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정오 문화를만드는곳 열터 대표
지난달 29일 충남 태안 만리포 해수욕장은 찜통더위를 피하기 위해 바다를 찾은 피서객들로 붐볐다. 오후가 되자 빽빽한 피서객들 사이로 작은 공연장이 설치됐다. 무대에서는 해변을 배경으로 국악, 클래식, 대중음악 등 각양각색의 예술 공연이 펼쳐졌다. 준비된 좌석 100석은 순식간에 채워졌고, 지나가던 행인들도 멈춰 서 공연을 감상했다. 무대 위 청년 예술가들은 능숙하게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고, 관객들은 이에 화답했다. 하나의 공연이 끝날 때마다 기립 박수와 앙코르가 끊이지 않았다. 몇몇 관객은 흥을 가라앉히지 못해 자리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평화를 만드는 청춘마이크 길굿’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청춘마이크는 열정과 재능이 넘치는 청년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청년 예술가의 문화적 역량을 키우고 지역 주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게 목적이다.
청춘마이크는 ‘문화를만드는곳 열터’(이하 ‘열터’)가 주관한다. 열터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펼치는 사회적기업으로, 2005년 화성시를 기반으로 설립됐다. 열터는 청춘마이크 외에도 ▲동네 카페·도서관·미술관 등 화성시 내 다양한 공간에서 3일간 문화예술 공연을 하는 ‘생생우리음악축제’ ▲청년 아티스트들의 버스킹 공연을 들으면서 걷는 ‘매향리아트런’ ▲아동 참여형 전통공연 ‘놀이왕사자’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올해는 19팀의 청년 아티스트가 전국 각지에서 평화를 주제로 거리공연을 펼친다.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다문화가정 청년 등 사회취약계층이 열터에서 활동하는 주요 아티스트들이다. 지난달 20일 경기 화성 봉담 문화의집에서 19년째 열터를 운영해온 김정오 대표(48)를 만났다.
-열터의 설립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생 때부터 공연을 해왔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가 공연자로서 무대에 서고 싶어서 열터를 만들었어요. 해가 지날수록 공연을 기획하는 쪽으로 영역이 점점 확장된 거죠.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들은 하고 싶은 공연보다는 요구되는 공연을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공연을 하려면 내가 스스로 기획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공연도 기획하고 행사도 만들게 됐습니다.”
-열터 무대를 채우는 건 주로 소외된 청년 예술가들이죠.
“사회취약계층인 청년 예술가들은 문화예술 부문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주로 기반이 약한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많이 하죠. 청년 예술가들과 같이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열터의 구성원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대중음악이든 전통예술이든, 이 업계에 종사하고 싶은 청년들은 참 많을 텐데 ‘20대를 지나서, 30대를 지나서 그 이후에도 과연 이 일을 끝까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공통적인 고민을 갖고 있을 거예요. 열터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그들이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연을 맺은 예술가들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예술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든든한 뒷배가 돼주고자 합니다.”
-열터의 행사만의 차별점은 뭔가요?
“열터가 만드는 행사의 특이점은 ‘공백’이 있다는 거예요. 축제나 행사를 가보면 보통 팸플릿에 일정이 가득 채워져 있잖아요. 근데 열터가 만드는 행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매향리아트런’은 농섬이라는 곳을 걸어갔다가 오는 게 축제의 메인이에요. 시간대별로 체험이나 공연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참여자들이 각자 바닷길을 걸으면서 축제를 완성하죠. ‘정월대보름축제’도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달짚 태우기를 하는 것 빼고는 일정을 비워놓아요. 열터는 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약간의 놀거리만을 제공하죠. 축제를 채우는 건 참여하시는 분들의 몫입니다.”
-예술가와 관중을 직접 만나서 고민을 듣고 눈높이에 맞춘 프로젝트를 제공한다고요.
“올해로 6년차인 ‘생생우리음악축제’같은 경우는 참여하는 아티스트가 100명, 팀으로는 25팀 정도 돼요. 팀별로 하나하나 직접 찾아가서 소통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행사를 기획해요. 우리가 하고 싶은 행사를 막무가내로 하기보다는 행사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의견으로 행사를 만들어가는 형태에요. ‘청춘마이크’도 마찬가지고요. 10년 가까이 운영 중인 ‘어린이장터’ 행사에서도 어린이 참여자들이 하고 싶은 놀이를 해요. 예술가와 관중의 의견을 수렴해 즐거운 축제를 같이 만들어 가는 거죠.”
-열터의 프로젝트가 어떤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지 궁금합니다.
“프로젝트마다 다양한데요,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것들이 많아요. ‘매향리아트런’을 예를 들자면, 제가 대학생 때 매향리를 자주 갔어요. 그때는 매향리에 미군기지 폭격장이 있었는데, 폭격장을 없애자는 주민 집회에도 참석했어요. 그 이후에도 사회에 나와서 고민·근심이 있을 때 매향리에 있는 농섬까지 혼자 걸어갔다 오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농섬을 가보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편안해질 텐데 여기서 뭔가를 해볼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게 매향리아트런입니다. 농섬에 가면 아직도 포탄 자욱이 있어요. 우리가 평화를 굳이 말이나 글로 전달할 필요 없이 농섬에 다녀만 와도 평화의 소중함을 인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지역 문화행사를 오래 진행하면서 느낀 보람은 뭔가요.
“지역 주민들이 열터 행사에 참여해 놀이를 즐기는 걸 보면 뿌듯하죠. 2015년부터는 ‘어린이장터’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행사 시간이 되면 2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몰려와요. 계속 찾아주는 관객들이 있으니 청년 아티스트도 꾸준히 무대에 오를 수 있고, 지역 주민들도 양질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거죠.”
태안·화성=정예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