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8일(월)
‘삶을 일으키는 외침’… 홈리스 자활 돕는 ‘빅이슈’ 판매 동행 체험기

서울 지하철역 입구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잡지를 판매하는 사람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명 ‘빅판’으로 불리는 이들은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를 판매한다. 잡지 한 권을 팔면 판매가 7000원의 절반인 3500원을 판매원이 가져가는 구조다. 지난달 23일과 27일,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빅이슈 판매 현장에 동행했다.

더나은미래 청년기자들이 지난달 23일 서울지하철 고속터미널역 8번 출구 앞에서 빅이슈 판매원의 하루를 체험했다. (왼쪽부터)김형철 빅이슈 코디네이터, 유민선·최지영 청년기자, 오현석 빅이슈 판매원.
더나은미래 청년기자들이 지난달 23일 서울지하철 고속터미널역 8번 출구 앞에서 빅이슈 판매원의 하루를 체험했다. (왼쪽부터)김형철 빅이슈 코디네이터, 유민선·최지영 청년기자, 오현석 빅이슈 판매원.

“동정심 유발은 안돼… 잡지 내용 강조해야”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빅판 오현석(52)씨는 매일 서울지하철 고속터미널역 8번 출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특히 유동인구가 많다. 오씨의 판매 영업은 오후 4시에 시작된다. 지난달 23일 만난 오현석 판매원은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판매 준비를 시작했다. 빅이슈 홍보 문구가 쓰인 판넬을 준비하고, 잡지를 눈에 띄게 진열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도 빨간 모자와 빨간 조끼를 받고 판매 준비를 도왔다. 평소에는 8번 출구 앞 길거리에서 매대를 세우지만, 이날은 비가 와서 계단 벽면에 나란히 서서 판매를 하기로 했다.

“홈리스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입니다. 와서 구경하고 가세요.”

행인들을 향해 말을 던져도 대답은 없었다.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시선 한번 주지 않거나, 보더라도 한번 그냥 지나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매뉴얼은 없다. 이 때문에 빅판들은 현장에서 쌓은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만들어 간다. 오현석씨는 “밝은 표정으로 날씨 얘기를 하거나 먼저 안부를 묻는 방식을 많이 쓴다”라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대신 잡지의 내용이 얼마나 풍부하고 흥미로운지에 대해 홍보하면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준다”고 말했다.

오현석 빅이슈 판매원이 지난달 23일 서울지하철 고속터미널역 8번 출구 앞에서 첫 손님을 만나 카드 단말기로 결제하고 있다.
오현석 빅이슈 판매원이 지난달 23일 서울지하철 고속터미널역 8번 출구 앞에서 첫 손님을 만나 카드 단말기로 결제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손님이 나타났다. 한 50대 여성이 다가와 신간 한 권 달라며 카드를 건넸다. 이어 자연스레 판매원의 안부를 물었다. 오씨는 “지날 때마다 잡지를 사가는 단골 구매자”라고 설명했다.

빅이슈 구매자들의 연령을 다양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20대도 있었고, 40·50대 중년도 많았다. 그렇게 2시간 동안 총 7권을 팔았다.

오현석씨는 평소 일하는 동안 따로 쉬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이날도 장시간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판매를 위한 구호를 외쳤다. 그렇게 매일 오후 9시까지 잡지를 판다. 오씨는 “비가 올 땐 무릎이 조금 아프지만 이정도는 견딜 수 있다”라며 “자립의 기회를 소중하게 여기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라며 웃었다.

“단골 구매자들 보면서 힘냅니다”

서울지하철 종각역 5번 출구는 빅판 김훈재(64)가 맡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도 청년기자들이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빅판의 하루를 동행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구매를 독려하는 말을 외쳐볼까 했는데, 김씨가 말렸다. 그는 “역 안에선 주변 상인의 업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구호를 외치면 안된다”라며 “손님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훈재(맨 왼쪽) 빅이슈 판매원이 지난달 27일 서울지하철 종각역 5번 출구 앞에서 최다희(가운데), 이슬이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와 잡지 빅이슈 판매 활동을 함께 했다.
김훈재(맨 왼쪽) 빅이슈 판매원이 지난달 27일 서울지하철 종각역 5번 출구 앞에서 최다희(가운데), 이슬이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와 잡지 빅이슈 판매 활동을 함께 했다.

김씨는 적극적인 홍보로 판매고를 올리지 않는다. 잡지의 표지 모델이 누구인지, 또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에 따라 판매량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표지 모델로는 엑소 카이가 제일 반응이 좋았고, 운동 좋아하는 김민경 개그우먼 표지 잡지도 찾는 사람이 많았어요. 가끔 역주행한 연예인이 표지에 실렸던 옛날 잡지 구해달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빅이슈 표지 모델에 등장한 인기 연예인들을 막힘없이 읊는 1969년생 김훈재씨는 올해 6년차 빅판이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신입 빅판을 찾아가 마음을 바로 잡아주는 ‘교육 빅판’ 역할까지 도맡는다.

그는 1990년대 한 기업의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가 터졌고, 회사는 급여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자신이 일을 그만두면 다른 사람에게 봉급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나왔다”라며 “회사 내에서 인정받았던 기술로 다른 회사에 쉽게 취직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가진 돈이 다 떨어지자 길에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홈리스 생활의 시작이었다.

빅이슈를 만난 건 홈리스 자활을 지원했던 한 비영리 민간단체를 통해서다. 그들은 자활 의지가 있어 보이는 김훈재씨를 빅이슈와 연결해줬다. 처음에는 종각역이 아닌 을지로입구역에서 빅판을 시작했다. 당시에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잡지를 팔려니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판매가 잘 되지 않아 그만 둘 생각으로 며칠 동안 집에만 있었다. 그럴 때 마다 동료 빅판이 고시원에 찾아와 포기하지 말고 좀 더 해보자며 교통카드 살 돈과 손님에게 줄 거스름돈을 쥐어줬다. 그렇게 서서히 세상과 다시 연결됐다.

자신이 종각역 인근을 꽉 잡고 있다며 호탕하게 웃는 김훈재 판매원는 알고 지내는 단골 구매자도 많았다. 굳이 종각역까지 와서 잡지를 사가는 사람부터 ‘서서 일하는 게 힘들지 않냐’며 의자를 선물해준 손님, 이사 가서 앞으로는 잡지 사러 못 온다며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었다.

지난해에 발행된 ‘빅이슈 259호’에는 김훈재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 기사에서 그가 대구에 살면서 과일을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과일을 좋아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걸 읽은 독자가 종종 과일을 챙겨준다고 했다. 이날도 그는 잠시 휴식을 하러 출구에 나갔다가 그 독자를 만나 볶음 땅콩을 건네받았다. 김씨는 “빅이슈를 통해 만들어진 독자들과의 인연이 소중하다”라며 “시민과 마음을 나누는 빅이슈 판매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약속했던 두 시간이 지났지만 잡지는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한 시간을 더 머물렀지만 구매자는 없었다. 그런데도 김씨는 “매일 출근할 때 마다 오늘 못 팔면 내일 팔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몇 시간 동안 서 있는데 한 권도 안 팔리면 힘들죠. 근데 그런 걸로 스트레스 받으면 이 일을 계속하기 어려워요. 책이 잘 팔리는 날도 있고 오늘처럼 비가 많이 와서 안 팔리는 날도 있지만 어쨌든 다 팔릴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리고 항상 저를 찾아주시는 독자 분들이 있으니까요.”

빅이슈의 슬로건은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뀐다’이다. 빅판과 함께한 하루동안 ‘세상이 과연 바뀔까’라는 생각으로 시민들과 만났다. 시민들의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꾸진 못해도 빨간 조끼를 입은 빅판의 삶은 바꿀 수 있다.

유민선·이슬이·최다희·최지영 청년기자(청세담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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