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4일(일)
무너지는 그룹홈…정부 지원 절실해
자료 이미지. ⓒpixabay

#1. A 씨(21·여)는 일곱 살 때부터 작년까지 그룹홈에 살았다. 그룹홈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 5~7명이 관리자 2~3명과 함께 일반 가정집에서 생활하는 주거 형태다. 대규모 양육시설이 아닌 가정집에서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끼며 생활할 수 있다는 게 그룹홈의 가장 큰 특징이다. A씨는 무려 14년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며 그룹홈 식구들을 둘도 없는 ‘가족’처럼 느끼며 자랐다. 가족이라 생각했기에 복지사가 손찌검을 해도 ‘사랑의 매’라고 여기며 자신을 설득했다.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고 욕설을 하며 나무라도 꾹 참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A씨의 마음속 상처는 깊어졌고, 결국 복지사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제소된 복지사가 다른 그룹홈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A씨는 더 큰 상처를 입었다. 그룹홈에서 “제일 큰 언니로서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했다”며 A씨를 쫓아낸 것. A씨는 “폭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인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망연자실했다. 이후 다른 그룹홈에 입소했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다른 거처를 알아보던 끝에 숙식이 제공되는 골프장 부속 레스토랑을 찾아 현재 그곳에서 1년째 일하고 있다. A씨는 “그래도 여전히 내가 가족이라 할 수 있는 건 그룹홈 식구들뿐”이라고 했다. “인권위 제소 말고 다른 방법이 있었더라면, 하고 후회하곤 해요. 결국 유일한 가족마저 잃게 됐으니….”

#2. B씨(20·남)는 7년을 그룹홈에서 보내고 올 1월 그룹홈 퇴소 의무 나이인 만 19세가 돼 독립했다. 7년간 B씨는 그룹홈에 들어왔다 크고 작은 사고를 내 다른 그룹홈으로 보내지는 친구들을 여럿 봐왔다. 복지사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은 아이들도 있었고, 오토바이를 훔쳐 되파는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도 있었다. B씨는 “그룹홈에 온 지 일 년이 안 돼 퇴소당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했다. 누군가 퇴소당하고 나면 그룹홈에 남은 아이들에게도 심리적 동요가 일었다. B씨는 “복지사 선생님이 남은 아이들을 불러놓고 ‘이제 여기 없는 아이는 생각도 말고 연락도 말라, 연락처도 다 지우라’고 했다”면서 “처음엔 가족처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해놓고 사고 쳐서 나가게 되면 싹 잊으라 하니, 정말 가족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게 일반 가정집과 같은 ‘안락함’을 제공하겠다며 등장한 그룹홈이 사실상 ‘홈(집)’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원인으로 ‘정부의 무관심’을 꼽는다. 최선숙 한국청소년그룹홈협의회 사무국장은 “그룹홈이 아동복지시설로 법제화된 2004년 이후 수가 계속 늘어 현재 전국에 무려 533개가 운영되고 있지만 정부 지원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라고 성토했다. 운영비 지원 방식도 한계가 많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도 아동분야사업 안내’에 따르면, 보육원과 같은 아동양육·보호시설은 ▲식비·의복비 등 직접경비 ▲건물유지비·연료비 등 공통경비 ▲직업훈련 실습비·재료비와 같은 간접경비 등 항목별로 시설 운영비를 지원받는다. 한편 그룹홈은 월 30만원 안팎의 운영 지원금과 그룹홈 아동 개인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돼 받는 생계비로 살림을 꾸려야 한다.

경남 거창에서 그룹홈을 운영하는 시설장 C씨는 “그룹홈에 대한 정부의 정책 미비가 불안정한 양육환경 문제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룹홈 관리자는 두셋뿐인데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며 요리, 청소 같은 가사노동부터 아동 돌봄, 각종 행정 업무까지 도맡아 해야 하니 관리자 한 사람당 업무량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리자가 한 아이에게 집중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이런 환경에서 아이 하나가 사고를 쳐서 재판에 휘말리게 되면, 복지사 한 명이 재판도 다 따라다니고 옆에서 아이를 계속 챙겨줘야 하죠. 상황이 이러니 아이가 사고를 치면 감당이 안 돼 다른 그룹홈으로 보내게 되는 겁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룹홈 종사자와 아동 간의 갈등이 있을 때 이를 중재할 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중앙정부 차원의 그룹홈 지원 중앙기관이 있었다면 A씨처럼 인권위원회에 복지사를 제소까지 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보호 종결 아동 자립 연구 발표 세미나’에서 안정선 한국청소년그룹홈협의회 회장은 ”그룹홈 아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면 체계적으로 그룹홈들을 지원·관리할 정부 차원의 컨트럴 타워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정선욱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룹홈을 총괄할 중앙기관이 없는 이상 아이들은 복지사와 갈등이 있거나 억울하게 퇴소를 당해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고, 외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알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그룹홈 관련 연구 및 예산편성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중앙기관 설립을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지만, 그 필요성을 앞으로 정책에 반영하도록 힘쓰겠다”고 답했다.

해외 상황은 어떨까. 정선욱 교수는 ”현재 영국에서는 아동보호시설에 거주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독립검토관(Independent Review Officer)’ 제도를 운영 중“이라고 했다. 독립검토관은 아동이 거주 시설에서 충분히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지, 대리 양육자에게 제대로 보호받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사람이다. 대리 양육자와 아동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독립검토관이 중재자로 나서며, 필요할 경우 아동의 대리인이 되어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CAFCASS(Children and Family Court Advisory and Support Service, 아동·가정 법원 자문·지원 기구)에 알린다. CAFCASS는 보고된 사안을 검토하고 필요한 조처를 한다. 가정위탁, 보육원, 그룹홈 등 영국 내 모든 형태의 아동보호시설 거주 아동이 독립검토관을 일대일로 배정받고 있다.

정 교수는 “원 가정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그룹홈의 역할”이라면서 “그룹홈이 갈 곳 잃은 아이들의 삶의 터전이 되려면 영국의 독립검토관 제도처럼 아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국내에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해솔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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