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네 번 입고 버려지는 웨딩드레스에 새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인터뷰] 박소영 코햄체 대표

지난달 9일 대구 달서구 사무실에서 만난 박소영 코햄체 대표는 “업사이클링은 사람들 일상에 지구를 지키자는 가치를 불어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다영 청년기자

“사랑을 상징하는 웨딩드레스는 신부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하지만, 단 4번만 입고 버려지죠. 순백의 아름다움을 잃고 땅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해요. 웨딩드레스는 합성섬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썩는 데만 수백 년이 걸립니다. 짧은 수명에 길고 긴 마지막을 겪는 거죠.”

박소영(26) 코햄체 대표는 버려지는 웨딩드레스의 쓸모를 찾았다. 웨딩드레스는 고가인 만큼 소재도 좋다. 이 고급 소재를 업사이클하면 질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했다. 2018년에 설립된 코햄체는 수명이 다 된 웨딩드레스로 가방·귀걸이 등 패션잡화를 만드는 업사이클링 소셜벤처다. 2019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대한민국친환경대전에서 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달 9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사무실에서 박소영 대표를 만났다.

“웨딩드레스 한 벌로 약 20~30개의 파우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와디즈에서 펀딩을 진행했던 MEANING BAG처럼 큰 제품의 경우엔 한 벌로 가방 5개 정도를 만들 수 있더라고요. 게다가 화이트 색감인데도 오염에 강해서 더럽혀지지 않아요. 세탁도 쉽죠. 업사이클에 최적의 소재입니다.”

박 대표는 웨딩숍에서 버려지는 웨딩드레스를 10만원 정도에 사온다. 웨딩드레스에서 자잘한 비즈를 떼어내고 레이스를 분해한다. 손으로 세탁하고 제품 생산도 수공예로 진행한다. 웨딩드레스 중에는 똑같은 제품이 없다. 원단도 가지각색이다. 웨딩드레스의 원단과 특징에 맞춰 제품을 만든다. 가령 실크와 비슷한 새틴 원단은 가방을, 레이스는 귀걸이를 만드는 데 쓴다. 원단 두께에 따라 파우치, 클러치백, 스크런치 등 제품도 만들 수 있다.

업사이클 수공예 사업 4년차에 접어들면서 박 대표는 다른 의류 쓰레기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바로 ‘해녀복’이다. 그는 “해녀복은 해녀의 체온을 지켜주는 실용적인 옷이지만 버려지는 순간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소재”라고 설명했다. 해녀복을 구하기 위해 무작정 제주를 찾아갔지만, 해녀들을 설득하긴 쉽지 않았다. 박 대표는 ‘해녀연구’로 유명한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를 찾아가 “해녀복으로 업사이클 제품을 만들어 해녀에 대해 알리고 싶다”고 설득했다. 박 대표는 교수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제주형 융복합 문화 콘텐츠 상품 제작 지원’ 사업에도 선정되면서 해녀복을 텀블러 백과 지갑 등으로 변신시켰다. 이 제품들은 박 대표도 예상 못 한 큰 호응을 받았다.

“영국의 한 기념품 매장에서 입점 문의가 오기도 했어요. 단가가 맞지 않아 수출 계약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때 외국 진출의 가능성을 엿봤죠. 서울의 한 단체에서 텀블러 백 500개를 주문하기도 했어요. 재료 수급 문제로 계약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요. 지금은 코로나19로 재료 수급이 더 어려워져서 해녀복 업사이클은 잠시 멈췄습니다. 하지만 해녀의 가치를 알리는 일은 계속하고 싶어요. 오는 9월엔 해녀를 주제로 한 펀딩도 진행할 예정이에요.”

박 대표는 계명대학교 텍스타일디자인과 4학년이었던 2018년 웨딩드레스 업사이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을 할까 고민하던 중 매년 수백만벌의 웨딩드레스가 버려지고 있다는 내용의 TV 프로그램을 봤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전공지식을 살려 ‘웨딩드레스 소재라면 충분히 다른 제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환경을 지키는 일에 줄곧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곧바로 사업자등록을 했다.

박 대표는 업사이클 제품의 가치를 알리고자 ‘플래네티’라는 이름의 친환경 플랫폼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다양한 업사이클 제품을 소개하고, 친환경에 관심 있는 이들의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박 대표는 청년을 대상으로 리폼이나 업사이클 방법에 대해 강연도 한다. 그는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알리고 친환경 생활에 대해 널리 퍼뜨리고 싶어 3년 동안 강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 모두 지구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업사이클링 제품을 통해 친환경적인 가치를 알리고 싶어요. ‘코햄체’는 폴란드어로 ‘사랑해’라는 뜻이에요. 사랑의 의미를 담은 웨딩드레스를 업사이클링해서 지구를 사랑하자는 뜻에서 지었어요. 앞으로 사람들 삶 속에 친환경이 녹아들 수 있도록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송다영 청년기자(청세담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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