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6일(목)
심리·문화·윤리 아우르는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

“성(性) 평등은 우리 사회에 성적 욕망과 즐거움을 쫓는 것에 대한 억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성적 즐거움은 모든 사람에게 보장돼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게 바로 성적 권리입니다. 그런데 여성·노인·청소년 등은 여전히 성담론에서 배제되고 차별받고 있어요. 전 생애에 걸쳐 성적 권리를 찾아갈 수 있는 ‘포괄적 성교육(CSE·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이유정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사무국장은 포괄적 성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성적 욕망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괄적 성교육이란 인간의 생애에서 성과 관련된 모든 경험을 포괄하는 교육을 뜻한다. 신체와 심리 발달,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 문화와 윤리 등을 아우른다. 이 사무국장은 “세계건강학회가 2019년 발표한 선언문에도 모든 사람은 포괄적 성교육의 권리를 갖고, 이는 연령에 맞게 과학적으로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서 인권, 섹슈얼리티, 성적 즐거움에 대한 긍정적 접근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성교육’에 대한 오해와 진실

국내 성교육 현실은 국제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지난 2018년 한국여성연구원에서 실시한 ‘청소년 성교육 수요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30%는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생각이 들 경우 어떻게 생각하거나 행동할 것인지를 물었을 때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항목은 ‘그런 생각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였다. 한국여성연구원은 “청소년기의 성은 성적 욕구 충족뿐만 아니라 성정체감과 자아정체감 형성에 필요한 욕구도 포함하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사회적 통제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지난 2015년 내놓은 ‘성교육 표준안’은 성 편견을 강화하는 예시, 청소년의 성행동을 불건전한 것으로 표현하는 등의 문제로 비판을 받아 ‘폐기 아닌 폐기’ 상태가 됐다. 이후 일부 단체의 항의가 빗발치면서 ‘학생건강증진정책방향’에 ‘포괄적’이라는 단어를 삭제했다. 이유정 사무국장은 “성폭력 예방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성교육 방식으로는 아동 청소년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면서 “청소년이 문화적 맥락이나 개인적인 호기심을 이해하고 해소하는 것, 정확하고 과학적인 성 지식을 제공받는 것, 타인과 안전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을 자유를 갖는 것 또한 청소년의 권리”라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성교육의 기본적인 목적을 청소년이 자신의 성적, 사회적 관계들에 대해 책임 있는 선택을 하도록 하는 지식, 기술, 가치를 갖추게 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포괄적 성교육에 대해서는 과학적이고 정확하고 현실적이며 비판단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성과 관계를 가르치는 연령에 적합하고 문화적으로 적절한 접근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WeTee)'는 청소년 당사자의 입장에서 성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안하는 단체다. /위티 제공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WeTee)’는 청소년 당사자의 입장에서 성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안하는 단체다. /위티 제공

제도권 밖 민간이 뛴다

청소년 대상 성교육 프로그램은 제도권 교육이 아닌 민간 영역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가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크워크 ‘위티(WeTee)’다. 2016년 소모임으로 시작해 2018년 교내 성폭력 고발운동인 ‘스쿨미투’를 계기로 청소년 당사자 목소리를 전하는 단체가 됐다. 지난 1일 만난 위티 활동가 최유경씨는 “스쿨미투 당시 가해 교사의 그릇된 행동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부각됐지만 사실 불평등한 학교 구조와 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나 인권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사회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결된 사건”이라고 했다.

위티는 2018년 ‘소녀, 소녀를 말하다’라는 이름의 청소년 페미니스트 기자단을 만들어 청소년의 시각에서 스쿨미투, 섹슈얼리티를 다뤘다. 2020년에는 ‘힐난도 자랑도 수치도 아닌 콘돔전시회’를 열었다. 최씨는 “상징적으로 콘돔을 활용했지만, 청소년의 피임 접근성뿐만 아닌 섹슈얼리티 전반에 대해 다룬 전시회”라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에서 청소년 성문제를 다루는 사례도 있다. 콘돔 브랜드 체레미마카를 운영하는 인스팅터스는 지난 2015년 설립 이후 판매량만큼 피임도구를 교구로 기부했다. 또 청소년 피임접근성 증진 프로젝트로 매달 신청한 청소년에 2개의 콘돔을 일반 우편으로 보내준다.

박홍주 인스팅터스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성의 영역에서 솔루션이 필요한 문제는 뭘까 고민하다 ‘성에 소외된 존재’에 초점을 맞췄고, 그 시작이 청소년이었다”라고 했다. 이어 “설립 당시부터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SRHR·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를 다루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피임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 성에 대한 고민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의료진, 활동가, 상담가들을 만나고 포괄적 성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전수민 청년기자(청세담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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