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으로 이웃에 나눔 실천해온 다일공동체
지난 2일 오전 10시, 서울 청량리 밥퍼나눔운동본부의 공터에는 노숙인, 노인을 비롯한 10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이른 아침부터 이들이 모인 까닭은 다일공동체의 ‘밥퍼나눔’ 1000만그릇 돌파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오병이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행사는,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인 성경 속 나눔의 기적을 되새기는 뜻에서 열렸다. 김성렬 행정자치부 차관, 김종욱 서울시 정무부시장,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전 월드비전 회장 박종삼 목사 등도 참석했다.
◇다시 일어나는 이웃들, 그 곁엔 다일공동체
“여러분, 이종순 할머니 별명이 뭔지 아시죠?”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든 최일도(61) 다일공동체 이사장이 참석자들을 향해 물었다. 이어서 그가 말했다. “항상 웃는 얼굴이라 ‘스마일 할머니’라고 불리죠. 그런데 스마일 할머니에겐 고통이 많았습니다. 호적신고가 돼 있지 않아 대한민국 국민인데 어떤 권리도 누리지 못하셨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밥퍼 가족들이 힘쓴 결과입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이종순(76) 할머니는 수줍게 한 마디를 꺼냈다. “사랑합니다.”
다일공동체를 찾는 노숙인과 노인들은 단순히 밥만 먹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나눔의 사랑이 담긴 밥을 통해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은 것이었다. 이차술(62) 할아버지도 그 중 한 분이다. 이 할아버지는 청량리에서 17년간 노숙생활을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는 감옥에, 어머니는 생활고에 못 이겨 집을 나갔다”며 “12살 어린 나이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농약을 마시고 자살시도를 했고 성인이 돼서도 술을 마시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며 지난날을 고백했다. 이 할아버지는 “밥퍼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게 만들었다”며 밥퍼를 통한 삶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현재 그는 14년째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무대에서 연설을 마친 이 할아버지는 어느새 강단을 내려와 배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빗자루로 공터를 쓸고 점심 준비를 한다. 그는 “오랜 시간 도움만 받아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매일 나온다”며 “앞으로 몸이 건강할 때까지 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밥퍼 본부를 찾는 분들에게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하셨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따뜻한 밥 한 끼로 사랑을 나눕니다
이날의 특별한 행사로, 전주의 한 비빔밥집에서 기증된 비빔밥 재료를 이용한 대형 비빔밥 프로젝트가 이뤄졌다. 초록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과 한·중·일 청년봉사모임 ‘레드엔젤’ 소속 참가자들은 참석자들에게 비빔밥 공기를 분주히 전달했다.
이날 자원봉사자 중에는 어린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3년째 봉사를 하는 민서현(15)양은 “길에서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은 점심을 먹지 못할 형편인 경우도 많아, 어르신뿐 아니라 청년들도 와서 먹는 걸 보고 놀랐다”며 “배식, 잔반처리, 설거지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거의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박정월(66)씨는 자원봉사자들을 향해 “감사한 분들 덕분에 매번 맛있게 먹고 있다”고 말했다. 청량리에 사시는 윤정인(78)씨는 “노인들이 소화하기 쉬운 채소 위주로도 음식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참석자들은 한 손에 간식거리가 담긴 상자를 들고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밥퍼’에서 ‘꿈퍼’로 커지는 나눔의 기적
“밥이 평화다.”
밥에 대한 최일도 이사장의 철학이다. 그는 “벼(禾)가 입(口)에 골고루(平) 들어가야 평화(平和)가 이뤄진다”며 “기근 속에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도 밥을 나눠주는 게 목표”라는 큰 꿈을 품고 있다.
이뿐 아니라 다일공동체는 ‘밥퍼’를 넘어 ‘꿈퍼’로 향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가장 모범적인 원스톱 종합복지시설 ‘꿈퍼’를 세우는 것이다. 최일도 이사장은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괴로워한다”며 “노인들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직장 여성들이 아이를 맡겨 놓고 갈 수 있는 시설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워킹맘들이 시설에 아이를 맡기면 노인들이 책임지고 보살핀다는 것이다. 워킹맘은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고, 노인들은 아이들의 재롱도 보고 돌봄에 대한 보수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그림이다.
허세민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7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