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그래서 쓰기로 했습니다” 청년들이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는 법

취업준비생 A 씨는 대학 졸업 후 몇 달째 구직 활동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몇 번의 취업 도전에서 실패한 이후로, A 씨는 자신감을 완전히 잃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산업계 전반이 위축되면서 구직활동을 이어가기도 여의치 않다. A 씨는 “스스로 우울감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이를 해소할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심리 상담을 받을까 알아보기도 했지만, 정신과 진료에 대한 거부감과 금전적인 부담으로 이내 마음을 돌렸다.

A 씨의 이야기가 특별한 사례는 아니다. 지난 7월 26일 보건복지부에서 ‘2021년 2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는 코로나 확산이 시작된 지난해부터 분기별로 실시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우울 평균점수는 5.0점(총점 27점)으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의 2.1점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30세대의 정신건강은 우려할 수준으로 나타났다. 20대와 30대의 우울 위험군 비율은 각각 24.3%, 22.6%로 조사됐다. 이는 50·60대 장년층과 비교해 1.5배 이상 높은 수치다. 심리적 어려움을 대처하는 데 도움되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한 비율 역시 마찬가지다. 20대와 30대는 각각 12.6%, 11.1%의 응답률을 보이며 50대 5.6%, 60대 7.9%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지난 8월26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한 구직자가 취업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조선일보DB

문학으로 나를 표현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혼란 속에서 청년들은 다른 세대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우울감과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청년들 사이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청년인생설계학교가 대표적이다. 청년인생설계학교는 서울시 청년청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2019년부터 매년 두 차례씩 여름학기와 가을학기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청년인생설계학교는 ‘나’답게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배우는 곳이다. 맹목적인 스펙 쌓기와 구직 활동에 내몰려 본인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기 어려웠던 청년들을 위해 기획됐다.

프로그램 중에는 사회적기업 ‘282북스’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프로젝트 ‘그래서 쓰기로 했습니다’가 인기다. 참가자들에게 본인의 일상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한 뒤, 에세이나 일기가 아닌 시와 소설 같은 문학으로 풀어내도록 유도하는 게 특징이다. 강미선 282북스 대표는 “자기의 생각을 문학적으로 풀어내려면 그 생각을 한번 더 꼬아서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나’라는 존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글쓰기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고, 표현하는 과정을 체험하면서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게 된다”면서 “이러한 고민의 결과는 작품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청년들은 많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에요. 글을 쓰는 기술을 알려주진 않아요. 왜 쓰는지 함께 고민하는 거죠.”

강미선 대표는 불안과 무력함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멈춤을 제안했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자신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면서 “먼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하루하루 오늘에 충실하면 불안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낯선 사람과의 느슨한 연대를 지향하다

청년의 마음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 ‘마음:온 프로젝트’는 치유활동가집단 ‘공감인’에서 맡아 진행하고 있다. 공감인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한 명만 있다면 사람은 살 수 있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조금 특별하다. 전문가에 의해 상담이 이뤄지는 일반적인 심리상담과 달리 마음:온 프로젝트에서는 일반 시민이 상담자로 나선다. 이미 심리치유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시민이 ‘공감자’가 되고, 다른 청년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가로 활동하는 식이다. 이른바 ‘치유 릴레이’다. 김새미 공감인 매니저는 “참가자들은 전문가와 내담자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치유를 경험한 시민이 또 다른 시민을 치유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통해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낯선 사람이기 때문에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아는 사람이면 신경 써야 할 게 많거든요. 혹시 이 이야기가 이 사람과 연관이 되어 있진 않을지, 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내 이야기가 소문으로 돌아 평판이 나빠지진 않을지 따위의 고민이 계속 따라붙죠. 하지만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걱정 없이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모든 참가자가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는 것은 아니다. 김 매니저는 “자기 마음이 어떤지 돌아보는 게 사실 정말 어렵다”면서 “청년들이 스스로 내 마음 건강을 챙겨야겠다고 생각만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인생설계학교를 담당하는 김혜연 서울평생교육진흥원 주임은 “느슨하고 안전한 관계망을 만들어 주는 것이 청년인생설계학교의 목표”라며 “정신건강 문제는 청년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진호 청년기자(청세담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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