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국민 브랜드’는 장인이 만든 명품 브랜드가 아니다. 폐(廢)방수천을 활용해 만든 가방을 파는 ‘프라이타크(Freitag)’다. 연매출은 700억원, 역사도 20년이 넘는다. 국내에도 ‘제2의 프라이타크’를 꿈꾸는 기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아이템도 청바지, 폐현수막에 그치지 않는다. 버려지는 물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이들, 업사이클링계의 떠오르는 ‘어벤저스’를 소개한다.
◇ 폐자전거를 시계로 만드는 21세기 연금술사, 리브리스
좁은 문래동 골목가를 지나 찾아간 한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벽면에 걸려있는 파란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놓인 자전거 바퀴에는 시계의 분침과초침이 째깍째깍 돌아갔다. 이 작업실의 주인공은 폐자전거 부품을 활용해 시계, 전구를 만드는 업사이클링 브랜드 ‘리브리스(Rebreis)’다.
“제가 자전거 타는 걸 참 좋아하는데, 우연히 자전거 바퀴를 이용해 시계를 만드는 외국 작가의 사진을 봤어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시작했습니다.”
리브리스 장민수 대표가 멋쩍게 웃었다. 리브리스(Rebris)는 다시를 의미하는 ‘re’와 파편, 폐기물을 의미하는 ’debris’의 합성어다. 버려졌던 자전거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킨다는 뜻이다.
장 대표는 주로 자전거 체인링(앞 기어)과 스프라켓(뒤 기어)을 사용해 제품을 제작한다. 먼저 세척을 통해 기어의 녹을 제거한 후, 도색과 건조의 과정을 거친다. 도색된 기어와 아크릴 판, 시계 바늘 등을 조립하면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시계가 탄생한다. 한 제품을 제작하는 데 보통 8시간 정도가 걸린다.
“차상위 계층 등 어려운 삶을 사는 분들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게 리브리스를 키우고 싶어요.”
새 생명을 얻은 자전거처럼, 힘든 삶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삶을 이어갈 활력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장 대표의 목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버려진 물건으로 만들어서 더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 때문. 소량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가격대도 3~5만원으로 비싼 편. 앞으로는 대량 생산과 브랜딩을 통해 기업의 규모를 키울 생각이다. 한국의 ‘프라이타크’가 되고 싶다는 장 대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이용하는 자전거를 토대로 글로벌한 기업이 되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 단 하나도 남기지 않는 에코백, 위브워어스
“다 같은 에코백이라고요? 저희는 자투리 천을 단 하나도 남기지 않습니다.”
에코백 열풍이다. 그런데 정말 그 과정도 정말 환경적일까? 소셜벤처 ‘위브아워스’의 성주희 대표는 자신있게 “우리는 진짜 에코백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위브아워스의 대표 상품은 자투리 천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 ‘마이제로백’. 원단도 동물성 소재는 쓰지 않는다. 또한 집에 방치된 에코백을 위브아워스에 돌려주면 이 가방은 사회적기업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제3세계에 기부된다. 만드는 과정뿐만 아니라 처리까지 고려한 친환경 가방이다.
성 대표가 친환경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진국에서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버리는 의류가 30kg이래요. 패션 쓰레기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근데 요즘 중국에서 값싼 면 소재로 ‘대량생산’된 에코백은 대부분 3~6개월만 사용하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에코백이 사실 가장 비싼 플라스틱백이 된 셈이죠.”
위브아워스는 2014년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출전하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사회적 가치만으로 어필하는 사회적기업이 되고 싶지 는 않다고. 그녀는 “우리 제품이 자투리 0%여서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면서 “제품이 좋아서 샀는데 알고 보니 사회적기업이라 더 좋다는 인식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성 대표가 친환경뿐만 아니라 제품의 질과 디자인에 신경을 쓰게 된 이유다. 현재 ‘마이제로백’은 100%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카카오 주문제작 플랫폼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에 진행하고 있는 ‘꼬미 에디션’도 일러스트에 공을 들였다. ‘꼬미 에디션은’ 기존의 심플한 ‘마이제로백’에 유기묘(버려진 고양이) 그림을 그려 넣은 한정판이다.
대중의 호응도 좋다. ‘마이제로백’을 처음으로 선보였던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마감일 전에 이미 목표 금액의 200% 이상을 모았다. 올해 2월, ‘마이제로백’ 론칭 이후로는 이전보다 두 세배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성 대표의 목표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레 친환경을 실천하게 하는 것. “사회적 의미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저희와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환경적인 삶을 살게 하고 싶어요. ‘친환경적인 삶을 살 거야’가 아닌 저희 제품을 쓰다보다 에코 라이프를 살고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 버려진 옷이 직소백으로, 부산의 봉제 장인이 만듭니다, 에코인블랭크
부산 온천장에도 봉제 장인이 있다. 밀라노의 장인과 차이점이 있자면, 사회의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바느질을 한다. 부산의 (예비)사회적기업, 에코인블랭크(ECO IN BLANK) 이야기다.
에코인블랭크의 대표적인 가방은 ‘B.BAG’라고 불리는 ‘직소백(Jigsaw, 퍼즐)’이다. 가방의 이름에는 기업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양한 사회의 ‘Blank(공백)’를 채워가는 가방이라는 뜻. ‘버려진 옷’으로 새로운 가방을 만들며 환경의 구멍을 채워간다. 또한 다른 기업과, 지역 주민들과 손을 잡으며 사회의 간극도 메운다.
“업사이클링은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신종석 대표는 업사이클링을 통해 상생의 의미를 패션으로 표현해낸다. 현재는 부산의 양복 기업인 파크랜드에서 버려지는 옷들을 받아 가방을 만들고 있다.
가방을 만드는 장인을 키우는 것도 주요 역할이다. 신 대표는 봉제 노동자가 아니라 자부심을 가진 기술자 그룹을 만드는 것에 방점을 둔다. 지자체와 협업해, 무료 바느질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스스로가 장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패션 디자인 브랜드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난해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디자인 시상식인 DFA(Design for Asia Award 2015)에서 금상을 받았다. 이 꿈은 1년 6개월간의 디자인 개발 끝에 이뤄졌다. 올해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아인 ‘레드닷 어워드(Red Dot Award)’에서도 수상을 했다. “불가능은 없는 것 같아요.” 신대표가 지난 2년을 떠올리며 말했다. 브랜드 론칭 시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직소백’이 하나의 개성 있는 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 그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역 장인과 협업하며 부산에서 업사이클링의 바람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 폐유리 소재를 디자인 제품으로, 영점영
유리는 매력적인 소재다. 빛을 머금고, 변하지 않는다. 다양하게 변형되는 것도 소재의 특징이다. 유리의 매력에 빠진 두 디자이너 커플은 깨지거나 못 쓰게 된 ‘폐유리’에 주목했다. 그리고 2014년, 폐유리로 디자인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 ‘영점영(0.0)’을 론칭했다. 사실 영점영의 공동창업자인 강나래, 이지성 대표는 각각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던 디자이너들이다.
“일하면서 회의감을 많이 느꼈어요. 버려지기 위한 것들만 만드는 것 같은 회의감이요.” 이 대표는 “폐기하기 위한 디자인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같은 마음을 모은 둘은 재능을 살려,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 영점영(0.0)에서는 폐유리를 수집해, 세척, 연마, 후가공 등의 작업을 거쳐 디자인 제품으로 완성한다. 두 사람의 손길을 거친 제품들은 향초나 디퓨저부터 화분, 귀고리, 조명까지 다양하다.
“저희 로고를 보시면 0.0 밑에 빗금 표시가 있어요.” 이 대표는 안쪽 벽의 로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건축 기호에서 저건 ‘단’을 의미합니다. 무대, 강단할 때의 단이죠. 저기에 수치를 넣으면 그만큼 단이 차이가 나있다는 의미인데 저희는 0.0이잖아요. 경계 없이 작업하고 싶은 것이 저희의 희망사항입니다.”
영점영의 작업실 입구를 통유리로 만든 것도 이 때문. 이웃과의 경계를 허물며,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싶어서다. 이 대표는 “투명한 유리처럼, 언제든지 들여다보며 소통할 수 있는 지역 사회를 만드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며 또 하나의 미션을 말했다.
◇ 고장난 이어폰의 대변신, 프라운드
“유럽 배낭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동안의 추억을 담고 있던 이어폰이 고장난 거예요. 한 달 동안의 여행 친구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한 여대생은 고장난 이어폰과 함께했던 추억을 간직하는 방법으로 다름아닌 ‘창업’을 선택했다. 고장난 이어폰을 팔찌로 만드는 ‘프라운드’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만든 것.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고장난 이어폰에 대한 아쉬움과 추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 지난 14일,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만난 양정현씨도 ‘재밌는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창업 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그녀는 지금 프라운드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생활디자인을 전공한 양 씨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팔찌의 컨셉이다. 그녀는 “사회적 기업이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재밌는 브랜드로 기억에 남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라운드의 팔찌인 ‘JACK’의 3가지 기본 디자인은 100가지가 넘는 디자인을 적용한 후,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고장난 이어폰을 꼬거나, 자르거나, 변형해서 하나의 팔찌로 만든다.
프라운드의 최종 목표는 모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것. 양 씨는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제품을 한 번쯤 다르게 보는 시선들이 곧 업사이클링의 시작”이라며 “물건들을 버리기 전에 한 번 바꿔보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금창호, 문정민, 오다인, 이기욱, 이다비, 이밝음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5기)
✔ 오는 5월 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코워킹 스페이스, 카우앤독에서 제2회 ‘서울숲마켓’이 열린다. 소비의 품격을 높여줄 봄날의 축제, 그곳에서 업사이클링계의 어벤저스 5팀의 제품을 모두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