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장애인에게 옷 고르는 재미를 ‘어댑티브 패션’으로 장애인식 개선”

[인터뷰] 박주현 베터베이직 대표

데일리룩, 출근룩, 면접룩, 소개팅룩, 하객룩…. 평범한 일상부터 특별한 순간까지 상황에 어울리는 옷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람들의 고민은 선택지가 아주 많다는 데서 출발한다. 당장 스마트폰을 들어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하면 수천, 수만 벌의 옷이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옷을 고를 수 있는 권리가 모두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누군가는 의류 선택지 자체가 없어 고민이다.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박주현 베터베이직 대표가 ‘2017년 여성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뒤트임 방식의 옷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소영 청년기자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박주현 베터베이직 대표가 ‘2017년 여성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뒤트임 방식의 옷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소영 청년기자

박주현 베터베이직 대표는 장애인이 의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댑티브(adaptive) 패션’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어댑티브 패션이란 장애인들의 활동 범위를 고려해 제작한 옷이다. 지난달 14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옷을 착용했을 때 활동에 불편이 없는 건 물론이고 입고 벗는 일도 편해야 한다는 원칙을 두고 제작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한동안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니버설 패션과 어댑티브 패션 중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했다. 유니버설 패션이란 남녀노소, 장애의 유무에 관계없이 착용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의류’다. 반면 어댑티브 패션은 장애인의 신체 특성을 반영한 디자인, 즉 ‘한 사람’을 위한 의류라는 점에서 다르다.

“남녀노소 누구나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입을 수 있는 유니버설 패션은 허상에 가까워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기성복의 사이즈를 보더라도 비장애인 모두가 딱 맞게 입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체형이 비장애인보다 훨씬 가늘고 긴 편이에요. 비장애인과 뇌병변장애인 모두가 입을 수 있도록 옷을 만들면 사이즈가 너무 커져 버리겠죠. 사이즈를 어렵사리 맞춰도 패션은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많이 반영되는 품목이라 소비자를 만족시키기도 어렵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를 포용하는 의류를 개발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장애인만을 위한 의류를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다. 장애인은 신체 특성상 표준 사이즈를 개발하기 어렵다. 비장애인은 특정인의 키와 체형을 기준으로 비율을 늘리거나 줄이면서 사이즈를 스몰(S), 미디엄(M), 라지(L) 등으로 규격화한다. 그러나 장애인은 키와 체형 외에도 근육 강직의 정도, 골격 변형의 정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박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학부모의 도움을 받아 나이별, 신장별 모델들을 수소문했다. 모델들의 사이즈를 수도 없이 측정하며 마침내 여섯 가지의 표준 규격을 개발했다. 국내 최초의 장애인 표준 사이즈다.

“신체 특성이 각기 다른 장애인에게 일정한 기준 치수에 따라 미리 여러 벌을 지어놓고 파는 기성복은 부적합해요. 오히려 각 사람의 신체 특성을 고려해 맞춤복으로 제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맞춤옷 제작에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이에요. 기성복 제작을 위한 장애인 표준 사이즈를 굳이 개발한 것도 장애인에게 ‘옷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죠.”

베터베이직은 장애인 대상의 기성복을 만들다 보니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있다. 첫 번째는 제한된 수요다. 공장마다 약간 다르지만, 업체의 기본 주문 수량은 티셔츠 기준 1만장이다. 박 대표는 생산 업체를 찾아가 일일이 상품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 결과 베터베이직의 취지에 공감하는 몇몇 생산 업체를 만나, 샘플 가격에 소량으로 제품을 납품받을 수 있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의 취향이 제대로 발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애인을 위한 의류가 거의 없기 때문에 불편한 옷을 입어도 그걸 인지하기 어려워요. 예를 들어 에어프라이기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가 에어프라이기가 있으면 삶이 얼마나 편해질지 알지 못했죠. 장애인 의류도 마찬가지에요. 사용해본 적 없으니까, 이걸 입으면 옷 착용이 얼마나 편해질지 알 수 없죠.”

요즘 박주현 대표의 고민은 제한된 고객 수요가 아니다. 장애인과 패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장애인을 위한 패션이라고 하면, 그런게 굳이 필요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장애인과 장애인의 보호자들조차 당장 생존과 직결된 다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니, 패션을 통해 자기표현을 하는 일은 뒷전이죠. 그런데 옷이야말로 사람답게 사는 조건의 첫 시작이에요. 우리가 밖에 나가서 이동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또 상호작용하는 모든 과정에서 옷은 매우 큰 역할을 하니까요.”

국내에서는 어댑티브 패션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전망은 어떨지 가늠하기 어렵다. 2021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등록 현황을 살펴보면, 등록 장애인은 총 264만5000명이다. 국민 100명 중 5명꼴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들의 ‘입을 권리’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

박 대표는 “장애인이 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잘 차려입고 나가서 사회생활을 번듯하게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면서 “장애인에게도 옷을 고를 권리를 보장하는 것, 더 나아가 그 옷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야 말로 장애인 인식 개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박소영 청년기자(청세담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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