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동물에게 선택권을 주는 동물원 만들자”…국내 최초 ‘AZA 인증’ 도전한 서울대공원 동물원

서울대공원 동물원 내 랫서팬더 사육장. 랫서팬더의 습성을 반영한 다리가 놓여있다. ⓒ정해주 청년기자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랫서팬더가 한 손을 번쩍 들고 사육사를 바라본다. 사육사가 ‘하이파이브’하듯 손을 마주 댄다. 랫서팬더가 손을 거두고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사육사가 따라오지 않자 서운한지 흘끔흘끔 쳐다 본다. 눈치 빠른 사육사가 랫서팬더에게 다시 다가간다. 이렇게 반복하기를 몇번. 랫서팬더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이파이브를 하고 자리를 떠난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는 동물이 ‘왕’이다. 좁은 공간에서 사육사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은 찾아볼 수 없다. 랫서팬더가 그랬듯, 움직이고 싶을 때 자유롭게 움직이고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혼자 쉬기도 한다. 동물들은 모든 행동을 스스로 선택한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고 혼내지도 않는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국내 동물원 최초로 AZA(association of zoo and aquarium) 인증에 도전하고 있다. AZA 인증은 동물원 분야의 국제적 인증제도다. 동물복지, 보전과 과학연구, 생태교육, 안전훈련, 재정상태 등 동물원 운영체계 전반을 평가해 기준에 부합할 경우 인증을 해준다. 인증 효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5년마다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 6월 10일부터 14일까지 5일간 조사단이 서울대공원을 방문해 적합성 여부를 점검했고, 오는 9월 결과가 나온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호랑이사. ⓒ정해주 청년기자

“진정한 동물복지는 본능에 따라 살게 하는 것”

지난 6월 28일 서울대공원 동물원을 찾았다. 호랑이 사육장이 눈에 띄었다. 나무와 풀이 무성한 공간이 옆으로 쭉 이어지면서 꽤 넓게 펼쳐졌다. 호랑이는 개울 앞을 왔다갔다하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서울대공원 김보숙 동물기획과 과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공간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달라진 건 6년 전 사건 때문이다. 2013년 11월, 서울대공원의 시베리아 호랑이가 사육사를 물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안전장치 부실이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좁은 공간에 갇힌 호랑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사육사를 공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동물원 폐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서울대공원은 ‘사람을 위한 동물원’이 아닌 ‘동물을 위한 동물원’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동물원 운영 체계를 바꿔나갔다.

먼저 동물이 생활하는 ‘환경’을 바꿨다. AZA 인증에도 서식지 조성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김 과장은 “동물들이 본능에 따라 생활할 수 있도록 자연 상태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에 주력했다”면서 “해외 동물원 기준을 조사해 사육장을 바꿨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의 코끼리들은 최소 기준을 훌쩍 넘는 5000㎡의 공간에 살고 있다. 수영을 좋아하는 치타와 하이에나에게는 수영장을 마련해줬다. 김 과장은 “공간적 제약 때문에 사육장 크기를 무조건 늘릴 수는 없다”면서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동물복지를 모두 제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반달가슴곰 등 멸종위기종 보전 연구에도 힘써

멸종위기종을 보전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것도 AZA 인증의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다. AZA 인증이 동물원 내의 동물뿐 아니라 모든 동물의 복지 향상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 역시 종 보전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1999년 야생동물보전센터를 건립했고, 2000년 환경부로부터 야생동물 서식지외보전기관 1호로 지정됐다. 대표적인 게 반달가슴곰이다.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에 대한 종 보전 연구를 통해 18마리를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이 밖에도 늑대, 여우, 수달, 황새, 독수리, 금개구리 등에 대한 종 보전을 진행 중이다.

서울대공원은 현재 ‘서식지 외 보전’과 ‘서식지 내 보전’이라는 투 트랙으로 멸종위기종을 보전하고 있다. 김 과장은 “동물 중에는 환경 파괴로 인해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없는 종들이 많다”면서 “호랑이 같은 맹수류만 해도 방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맹수가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환경 보호와 동물보전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면서 “둘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보호도 보전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동물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난 뒤에 수습하는 사후 대책만 있었다”면서 “이제는 사후 대책이 아니라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AZA 인증 도전은 사전 준비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동물복지를 개선해 동물과 인간을 모두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서울대공원 동물원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존재하지만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동물복지를 이뤄나갈 예정”이라며 “사람이 조금 불편해도 동물이 행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동물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정해주 청년기자(청세담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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