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홀로 남은 할머니들, 마을 공동체가 돌봅니다”

배우자나 자녀 없이 홀로 사는 노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홀로 사는 노인의 수는 지난해 약 166만 1000명이었다. 5년 전인 2015년(약 122만 3000명)에 비해 약 35% 이상 늘어난 수치다. 특히 여성 독거노인의 수는 약 119만4000여명으로 남성 독거노인 수(약 46만 6000명)의 3배에 달했다.

문제는 홀로 노년을 보내는 여성의 수가 늘고 있지만 대부분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노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노후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여성 비율은 40.4%로 남성(29.3%)보다 10%포인트 이상 많았고 노후 준비를 하지 않은 여성 가운데 41.5%는 ‘준비 능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돌봄 공백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혼자 지내는 여성 노인이 건강 악화 등으로 요보호 상황에 놓였을 때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광주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청춘발산마을’은 여성 독거노인의 돌봄 공백 문제를 ‘마을 공동체’ 차원에서 풀어내며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월 13일 알록달록한 벽화들이 외지인을 반기는 청춘발산마을을 방문했다.

송명은 청춘발산협동조합 대표는 광주광역시에서 2018년 조합을 꾸린 뒤 마을 공동체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청춘발산협동조합 제공

청년들과 할머니들, 서로 돌보다

청춘발산마을의 변화는 지난 2015년 시작됐다. 현대자동차그룹과 광주시가 함께 추진한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발산마을’이란 이름도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아 청춘발산마을로 바꿨다.

당시 도시재생사업단 매니저로 마을과 인연을 맺었던 송명은(33) 청춘발산협동조합 대표는 2018년 조합을 꾸린 뒤 11명의 조합원과 함께 다양한 마을 공동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마을 커뮤니티 공간이자 조합 사무실인 ‘청춘빌리지’에서 만난 송명은 대표는 “마을에 혼자 사는 70세 이상 할머니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여성’과 ‘마을 돌봄’에 초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면서 “대표적으로 ‘행복보행도움 프로젝트’를 통해 의료용 보행기나 휠체어 등이 지나기 어려운 턱과 계단을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이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송 대표는 “이웃 간의 교류와 관계 맺음이 마을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했다. “무거운 걸 들어야 할 일이 생기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을 해야 할 때 할머니들이 저희 조합에 도움을 요청하십니다. 하지만 도움을 드리는 것 이상으로 할머니들도 저희를 돌봐주세요. 자주 들여다보시고 얼굴 보면 밥 먹었는지 꼭 물어봐 주시고 이것저것 가져다주십니다. 특히 이번에 코로나19로 조합 사업에 차질이 생겼을 때 응원해주시고 다독여주신 게 큰 힘이 됐어요.”

청춘빌리지 옆에 위치한 ‘청춘샌드위치’의 이미옥 대표는 5명의 할머니와 함께 일하고 있다. 새벽부터 가게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들이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할머니들만의 노하우를 직접 배울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칼질부터 포장 방법까지, 소소하지만 젊은 세대는 모르는 할머니들의 지혜가 샌드위치의 맛을 더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에겐 생애 처음으로 ‘직장’이 생겼다. 청춘샌드위치에서 일하는 한 할머니는 “월급을 모아서 빨간색 핸드폰을 구입했을 때 정말 뿌듯했다”며 웃었다. 그는 “평생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만 살았는데, 내 일을 하면서 큰돈은 아니지만 월급을 받아 나를 위해 쓰는 게 즐겁다”고 했다.

광주 발산마을에서는 ‘청춘샌드위치’ 등으로 마을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청춘발산협동조합 제공

마을 아이들을 위해 할머니들이 나서다

청춘발산마을에서는 누구나 서로를 돌보는 주체가 된다. 지역 주민들이 돌봄이 필요한 여성 노인을 일방적으로 돕는 구조가 아니라, 여성 노인들도 지역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행복장학금’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6년부터 양3동 샘몰경로당 할머니들은 마을에서 버려지는 폐품을 모아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행복장학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학업을 조금이나마 지원하고자 하는 할머님들의 마음이 모인 것이다. 샘몰경로당의 이영희(88) 회장은 “장학사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청년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캔과 병을 모을 수 있게 분리배출 공간을 만들고 병뚜껑을 모아 새로운 용도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쓸모아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들이 장학사업을 돕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회장은 “처음에는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장학금을 주기로 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다 같이 협조를 해주고 청년들도 도와주면서 액수가 커졌다”며 웃었다.

송명은 청춘발산협동조합 대표는 “청년들이 홀로 계신 할머니들을 돕자며 마을 공동체 사업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마을 공동체에서 할머니들이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모두가 돌봄에 참여할 때 돌봄의 가치도 함께 높아지는 것 같아요. 일방적인 돌봄 제공이 아닌 모두가 참여하는 돌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함께 노력할 겁니다.”

박혜연 청년기자(청세담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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