의 참여가 사회문제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민간에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히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잘못된 유도블록을 찾기 위해 프로젝트 이후 땅만 보고 걸었다고 하는 그들. 이상엽 팀장은 땅을 보고 걷다가 돈도 줍는 행운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들은 잘못된 유도블록도 찾고 돈도 줍는 일석이조의 체험을 시민들에게도 적극 권했다.

김신애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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