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일(금)
“한 달에 한 번,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가 만든 꽃다발을 배달합니다”

[인터뷰] 박경돈 플립 대표

박경돈(30)씨는 한 주의 시작을 꽃으로 연다. 월요일 새벽이면 화훼 시장에 들러 다양한 꽃을 구입한다. 정성스럽게 고른 꽃을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들과 예쁘게 구성해 포장하고, 전국으로 발송한다. 박씨는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를 양성하고, 이들이 만든 작품으로 정기구독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플립(FLIP)’의 대표다. 현재 구독자만 2000명에 달한다.

“저도 제가 꽃으로 사업을 하게 될 줄 몰랐어요. 친구 손에 이끌려 플로리스트 원데이 클래스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화훼 산업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그리고 원래 관심 있던 여성 청각장애인 취업 문제와 연결지어봤죠. 알고 보니 청각장애인과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이 ‘찰떡궁합’이더라고요.”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사회적기업 '플립'의 박경돈 대표는 "청각장애인은 플로리스트에게 필요한 자질을 갖춘 경우가 많다"며 "비장애인보다 시야가 넓고, 색감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사회적기업 ‘플립’의 박경돈 대표는 “청각장애인은 플로리스트에게 필요한 자질을 갖춘 경우가 많다”며 “비장애인보다 시야가 넓고, 색감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시야 넓고 색감 활용 능력 뛰어나

-왜 플로리스트가 청각장애인에게 좋은 직업인가요?

“청각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시각이 발달했어요. 시야가 1.5배 넓고 시각 정보 습득이 빨라요. 색감 활용과 배치 능력도 뛰어나서 플로리스트 활동에 적합하죠. 여성 청각장애인들은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가져서 좋고, 화훼 업계는 능력 있는 플로리스트를 얻어서 좋아요. 서로 ‘윈윈(win-win)’하는 구조입니다. 문제라면 플로리스트는 수입이 불안정하다는 거예요. 졸업식, 크리스마스 같은 행사가 몰린 겨울에 비해 여름에는 수익이 뚝 떨어집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한 방법이 꽃 정기구독이었어요. 제철 꽃을 배송해 소비자에게 계절감을 선물하죠. 구독자 300명이 생기면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 1명이 직업을 얻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직원들의 만족도는 어떤가요?

“경남 양산에서 서울까지 플립의 교육을 들으러 왔던 친구가 있어요. 지금은 정직원으로 채용돼서 서울로 이사를 왔고요. 주변 환경을 모두 바꿀 만큼 이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단 거겠죠. 직원들이 일을 즐기는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회사 차리길 잘했어요.”

박 대표는 장교 시절 귀에 이명이 생긴 이후 청각장애에 관심을 가졌다. 청각장애인에 대해 알아보다가 여성 청각장애인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정부의 장애인 직업 교육은 대부분 공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단순 작업 위주로 이뤄졌다. 여성 청각장애인의 흥미와 직업 적합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프로그램으로, 수료율은 20% 미만이었다. 취업 후에도 문제였다. 작업장에 여자 화장실이 없을 정도로 고용주들의 여성 청각장애인 고용 의지가 약했다.

“화장실이 없는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몇몇 사람은 수치만 보고 말해요. 여성 청각장애인이 취업할 의지가 없다고요. 이건 사회적인 폭력입니다.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거죠.” 박 대표는 직접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업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2019년 10월, 플립을 설립했다.

-보람도 있지만,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첫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 양성 사업이다 보니 곤란한 상황들이 있었어요. 플립은 교육을 수어로 진행해요. 문제는 꽃과 관련된 수어가 얼마 없어요. 수업을 하다가 ‘센터피스’ ‘바인딩 포인트’ 같은 전문용어를 뜻하는 수어를 창작했죠. 교육 중에 꽃을 잡은 상태로 수어를 해야 하니까 의미 전달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어요. 그래서 떠올린 방법이 속기사를 동행하는 겁니다. 플립 강의 시간에는 교육용 PPT 화면과 수업 내용을 속기한 화면이 동시에 떠있어요. 문제가 있어도 서로 소통하면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니 해결방안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수업도 점점 원활하게 진행되고 수강생 만족도도 높아졌습니다.”

박경돈 플립 대표.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박경돈 플립 대표.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재구독률 91%의 비결

-소통과 변화, 이게 플립의 인기 비결인가요?

“맞습니다. 플로리스트 직원, 교육생, 구독자분들이 소통하면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노력 덕분인지 재구독률이 점점 늘어 현재 91% 이상을 유지하고 있죠.”

-대표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포장지를 모두 친환경 제품으로 바꾼 거예요. 두 번째는 한 달에 한 번씩 구독자에게 감사증을 보낸 거죠. 고객 중에는 플립이 추구하는 가치가 좋아서 구독하는 사람도 있고, 꽃이 좋아서 구독하는 사람도 있어요. 꽃과 플립의 가치를 함께 담아내는 방식을 고민하던 차에 한 구독자분께서 감사증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감사증에는 플립이 청각장애 플로리스트의 행복한 업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는 노력과, 이에 동참해준 구독자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가 담겼어요. 플립은 앞으로도 구독자 의견을 들으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해요. 꽃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법에 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꽂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요?

“플립은 ‘플라워(Flower·꽃)’와 ‘리프(leaf·잎)’의 합성어예요. 꽃잎으로 세상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의미가 담겼죠. 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을 갖고 있어요. 예를 들어볼까요? 지난 5월에는 해바라기를 배송했어요. 해바라기는 전쟁의 아픔을 겪는 우크라이나의 국화이면서, 러시아에서 제일 많이 생산되는 꽃이기도 해요. 철이 아니기에 가격이 저렴하진 않았지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함께 담아 보낼 수 있었어요. 우리가 배송한 해바라기가 누군가에게는 대화 주제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전쟁 문제의 경각심을 깨워주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죠. 이 외에도 의미를 전달하는 이벤트를 종종 해요. 꽃의 수명은 보통 2주예요. 고객들이 꽃과 함께 하는 동안 플립이 담아 보낸 가치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박 대표와 플립 직원들에게 꽃의 의미는 남다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수단이자, 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귀가 아닌 꽃으로 듣고, 입이 아닌 꽃으로 세상에 메시지를 던진다. 박 대표는 청각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더 넓히기 위해 고민 중이다.

-플립의 최종 목표는 뭔가요?

“플립은 같이 일하는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려고 합니다. 종교, 장애, 인종, 성별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서 즐겁게 일하는 사회가 오기를 바라요. 플립은 그중 청각장애인이 일하는 현장을 넓혀나가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는 거죠. 올해는 청각장애인 전문 플로리스트 교육기관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어요. 교육과정을 전문화하고 이를 수료한 청각장애인 수강생들이 자생적으로 수익을 내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더 나아가 바리스타, 네일 아티스트 같은 직업으로도 사업을 확장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머지않아 여성 청각장애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을 거예요. 잘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허수현 청년기자(청세담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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