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지 선정 ‘세계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 1위
지속가능성을 전략·보상 체계에 내재화
“성과와 지속가능성은 대립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입니다.”
장-파스칼 트리쿠아르(Jean-Pascal Tricoire)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 이사회 의장은 19일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가 주최한 ‘ESG 거버넌스 리더십 조찬 간담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2006년부터 2023년까지 최고경영자(CEO)를 맡으며 회사를 디지털·전기화 중심의 글로벌 기술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주역으로, 이날 발언은 슈나이더가 2005년 ‘지속가능성 바로미터’를 도입한 이후 약 20년간 축적해온 전략을 증언처럼 풀어낸 것이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프랑스에 본사를 둔 에너지 관리·자동화·디지털화 전문 글로벌 기업이다. 스마트 인프라, 친환경 빌딩, 데이터센터, 산업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하며, ‘라이프 이즈 온(Life Is On)’이라는 철학 아래 에너지와 자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16만 명 이상이 근무하며, 2024년 매출은 약 381억 유로(한화 약 61조 8200억 원)에 달했다.
◇ 경영 전략에 통합하고, 인센티브와 연동까지
트리쿠아르 의장은 기후위기의 핵심이 ‘에너지’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2050년까지 전력 접근성이 없는 10억 명과 불안정한 상태의 20억 명을 포함해 총 50억 명에게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보장하는 동시에, 에너지 시스템의 탄소중립 전환을 달성해야 한다”며 “진보의 출발점은 에너지 접근이며 이는 인권”이라고 말했다.
슈나이더는 지속가능성을 별도의 부속 개념이 아닌 ‘경영 전략 그 자체’로 통합했다. 핵심 해법은 ▲디지털화(스마트빌딩·스마트시티·스마트팩토리 등 효율성 강화) ▲전기화(저탄소 전력원 확대)다. 그 결과 타임(Time)지와 데이터 기업 스타티스타(Statista)가 선정한 2025년 ‘세계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 1위에 올랐고, 코퍼레이트 나이츠(Corporate Knights)의 ‘글로벌 100(Global 100)’에도 14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회사는 2030년까지 스코프 1·2(Scope 1·2)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50년까지 공급망 전체(스코프 3)를 포함한 넷제로(Net Zero)에 도달한다는 명확한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공급업체에도 배출 절반 감축을 요구하며, 녹색 소재 개발을 지원한다. 또 매년 고객이 절감하는 탄소량은 1억2500만 톤으로, 자사 전체 배출량의 두 배에 달한다.
지난달 15일에는 기업의 공급망 탈탄소화를 지원하는 신규 디지털 플랫폼 ‘자이고 허브(Zeigo Hub)’를 공개했다. 인공지능(AI) 기반 분석과 교육·툴킷·벤치마킹 기능을 결합한 이 솔루션은 모든 규모의 공급업체가 배출량을 측정·관리하고 맞춤형 감축 로드맵을 실행하도록 돕는다. 단순 데이터 수집을 넘어 협력과 투명성을 강화해 공급망 전반의 탄소 감축과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게 목표다.
그는 이어 “지속가능성은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슈나이더는 이사회와 경영진, 현장 단위까지 전 계층의 의사결정에 지속가능성을 반영하고, 별도의 이해관계자 위원회를 설치해 외부 시각으로 전략을 점검한다. 전 임직원 교육·훈련을 통해 ESG를 체화하는 동시에, 3년마다 SDGs와 유엔 글로벌콤팩트 10대 원칙을 토대로 우선과제를 선정해 임직원 성과급과 스톡옵션, 성과연동형 주식 등 단기 인센티브에 반영한다. 재무성과 못지않게 지속가능성 달성이 보상에 직결되는 구조다.
트리쿠아르 의장은 지속가능성 전략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와 고객 간 협력의 75% 이상이 지속가능성과 직결돼 있으며, 포춘(Fortune) 500대 기업의 40%가 슈나이더의 파트너”라며 “지속가능성이 오히려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와 성장 시장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 AI와 ESG, 공존의 거버넌스 필요
트리쿠아르 의장은 AI와 에너지가 밀접히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확산을 가로막는 병목은 두 가지, 반도체 칩과 청정 전력”이라며, 현재 슈나이더 일렉트릭 매출의 4분의 1이 데이터센터와 엣지 컴퓨팅 전력 공급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또한 AI는 스마트홈·스마트빌딩·스마트시티 등에서 효율성을 높이며, 기후 리스크 대응과 ESG 데이터 관리에도 기여하는 ‘지속가능성의 촉매제’라고도 했다.
실제로 슈나이더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관리, 재생에너지 전환, 스마트 인프라 구축 등에서 신시장을 개척했다. 특히 엔비디아(Nvidia)와의 협업을 통해 데이터센터 냉각 에너지 20% 절감, 구축 시간 30% 단축 성과를 거두며 AI 확산에 따른 거대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그는 “ESG가 기업 성장의 실질적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시에 AI가 새로운 사회·환경 리스크를 동반한다고 지적했다. AI 인프라의 폭발적 확장은 ‘에너지 수요 증가’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슈나이더는 이사회 산하 디지털위원회(Digital Committee)와 감사위원회(Audit Committee)를 통해 AI와 ESG를 양립시키는 거버넌스 프레임을 마련, 기술혁신과 지속가능성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트리쿠아르 의장은 “각 기업의 여정은 다르지만, 공통된 교훈은 있다”며 “지속가능성을 전략에 통합하고, 이해관계자를 함께하며, 장기 목표를 명확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