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배달 음식도 도시락도 다회용기에 담으세요”

[인터뷰] 이준형 잇그린 대표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만난 이준형 잇그린 대표는 “다회용기 사용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영 청년기자

“폐기물은 Reduce(감축), Reuse(재사용), Recycle(재활용)로 없애 나가야 합니다. 국제연합(UN)에서는 이를 ‘3R’이라고 하죠. 잇그린은 재사용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옛날에 짜장면을 다회용기에 배달했던 문화를 다시 부활시키는 겁니다. 그때는 단순한 문화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기후위기 대응책이 될 수 있어요.”

이준형 잇그린 대표(39)는 식음료 산업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다. 방법은 ‘쓰레기 줄이기’다. 지난해 11월 설립된 잇그린은 다회용기 대여 솔루션을 제공하는 소셜벤처다. 일회용품 대신 도시락통, 반찬 통, 수저 등 스테인리스 다회용기를 제공하고 다시 수거해서 세척한다. 다회용기 사용을 확산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를 감축하는 게 목표다.

아직 설립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롯데액셀러레이터 L-Camp에도 선정되며 시드 투자를 받았다. 삼성웰스토리, CJ, 신한은행, 산업은행 등과는 이미 협업을 진행하며 도시락 등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줄여나가고 있다. 잇그린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16만7306개의 일회용품을 줄였고, 1만6131㎏의 폐기물을 감축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Return’하면 탄소가 줄어요

잇그린의 ‘리턴잇’ 서비스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와 배달 음식을 시키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딜리버리’로 나뉘어 있다. 이 대표는 “현재 주력 사업인 리턴잇 비즈니스는 단체급식 업체나 영화관 등 많은 용기를 요구하는 기업에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웰스토리는 일부 도시락을 잇그린의 스테인리스 용기로 대체해서 제공하고 있다.

“우리 사업에서는 기업과 협업하는 비즈니스가 아주 중요합니다. 몇백개의 용기를 한꺼번에 대여해주고, 다시 일괄 수거하면 돈을 많이 아낄 수 있으니까요. 이 돈으로 다른 사업으로 확장도 할 수 있고요. 다만 롯데시네마 같은 영화관 사업자의 경우는 팝콘 용기 같은 특수한 형태를 원합니다. 새로운 종류의 용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숙제로 남아있죠.”

딜리버리는 배달용기를 다회용기로 바꾸는 사업이다. 음식점에선 다회용기로 배달하고, 배달 음식을 주문한 소비자가 용기 배달에 쓰인 가방에 붙어 있는 QR 코드를 찍어 수거를 신청하는 방식이다. 협약을 맺은 택배회사, 배달 대행업체 등 생활 물류업체가 용기를 회수해 오면 잇그린이 세척공장에서 용기를 씻는다. 비용은 대여하는 음식점과 소비자 양쪽에 부과한다. 소비자가 내는 돈은 1000원이다.

이준형 대표는 “소비자에게 추가요금을 부과하면 이용률이 떨어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2개월간 진행한 시범 사업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다회용기 배달을 시킨 소비자들의 약 76%가 다시 다회용기를 찾았다. “소비자들도 일회용품의 수고스러움을 아는 겁니다. 식사 후 잔반이나 일회용품을 버릴 때의 귀찮음이 돈을 내는 것보다 훨씬 큰 비용이라고 느끼는 거죠. 다회용기를 쓰면 다 먹고 뚜껑만 덮어서 가방에 넣어두면 됩니다. 1000원 더 내고 수고를 더는 거죠.”

최근 잇그린에는 음식점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언제쯤 리턴잇 딜리버리 서비스를 시작하느냐는 내용이다. 이준형 대표는 “음식점에서도 일회용품을 원해서 쓰는 게 아니라 대안이 없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격적인 부분에서도 일회용품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곳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10월부터는 선릉역 부근 음식점 50곳과 함께 다회용기 배달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기업에 탄소배출권 제공

이준형 대표는 잇그린을 차리기 전까지만 해도 10년 동안 개발도상국에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 등을 짓는 기업에 있었다. 진행했던 사업 중에는 폐기물을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를 짓는 일도 있었다. 폐기물을 에너지로 만드는 매력적인 구조였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처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개도국 매립지 근처 주민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며 “쓰레기를 태워서 없애기보다 아예 발생 자체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며 다회용기 사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해외가 주요 무대였던 이 대표 회사도 휘청거렸다. 그는 구상만 하던 다회용기 사업에 뛰어들 시기라고 생각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회사를 나와 잇그린을 세웠다.

아예 다른 산업으로 뛰어들었지만 이 대표는 “다회용기 사업도 재생에너지처럼 기후위기 관련 사업”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탄소배출권을 판매할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면서 탄소배출이나 미세먼지 등의 감축량을 측정하는 건 기본 업무였어요. 다회용기 사용을 통해서도 정량적인 측정이 가능할 거라고 판단했죠. 다회용기 사용을 늘리면 그만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고 이를 탄소배출권으로 팔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그의 최종적인 목표는 소비자에게 ‘덜 귀찮은 친환경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면 아직은 너무 귀찮고 수고스러운 일이 많아요. 일반 소비자에게 수고를 감수하라고 하면 환경 보호는 계속 이뤄질 수 없을 겁니다. 친환경 서비스도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 거예요. 모두가 제로웨이스터가 될 수 있도록 말이죠.”

김선영 청년기자(청세담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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