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 청년 위한 그룹홈, 4월 사라지나
SH, 사업 종료…서울시 “검토 중”
서울 한복판, 지난 11일 기자가 찾은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안무서운회사’의 그룹홈. 나지막한 담장을 지나 현관문을 열면, 작은 거실과 주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실 한쪽에는 입주자들이 직접 꾸민 소품들이 놓여 있다. 디퓨저와 꽃, 귀여운 인형들이 어우러진 공간은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벽에 붙은 한 장의 안내문이 이곳의 특별함을 말해준다.
“심한 자해 사고 발생 시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
이곳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다. 사회와 단절된 고립·은둔 청년들이 다시 삶을 회복하고 자립을 꿈꾸는 곳이다.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무너진 일상을 되찾아가는 과정. 하지만 이들의 유일한 안식처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지원 종료로 4월이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셰어하우스는 서울시와 SH가 추진한 ‘터무늬있는 희망아지트’ 사업의 일환으로 2021년부터 운영돼 왔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이 보증금을 지원해 입주자들이 월 20만 원대의 저렴한 임대료로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공과금과 식비, 프로그램을 포함해도 한 달 5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구조다. 그러나 SH는 당초 약속한 4년 계약 만료일인 4월 26일 이후 계약을 연장할 계획이 없다. 고립·은둔 청년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 ‘방콕’에서 취직·모임 참석까지…그룹홈 통해 90% 호전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셰어하우스는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다.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는 “그룹홈은 재고립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솔루션”이라고 강조한다.
“방문 상담을 받거나 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외출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 고립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함께 생활하며 갈등을 조정하는 경험을 하고, 무너진 일상 루틴을 회복할 수 있도록 밀도 있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개별 입주자의 특성에 맞춘 맞춤형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초기에는 아침 모임과 공동 식사 등 생활 패턴을 잡아주는 루틴이 필수였지만, 점차 입주자들의 회복 속도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된다.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교육부터 연극 워크숍, 스탠드업 코미디 같은 활동도 한다. 사람들과의 교류에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들에게, 무대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하는 경험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중요한 과정이 된다.
이곳을 거쳐 간 20여 명 중 90%가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회로 한 발짝 나아간 이들도 있다.
거주자 문정배(35) 씨는 고3 이후 13년간 은둔 생활을 했다. “부모와의 갈등으로 집에 틀어박혔고, 밥도 방문 앞에 놓인 도시락만 먹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2023년 그룹홈에 입주한 후 모의 대화 연습과 직업 교육을 받으며 조금씩 변화했다. 현재는 도시락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각종 모임에도 참석하고 있다. 그는 “혼자 있을 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냈지만, 공동생활을 하면서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거주자인 신현재(30) 씨는 가족 해체와 반려동물의 죽음 이후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길을 나설 때조차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로 자신을 감췄다. 그러나 지난해 안무서운회사 유튜브 영상을 보고 용기를 내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현재는 셰어하우스에 거주하며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유승규 대표는 만약 그룹홈이 사라진다면 현재 거주자들은 다시 재고립될 위험에 처할 것이며, 24명에 달하는 대기자들의 기회도 사라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처음에 셰어하우스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받았어요. 이 집에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안정감을 느끼며 살았는데,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재고립하게 될 것 같아 걱정돼요.” 문 씨는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셰어하우스가 사라지면 돌아갈 곳이 없어 막막하다”라고 호소했다. 신 씨 또한, “지금 셰어하우스가 제 삶을 지지하는 큰 기둥인데, 없어지면 크게 무너질 것 같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사업 연장’ 요청에 서울시는 ‘검토 중’ 답변만
유 대표는 서울시에 SH와의 계약 연장을 거듭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늘 ‘검토 중’뿐이었다. 그는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공간을 유지하려면 임대료와 가전·가구 같은 기본적인 시설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민간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부담”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SH는 사업 종료 방침을 고수하고 있으며, 서울시 또한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어 “서울시는 SH와 함께 방치된 빈집 활용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하면서도, 정작 실제 수요가 있는 고립·은둔 청년들의 주거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울시는 지난해에도 ‘빈집 활용 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 22개 아이디어를 선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더나은미래와의 통화에서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셰어하우스 사업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사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SH와 긴밀히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 상황과 대조적으로 보건복지부는 최근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청년미래센터’를 통해 인천, 울산, 충북, 전북 등 4개 지역에서 공동생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유 대표는 “우리가 보건복지부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 종사자 교육을 담당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셰어하우스는 철거 위기에 놓여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역설적인 상황을 토로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