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갈수 있는 건물은 초록색 표시… 휠체어 내비게이션 ‘휠비’를 아시나요?

[인터뷰] ‘휠비’ 프로젝트 이끈 김선홍 행복나눔재단 매니저

앱(app)을 실행하고 목적지를 입력하자 초록색과 빨간색 아이콘들이 지도에 빼곡하게 나타난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건물에는 초록색, 그렇지 않은 곳에는 빨간색 아이콘이 표시되는 식이다. 이용자가 미리 ‘수동 휠체어’ ‘전동 휠체어’ ‘보조자’ 중에 유형을 골라 설정해 놓으면 각 유형에 맞는 안전한 길을 자동으로 안내해주는 휠체어 내비게이션 앱 ‘휠비(WheelVi)’ 이야기다.

휠비는 행복나눔재단 ‘휠체어 이동정보 제공 프로젝트’의 하나로 지난 5월 출시됐다. 휠체어 이용자에게 적합한 경로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기능에, 서울 시내 건물 출입 가능 여부와 장애인 화장실 위치 등을 알려주는 접근성 정보를 더한 형태다. 행복나눔재단이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고, 협동조합 ‘무의’가 접근성 데이터 수집을, 내비게이션 개발사 엘비에스테크(LBS Tech)가 앱 개발을 각각 맡았다.

‘무의’의 리서처들이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도로와 건물 내부 사진을 찍어 전송하면, 엘비에스테크의 AI가 장애물·경사도·출입문 등 접근성 정보를 판별해 휠비 앱에 탑재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했다. 2020년 프로젝트 초기에는 서울 시내 주요 번화가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데이터를 모았지만, 2년이 지난 현재는 서울시 20개 자치구의 휠체어 이동 경로와 건물 접근성 정보를 제공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지난달 15일, 휠비 프로젝트를 기획한 행복나눔재단 세상파일팀 김선홍 매니저를 만났다. 그는 “접근성 정보가 있는 장애인의 목적지 도착 성공률은 정보가 없는 장애인의 두 배에 달한다”면서 “이는 비장애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휠비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선홍 행복나눔재단 세상파일팀 매니저. /성가현 청년기자(청세담14기)
휠비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선홍 행복나눔재단 세상파일팀 매니저. /성가현 청년기자(청세담14기)

―‘휠비 프로젝트’의 기획 배경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휠체어를 쓰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동성 향상 및 신체 발달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휠체어와 전동 키트를 제공하고 신체 재활 훈련을 진행했어요. 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생활에 큰 변화가 없었어요. 이유를 들여다봤더니 ‘접근성 정보’가 없다는 게 문제였어요. 모르는 지역에서 약속을 잡으면 휠체어로 갈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데만 30분에서 1시간이 걸린다는 거였죠. 그래서 기획한 게 ‘휠비’예요. 2020년 파일럿 테스트를 거쳐서 2021년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고, 베타 테스트를 거쳐 지난 5월에 정식 출시했습니다.”

―교통약자를 위한 앱은 기존에도 여럿 출시됐는데요. 휠비만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존에는 공간의 접근성과 주변 교통 인프라를 함께 제공하는 서비스가 없었어요. ‘휠비’는 위치 기반 내비게이션 앱이에요. 휠체어 경로부터 접근성 정보까지 하나의 앱에서 알려준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또 접근성 정보 업데이트 주기가 비교적 짧다는 것도 강점입니다. 주기가 6개월 정도예요. 국토교통부 GIS(지리정보시스템) 데이터를 바탕으로 업데이트를 하고 있어요. 기획 단계부터 협동조합 ‘무의’와 협업하면서,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반영했다는 점도 강점으로 뽑을 수 있겠네요.“

지난 12일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에 무의 리서처들이 모여 지금까지 쌓아온 데이터를 확인하는 활동 공유회를 가졌다. /성가현 청년기자(청세담14기)
지난 12일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에 무의 리서처들이 모여 지금까지 쌓아온 데이터를 확인하는 활동 공유회를 가졌다. /성가현 청년기자(청세담14기)

―접근성 판별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휠체어 이용자마다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가장 보수적으로 기준을 잡았어요. 경사로는 5도 미만, 출입문 폭은 90cm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어요. 워낙 개발사 AI가 고도화돼있기 때문에, 리서처가 사진만 찍어서 보내도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지 판별이 돼요. 지금 휠비는 주로 카페와 식당 접근성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요. 드러그스토어와 약국 정보도 추가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장애인용 화장실, 엘리베이터 등 교통약자 이동에 관련된 모든 정보가 담겨 있어요.”

―정식 출시 이후 한 달여가 지났는데요. 베타 테스트 기간을 포함해 이용자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용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가장 많이 나온 의견은 ‘서비스 지역 확대가 시급하다’는 거였어요. 인터뷰에 참여한 한 장애인 이용자는 ‘비장애인이 2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씩 걸려 출퇴근했는데, 휠비를 사용한 이후 어떤 날은 비장애인보다도 일찍 출근했다’고 하셨어요. 단순히 외출 빈도가 높아지는 걸 넘어서 ‘휠비가 교통약자의 생활 패턴 자체를 바꿀 수 있겠다’는 걸 깨달았어요. 앱 만족도도 90% 이상으로 높았어요. 휠체어 경로와 접근성 정보를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제공하는 앱은 없었으니까요.”

휠비 앱 화면. 이용자 유형에 맞는 내비게이션 기능과 장소별 접근성 정보가 제공된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곳은 초록색으로, 불가능한 곳은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휠비
휠비 앱 화면. 이용자 유형에 맞는 내비게이션 기능과 장소별 접근성 정보가 제공된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곳은 초록색으로, 불가능한 곳은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휠비

―휠비 앱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는 건 결국 우리나라가 교통약자 이동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휠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나라에 교통약자가 갈 수 있는 곳이 너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서울 어느 번화가는 조사하는 한 시간 내내 한 군데도 들어갈 수 있는 가게가 없었습니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정부에서 공공데이터를 제공하면 민간에서 투자해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죠. 지금 여러 지도 앱이 실시간 교통상황을 반영하잖아요. 만약 보행로 CCTV를 정부가 제공해준다면 휠비도 경로 안내에 실시간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겠죠.“

―혹시 다른 지도 앱과 협업할 가능성도 있나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모델링’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교통약자 내비게이션 앱’이 유의미한 서비스 모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우선은 지자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대표적인 공공서비스로 자리 잡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민간 지도 앱에서 교통약자를 위한 기능들을 추가하겠죠. 저희가 축적하고 있는 이 데이터를 누가 더 효과적으로 유지·보수를 하면서 업데이트를 해나갈 수 있느냐, 그걸 기준으로 협업 대상을 판단할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휠비 데이터는 교통약자 모두를 위한 데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노인이나 유모차를 위한 서비스로 확장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서비스를 더 고도화하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김채운 청년기자(청세담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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