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고래, 고립청년 그룹홈 20년 만에 운영 중단… 왜?

제한적 사업비…“더는 못 버틴다”
서울시 단기 사업 구조에 회복 중 청년들 ‘재은둔’ 악순환

서울 시내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한 공동생활 공간, 일명 ‘그룹홈’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달 19일 더나은미래가 보도한 ‘서울시-SH의 그룹홈 사업 종료 논란’에 이어, 또 하나의 고립·은둔 청년 그룹홈이 운영 중단을 선언했다. 20년 넘게 그룹홈을 운영해온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도 ‘주거 공간 확보’와 ‘인건비 마련’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올해부터 공동생활 공간 운영을 잠정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센터를 이끄는 김옥란 센터장은 “현재의 그룹홈 시스템은 청년들의 회복보다 재은둔을 부추길 수 있는 구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서울시 지원 받아도, 공간은 자부담…결국 여자 숙소 철거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는 2022년부터 서울시의 예산을 일부 지원받아 남녀 그룹홈을 운영했다. 하지만 공간 자체는 센터 측이 별도로 확보해야 했고, 초기 입주에 필요한 보증금과 가전, 가구 비용도 자부담이었다.

20년간 그룹홈을 운영해온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도 ‘주거 공간 확보’와 ‘인건비 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올해부터 잠정적으로 그룹홈 운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센터가 운영했던 공동생활 공간.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김 센터장은 “서울시는 남녀 그룹홈을 별도로 운영하길 원했지만, 두 개의 공간을 동시에 꾸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며 “결국 2023년에는 여자 숙소를 철거해야 했고, 올해는 아예 전체 운영을 중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룹홈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다. 오랜 은둔 생활로 생활 리듬이 무너진 청년들에게 일상을 회복하고 사회성과 감정을 회복하는 훈련의 공간이다. 센터는 아침 기상부터 식사, 청소, 운동, 취미 활동 등 하루의 루틴을 함께 만들어가며 공동체 훈련을 돕는다.

◇ 공동생활 거쳐간 100여 명 중 약 80%가 일상 회복   

이곳에서는 공동 요리와 식사, 주 1회 팀 경기 활동을 하는 야구단,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상영회, 그림 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은둔 청년들이 타인과 처음으로 눈을 맞추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해보는 ‘작은 시작’이었다.

공동생활을 경험한 청년들의 변화도 뚜렷했다. 100여 명의 입소자 중 약 80%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거나 타인과 교류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를 보였다.

20년간 그룹홈을 운영해온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가 ‘주거 공간 확보’와 ‘인건비 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올해부터 잠정적으로 그룹홈 운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공동생활 중 청년들이 함께 요리하는 모습.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2021년 입소한 A씨는 센터 퇴소 후 한 건축회사에 취업해 발달장애인 활동 지원가로 일하고 있고, 2020~2021년 입소했던 B씨는 공동생활 코치로 활동했다. 그는 최근 IBK기업은행과 함께 진행하는 ‘나눔도시락’ 사업의 실무를 총괄하며 또 다른 청년들을 돕고 있다.

김 센터장은 “고립·은둔 청년들은 단순한 주거 제공만으로 회복되기 어렵다”며 “규칙적인 생활과 감정 훈련, 관계 회복 과정이 필수인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정책 구조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 길어야 9개월… 단기 사업이 ‘재고립’ 부추겨

센터가 그룹홈 운영을 중단한 또 다른 이유는 서울시의 단기 용역 사업 구조다. 매년 용역 입찰을 통해 사업을 따내야 하고, 입소자 모집부터 퇴소까지 9개월도 채 안 되는 시간이 주어진다.

김 센터장은 “통상 4월에 사업이 시작돼 12월에 종료되는데, 지난해에는 서울청년기지개센터가 생기며 시작 자체가 8월로 밀렸다”며 “고작 6개월 후 청년들을 다시 퇴소시켜야 했고, 일부는 고시원 등으로 돌아가 다시 은둔 생활을 시작했”고 말했다. 그는 “정서적 회복이 필요한 고립·은둔 청년에게는 최소 1~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짧은 사업 기간은 청년을 회복시키기보단 오히려 재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꼬집었다.

청년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서는 일상 관리 뿐 아니라 정서적 지지, 정신 건강 회복 지원이 필수적이다. 특히 자·타해 위험이 있는 청년은 24시간 밀착 케어가 요구된다.

하지만 서울시 사업 구조상 인건비 비중이 예산의 50%를 넘을 수 없고, 대부분은 프로그램 운영비로 쓰이도록 제한돼 있다. 결국 전문가를 상주시킬 여력이 없는 셈이다.

김 센터장은 “정부는 민간에 책임을 맡기고 있지만, 이 정도 인력과 프로그램을 감당할 수 있는 비영리 기관은 거의 없다”며 “SH나 LH를 통한 공간 제공이라도 연계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언제나 ‘어렵다’는 답뿐이었다”고 토로했다.

고립·은둔 청년의 사회 복귀와 자립을 지원하는 서울시 산하 ‘서울청년기지개센터’는 “고립·은둔 청년은 아직 사회복지사업법상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별도의 시설을 설립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현재로서는 사업 형태로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기 용역 사업의 한계와 인건비 부족 등 구조적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며 “그룹홈 운영 사례를 통해 공동생활의 필요성과 정책적 과제를 파악하고 있는 만큼, 향후 관련 법과 제도가 마련되면 보다 안정적인 주거 모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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