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화장실에서도 차별받는 장애인…서울교통공사 3호선, 장애인화장실 35%가 남녀공용

“화장실에 사람 있어요! 들어오시면 안 돼요!”

뇌병변1급 장애인인 김영진씨(34·가명)는 한성대입구역(서울시 지하철 4호선) 장애인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중에 다급하게 소리를 외쳤다. 잠금 버튼이 고장나, 다른 장애인이 들어올 뻔했기 때문.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장애인 화장실이 남녀공용이었다는 사실에서다. 자칫하다 여성 장애인이 들어올 수 있어 크게 놀랐다고 한다.

◇서울시 지하철(1~4호선) 장애인 화장실 10곳 중 2곳이 남녀 공용

장애인들이 지하철 내 장애인 화장실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다. 기자는 지난 4월, 서울교통공사에 ‘장애인 편의시설 전수조사 용역 결과’ 자료를 정보공개청구했다. 지난 2015년 서울시 지하철 1호선부터 4호선까지 120개역을 전수조사한 결과였다. 기자가 요청한 정보공개청구 내용은 6개 항목(접근성, 안내도, 안내사인, 화장실, 엘리베이터, 리프트)에 대한 조사 내용과 2017년 현재 개선 사항, 장애인 화장실 내부 물품 구비(양변기 등받이, 세면대 비누 위치 등) 등이었다.

서울교통공사측은 “보안 사항이 있어 전체 공개는 어렵다”며 일부 내용을 제공해줬다. 내·외부 엘리베이터설치, 게이트 설치, 전동차 출입문 간격, 장애인 화장실 남·녀 구분 설치 등 총 5가지 항목이었다.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장애인 남녀공용 화장실. ⓒ김응태 청년기자

서울교통공사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120개 역사(서울 지하철 1~4호선) 중 28개 역은 남녀 구분이 없다. 10곳 중 2곳의 장애인 화장실이 남녀 공용인 셈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은 34개 역 중 12곳(35%)의 장애인화장실이 공용이었으며, 연신내와 청량리역에는 아예 장애인화장실이 따로 설치돼있지 않았다.

<표> 장애인 화장실 개선이 필요한 서울시 지하철 현황(1~4호선) *자료제공 : 서울교통공사

◇장애인 화장실 자동잠금장치, 무엇이 문제인가.

애초에 장애인 화장실만 공용으로 설계된 것 자체가 차별이지만, 장애인이 유독 공용화장실에 불편을 느끼는 이유는 잠금장치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장애인 화장실은 자동잠금장치 버튼을 눌러야만 문을 여닫을 수 있다. ‘열림’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리고, 안에서는 ‘닫힘’ 버튼을 눌러야만 문이 잠기는 형태다. 그렇기에 ‘닫힘’ 버튼이 고장이 나 제대로 잠기지 않을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문이 고장 났을 때에는 완전히 문이 잠겼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장애인이 안심하고 장애인 화장실을 사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공용화장실일 경우 문제가 더 커진다. 남녀가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다보니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거나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지체장애 2급 김영준씨(가명·56)는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화장실의 경우에는 비교적 안심이 되지만 공용화장실은 사용하기 힘들다”면서 “아직 개선되지 않은 역사와 다른 공공장소 화장실이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휠체어 장애인들, 지하철 내에서 화장실 찾기도 힘들다

장애인들이 화장실 사용과 관련해 겪는 불편은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화장실의 시설과 구비된비품도 장애인이 사용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것이 ‘화장실 안내사인’이다. 장애인들은 “지하철 내에서 화장실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화장실 위치를 알리는 안내사인은 대개 비장애인의 시선에 맞춰 설치돼있다. 휠체어 장애인의 경우 비장애인의 허리 높이에서 안내사인을 찾아야 한다. 목을 45도 이상 젖혀 위에 설치된 안내사인을 봐야하는 셈이다. 지체장애인 1급 박 진영씨(가명·52)는 “휠체어 장애인의 시야에 맞는 화장실 안내사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하철 4호선 미아역 복도. 높이 달린 화장실 안내 사인을 휠체어 장애인이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김응태 청년기자

화장실 내 세면대와 세정제도 문제다. 종로5가역(지하철 1호선)의 경우 장애인 화장실은 별도로 설치돼있지만, 세면대는 비장애인과 함께 사용해야한다. 휠체어 장애인이 공동 개수대에서 손을 씻기엔 공간도 비좁고, 수도꼭지도 돌리기 어렵다.  

◇서울교통공사, 장애인 편의시설 개선 사업 착수…장애인 공용화장실 개선은 진척 없어

서울교통공사(1~4호선)는 지난 2016년부터 ‘지하철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 및 개선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직선승강장 출입문 간격을 해소할 고무발판 설치, 화장실 휴지걸이 높이 조정, 외부 엘리베이터 경사로 개선 등 20여 건의 사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장애인 공용화장실 개선 사업은 2018년 이후부터 착수되는 중장기 사업에 포함돼 현재 개선에 진척이 없다. 서울교통공사가 제공한 ‘장애인 편의시설 전수조사 용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동대문역(지하철 1, 4호선), 경복궁역(지하철 3호선) 등 4곳, 올해 교대역(지하철 2, 3호선), 이대역(지하철 2호선) 등 6곳을 포함한 총 10곳에서 공용화장실 개선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준공 시점은 뚜렷하지 않다.

허효숙 강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서울시센터지원사원팀 팀장은 “공공시설의 장애인 공용화장실 개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다”면서 “지금의 시스템은 오히려 장애인이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혜전인 존재로 간주하게 돼, 자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응태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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