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복지 삭감 이후, 미국 재단 대응 전략은?
긴급 지원뿐만 아니라 단체 합병·해산·운영 전환까지 지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이후, 복지와 국제개발협력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미국 재단들이 장기 대응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공공 재원이 빠진 자리에 긴급 자금을 투입하고, 현장 단체들의 구조 전환을 지원하는 중장기 전략까지 마련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지원)를 비롯한 복지예산을 전면 축소했다. 메디케이드는 향후 10년간 1조 달러(한화 약 1400조원)가 감액된다. 해외 원조 예산도 80억 달러(한화 약 11조1300억원)가 취소됐다. 국제개발 예산의 중심축이던 미국국제개발처(이하 USAID)는 폐지됐고, 국무부 기능도 축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부패와 낭비를 줄이고 민간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 게이츠재단, 글로벌 보건·교육 분야 집중 투자하기로
정부 재정이 끊기자, 민간 재단들은 공백을 메우기 위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게이츠재단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단한 글로벌 보건 지원과 국내 교육 예산 삭감을 보완하기 위해 해당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재단은 앞으로 20년간 전 재산인 2000억 달러(약 280조 원)를 모두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포드재단은 지난달 글로벌 성소수자 권리 운동을 위한 ‘Fund Our Futures’ 캠페인에 1600만 달러(약 223억 원)를 지원했다.
가장 큰 공백은 국제개발협력 부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USAID 폐지로 관련 예산이 사실상 사라지자, 비영리단체 언락에이드는 ‘해외원조 긴급 연결기금(Foreign Aid Bridge Fund)’을 조성했다. 목표 금액은 500만 달러 였지만, 이중 200만 달러(한화 약 28억 원)만 모금한 채 지난 4월 운영을 종료했다.
창업가 기부 네트워크 ‘파운더스 플레지’와 ‘더 라이프 유 캔 세이브’는 지금까지 750만 달러(약 1040억 원)를 모아 가톨릭 릴리프 서비스(CRS) 등에 배분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긴급 기부만으로는 공공의 빈자리를 온전히 메우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재단은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단순한 구호를 넘어, 단체의 생존 전략과 지역 생태계 재편까지 내다보는 전략이 등장하고 있다. 자클린 터커 마이어재단 부사장은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단기적 구호자가 아니라,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전략적 파트너”라고 말했다.
◇ 단체 합병·전환까지 지원…구조 개편 전략에 나서는 재단
일부 재단은 지금, 위기를 구조 전환의 기회로 삼고 있다. 워싱턴DC의 마이어재단은 재정 위기를 겪는 단체들이 합병이나 해산 등 전략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브릿지 펀드’를 운용 중이다. 단체별 존속 여부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지역 생태계 전체의 재편을 함께 설계하겠다는 접근이다. 재단 관계자는 “이제는 개별 단체를 살리는 것을 넘어, 지역 생태계 전체의 재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원 방식도 유연하게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인종차별 해소와 제도 개선을 목표로 하는 단체에 1만~2만 달러(한화 약 1400~2800만원)의 긴급 지원금을 집행 중이다. 기존보다 2배 많은 100만 달러(한화 약 14억원) 규모로 예산을 늘려, 전략적 지원과 실행력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보스턴재단도 지난 4월 ‘세이프티넷 보조금’ 260만 달러(한화 약 36억원)를 긴급 집행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등 기술을 활용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려는 단체를 대상으로 ‘전환 자본’ 지원도 검토 중이다. 올란도 왓킨스 보스턴재단 부사장은 “이제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전략”이라며 “단체가 스스로 생존 전략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민간 대형 재단들은 전략적 연대를 통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발머 그룹, 게이츠 재단, 스탠드 투게더, 발할라 재단, 존 오버덱 등은 10억 달러(한화 약 1조 4000억 원) 규모의 공동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다. 저소득층의 경제적 기회 확대를 위한 ‘넥스트래더 벤처스(NextLadder Ventures)’ 법인을 함께 설립하고, 인공지능(AI) 기반 솔루션 개발에 나섰다. 현장 사회복지사의 업무를 지원하는 도구를 만들고, 비영리 조직들이 AI 기술을 쉽게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