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홍선 코너스톤티엔엠 대표
착한 기업, 착한 소비, 착한 탄수화물. ‘착한’이라는 형용사가 유행이다. 문제에 대한 솔루션 제공하는 대상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인다. 예컨대 착한 소비는 상품을 만드는 생산자의 삶까지 생각하는 소비를, 착한 탄수화물은 천천히 소화되고 흡수돼 건강에 이로운 식품을 뜻한다. 소셜벤처 코너스톤티엔엠의 대체식품 브랜드인 ‘바나나아일랜드’는 착한 소비와 착한 탄수화물 섭취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하는 상품을 만들었다. 바로 ‘그린바나나가루’다. 한국과 필리핀 각 국가의 사회문제도 동시에 해결한다.
바나나아일랜드를 만든 차홍선(33) 코너스톤티엔엠 대표는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국제개발협력가였다. 차 대표는 불안정한 농산물 거래가격으로 어려움을 겪는 필리핀 소농들에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해 바나나에 부가가치를 더한 그린바나나가루 생산을 시작했다. 원료 수급부터 유통, 생산까지 전 과정을 필리핀 농촌지역의 소농, 바나나협동조합과 함께 진행한다. 이렇게 생산한 그린바나나가루는 글루텐프리(Gluten-free) 식품으로 한국에서 판매된다. 당뇨나 다이어트 등으로 밀가루 대체식품을 찾는 사람들이 선호한다. 지난달 20일 서울 영등포구 소셜캠퍼스온 당산에서 차홍선 코너스톤티엔엠 대표를 만났다.
-국제개발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식품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있었던 필리핀 마운틴프로빈스 주의 파라셀리 지역 주민은 대부분 바나나를 키우는 소농이었어요. 문제는 도로 등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차량을 가진 유통업자에게 판매를 의존한다는 거였어요. 유통업자가 부르는 값에 바나나를 팔고 있었죠. 그래서 가격이 천차만별이었어요. 1kg에 14페소(약 328원)를 받다가 얼마 후에는 7페소(약 164원)에 팔더라고요. 농산물 가격이 일정하지 않으니까 월수입도 예측하기 어렵고, 소농의 삶도 불안정했어요. 가격 문제를 해결해서 소농들에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줄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바나나를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더하는 식품 사업을 떠올리게 됐어요.”
-소농들이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게 있었나요.
“파라셀리 지역에는 공동 경작하는 품앗이 문화가 남아있어요. 그래도 도움을 받으면 어느 정도 인건비를 줘야 하는데, 그러면 남는 돈이 없는 거예요.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몸이 아프면 병원에도 가야 하는데 이런 사회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없는 거죠. 만약에 이번 달에는 얼마를 벌 수 있는지 알았으면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바나나 농사를 지어서 팔았을 거예요. 가격이 고정적이면 이런 결정을 사전에 할 수 있는 거죠.”
-사업 아이템으로 그린바나나가루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식품을 구매하는 고객의 건강문제도 해결하고 싶었어요. 시장조사를 하다가 필리핀 마닐라의 한 상점에서 그린바나나가루를 발견했어요. 조사를 해보니 그린바나나가루에 혈당이 빠르게 오르는 것을 막는 저항성 전분이 굉장히 풍부하더라고요. 식이섬유, 마그네슘, 칼슘, 칼륨, 철분 비율도 높고요. 직접 요리해서 먹어봤는데 맛도 좋았어요. 건조된 분말 형태라서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죠.”
-한국에서는 그린바나나가루가 낯선 재료인데요.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글루텐프리 가루예요. 밀가루 섭취가 어려운 당뇨병 환자 등 식단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요. 노랗게 익기 전인 그린바나나를 건조해 만드는 건데요. 이렇게 초록색 상태일 때는 당분이 없어요. 바나나는 노랗게 익으면서 안에 있었던 전분이 당화가 돼서 달콤해지거든요.”
-아몬드가루, 쌀가루 등 다른 밀가루 대체식품과 비교했을 때 장점은 뭔가요?
“아몬드가루는 베이킹용으로 많이 사용돼요. 아몬드가루로 빵이나 쿠키를 만들면 식감이 포슬포슬해요. 그린바나나가루로는 조금 더 쫀득하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어요. 바나나가 아몬드보다 지방이 적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쌀가루랑 비교했을 때는 섭취 후에 혈당을 많이 올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린바나나가루는 조리 활용도도 다른 대체 밀가루보다 넓어요. 튀김, 부침류 요리도 할 수 있고 소스나 수프에 넣는 전분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요.”
-그린바나나가루 생산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필리핀 파라셀리 지역의 소농들에게 원료를 수급 받아요. 지역의 바나나협동조합 차량을 이용해서 농부들에게 바나나를 받아오는 직거래 방식이에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2021년 6월부터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78명의 소농과 바나나 직거래를 했어요. 그린바나나가루 생산도 바나나협동조합에서 해요. 코너스톤티엔엠이 생산 시스템 구축과 교육을 담당하고 시설 운영은 협동조합이 하는 거예요. 채용도 협동조합에서 진행하고요. 협동조합 구성원이 생산 직원이 되는 구조인 거죠. 이렇게 협동조합에서 창출된 일자리가 20개 정도 돼요. 원래 작년까지만 해도 1차 가공은 필리핀에서 하고 가공된 원료를 한국으로 가지고 와서 2차 가공을 했는데요. 올해는 파라셀리 지역에 시설을 다 지어서 2차 가공까지 마무리한 완제품을 필리핀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됐어요. 8500kg의 그린바나나로 그린바나나가루를 1t 정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테스트 중이에요.”
-한국에서 필리핀의 문제를, 필리핀에서는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네요.
“그렇죠. 한국 소비자가 바나나아일랜드의 제품을 좋아해 주면 필리핀의 소득 문제를 풀 수 있고, 필리핀 소농들의 능력과 자원으로는 한국의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제조업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탄소발자국을 많이 만들게 돼요. 이런 환경적인 책임도 다할 수 있는 가치사슬을 만드는 게 다음 목표예요. 작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CTS(혁신 기술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개발도상국 친환경 식품 제조 솔루션 개발 프로젝트도 마무리했어요.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바나나 껍질 등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는 툴을 만들었어요. 이걸 활용해서 제품 생산 과정에서 최대한 탄소발자국이 적게 나오도록 시스템을 보완해 나갈 계획이에요.”
이원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