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예술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습니다”

“282북스의 ‘282’는 나뭇잎을 가리키는 ‘이파리’에서 따왔어요. 저는 사람들이 숲에서 많은 치유와 쉼을 얻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숲을 이루기 위해선 나뭇잎 하나하나가 모여야 하잖아요. 282북스가 나무의 큰 줄기를 세워두면, 사람들이 가진 이야기는 나뭇잎이 돼요. 282북스의 역할은 숲을 조성하고 공간을 제공해주면서 사람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거죠.”

282북스는 조금 특별한 출판사다. 단순히 글을 모아 책을 내는 게 아니라, 예술활동을 통해 사회에서 목소리가 작은 소수자를 사회 안으로 끄집어내고, 이 내용을 책에 담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 선유동 소셜캠퍼스온 영등포점에서 만난 강미선 대표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출판에 참여한 사람들이 치유를 경험하길 바란다”고 했다.

강미선 282북스 대표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치유활동을 통해 발견하고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한다. /282북스 제공

출판으로 사람들의 마음 치유한다

282북스는 출판사이지만 출판만 하지는 않는다. 치유 활동 당사자와 함께 연기·그림 등 치유 활동을 진행하고 나서야 이 내용을 담은 책이 출판된다. 출판은 활동의 결과 보고서가 되는 셈이다. 한 프로젝트에 쏟는 시간만 평균 6개월. 강 대표가 가장 주목하는 주제는 ‘혐오와 차별’이다. 그는 “예술 활동을 통해 당사자의 마음을 녹여내고, 이를 드러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게 목표”라고 했다.

대표 프로젝트로는 지난해 서울시 후원으로 진행한 ‘도시의 문장들; 귀천’ 등 프로젝트가 있다. 도시의문장들은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내용을 알리기 위해 감정노동자가 직접 참여하는 낭독 공연을 진행했다. 직업 특성상 스트레스가 많은 감정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강 대표는 “자신의 속마음을 담은 연극을 통해 많은 감정노동자가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졌다’고 반응하는 걸 보며 이야기가 가진 치유의 힘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강 대표는 “올해는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청년 사회 혁신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플레이더월드’, 암 경험자 자존감 회복을 위한 ‘암 어
모델’ 등 참여자의 폭이 넓어졌다.

“청년 세대, 암 경험자 비교적 덜 주목받은 사람들을 새롭게 조명해 긍정적 이미지를 드러내려고 해요. 암 경험자를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환자 같은 모습이 아니라 질병을 이겨낸 긍정적이고 활기찬 이미지로 보여주면서, 투병 생활과 암 경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으로 주눅이든 당사자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거죠.”

참가자들이 치유 경험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과정도 섬세하게 구상했다. 음악·연극 등 치유 활동 분야가 정해질 때마다 해당 분야 전문가, 치유 전문가를 참여시킨다. 참가자 개인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포함해서 한 프로젝트 참여 인원은 최대 15명으로 제한한다. 강 대표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환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돼서 스스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스스로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면 더 깊은 치유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 이파리 맺히는 나무 꿈꾼다

강 대표는 스스로를 “글쓰기가 주는 치유의 힘으로 살아난 사람”이라고 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절, 독서와 글쓰기로 마음을 다잡았기 때문이다. “너무 지쳐서 아무 것도 할 힘이 없었어요. 글조차도 ‘어떤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게 아니라 ‘아무 거나 쓰자, 읽자’ 하는 식으로 했죠. 돈도 없고, 뭐든지 시작할 용기도 없었을 때였는데 아무것도 붙잡지 않으면 더 무너질 것 같아서요. 닥치는 대로 읽고 쓰는 일을 거듭하니 어느 순간부터 치유되는 걸 느꼈습니다.” 강 대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내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면 어느새 새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며 “더 많은 사람과 이 경험을 나누기 위해 1인 출판사 282북스를 설립했다”고 했다.

강 대표는 “가장 걱정되는 것은 참가자들을 향한 대중의 편견어린 시선”이라고 했다. 참여자 대부분이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라, 프로젝트로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냈을 때 차별적인 시선을 느끼며 다시 움츠러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시 대중의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상처받는 걸 볼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면서 “이런 시선에 함께 맞서는 것까지가 282북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82북스는 이번 예비사회적기업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가능하면 사회적기업 인증까지 받아 더욱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치유를 위한 활동을 할 계획이다. 아직 판매량이 크진 않지만, 사업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펀딩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사람들이 치유 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걸 느낍니다.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치유 과정을 응원하려는 사람들도 많죠.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도 많아요.”

강 대표는 당분간 282북스의 활동을 알리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펀딩과 일반 출판, 영상 콘텐츠 배포 등 다양한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단순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활동에 참여해 직접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예요. 이런 이야기들이 주목받으면, 다른 이유로 세상의 차별에 몸을 웅크리는 사람들도 용기가 나지 않을까요? 더 많은 이야기의 잎들이 열리는 공간으로 성장하는게 저희 목표입니다.”

 

송채원 청년기자(청세담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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