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귀로 책 읽는 시대’ 시각장애인 독서권 보장 길 열릴까?

귀로 듣는 독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Grand View Research)의 2020년 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26억7000만달러(약 3조원)에 달했고, 2027년까지 연평균 24.4%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디오북은 도서 내용을 내레이션한 녹음 콘텐츠를 말한다. PC나 스마트폰을 활용해 시각장애인은 물론 어린이나 노인도 누구나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과거 오디오북은 시각장애인 독서권 보장을 위한 지원사업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자원봉사자나 셀럽들이 낭독자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비장애인 사이에서도 호응을 얻으면서 전문 성우를 비롯해 AI(인공지능) 음성을 활용한 오디오북 콘텐츠도 시장에 나오고 있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인 대학생 최아진(20·가명)씨는 한 달에 오디오북으로 4~5권을 꾸준히 읽는다. 책 내용의 전체를 담은 ‘완독형’ 오디오북은 평균 7시간 정도면 한권을 다 들을 수 있다. 최씨는 “오디오북은 점자도서 읽는 것에 비해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신간도 빨리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중장년 시각장애인들이 점자책을 찾았다면 이른바 MZ세대들은 오디오북을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장애 구분없이 손쉽게 도서를 접할 수 있는 오디오북 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콘텐츠 수도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김현(19)씨는 “요즘 민간 도서관에 오디오북은 문학·인문·과학 등 다양한 장르의 베스트셀러와 신간을 두루 갖추고 있다”며 “LG유플러스 ‘책 읽어주는 도서관’이나 SK텔레콤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의 경우 파일로도 신청이 가능해 편리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시각장애인 수는 25만2000명에 이른다. 다만 점자도서를 이해하는 인구는 전체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후천성 장애 비율이 높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국립장애인도서관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오디오북 이용률은 80%에 달한다. 이는 점자를 배우지 않은 시각장애인도 책을 읽고 싶은 수요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점자도서에 익숙한 기성세대들도 오디오북에 관심을 보이는 추세다. 시각장애인 A(43)씨는 “아무래도 점자책이 손에 익다 보니 오디오북이나 음성해설 등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접하는 것보다 옛날 방식이 편하지만, 최근엔 오디오북도 조금씩 이용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오디오북은 점자 학습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시각장애인에게 독서권을 보장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런 장점에도 지난 수년간 시장 확대가 이뤄지지 않은 건 비용 때문이었다. 시각장애인 대상으로는 수익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고, 제작비용은 기존 종이책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오디오북 평균 제작 비용은 700만원 내외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AI음성 기술을 활용한 오디오북 제작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전자책 서비스 업체 ‘밀리의서재’는 올해 초 AI음성을 활용한 오디오북을 업계 최초로 내놨다. AI음성은 성우 목소리를 분석해 사람의 음성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다. 다만 전자책 서비스 업체 대부분이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는 까다롭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저시력 시각장애인 최아진씨는 “애플리케이션 메뉴에 대체 텍스트를 제공해야 시각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데, 이미지로 제공하는 정보가 많아 주변의 도움 없이 혼자 이용하기엔 불편하다”고 말했다.

오디오북이 시각장애인 독서권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학습서는 오디오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공민서(21)씨는 “전공 서적은 글자뿐 아니라 표나 그래프 등 시각화 정보도 담고 있어서 오디오북으로 만들긴 어렵다”면서 “오디오북과 점자도서 모두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며 “크게 무언가를 바란다기보다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콘텐츠를 즐기며 평범하게 전공수업을 듣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다연 청년기자(청세담12기)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