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 아니고 시드볼입니다”…토종 식물과 산을 지키는 방법 [더나미GO] 

더나은미래 기자, 자원봉사자가 되다 <9>
신세계아이앤씨 ‘그린웨이브’ 생태계 복원 봉사 현장

“두쫀쿠 만드는 것처럼 동그랗게 빚어주세요. 대신 조금 작게요. 한입에 들어갈 크기로요.”

기자가 신세계아이앤씨 그린웨이브 프로젝트에 참여한 임직원과 가족이 수락산 자락에서 시드볼을 만들고 있다. /신세계아이앤씨

햇빛이 내리비치는 4월 25일 아침. 서울 노원구 수락산 약수터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손끝에서 갈색 공이 하나씩 빚어졌다. 흙과 씨앗으로 만드는 시드볼이다. 신세계아이앤씨의 생물다양성 프로젝트 그린웨이브(Green Wave) 현장이다. 올해 시작한 그린웨이브는 AI와 드론으로 생태계 교란식물을 찾아 제거하고, 토종 씨앗을 뿌려 생태계를 되살리는 작업이다. 이날 신세계아이앤씨 임직원과 가족 30여 명이 참여했다. 기자도 생태계 복원 작업에 동참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비슷한 식물들이 많죠? 이건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다는 뜻이에요.” 어떤 식물이 좋고 나쁜 거냐고 묻자, 그린웨이브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생태복원 스타트업 인베랩의 신원협 대표가 답했다. “무엇이든 너무 많으면 좋지 않아요.” 주변을 둘러보니 종아리까지 오는 풀이 등산로 양옆으로 빼곡했다. 외래종인 서양등골나물이었다.

외래종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한 종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토착 식물이 자랄 공간을 빼앗고, 산의 식생을 단순하게 만든다. 식생이 단순해지면 곤충이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새와 동물도 함께 사라진다. 결국 산 전체의 활기가 떨어진다. 그래서 그린웨이브 프로젝트는 토착 식물이 다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시작됐다.

◇ 토종 씨앗을 품은 흙 공, 수락산에 생명을 심다

시작은 산에 던질 시드볼 만들기다. 김장할 때 쓸 법한 둥근 방수 매트에 짙은 고동색 배양토와 황토를 부었다. 흰 알갱이가 콕콕 박힌 배양토는 영양분을, 황토는 점성을 더한다. 기자도 장갑을 끼고 합류했다. 물에 섞인 흙의 차가운 기운이 장갑 너머로 전해졌다. “두쫀쿠 같다!” 초등학생 아이의 목소리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쪼그려 앉아 만들다가 건너편 부부가 빠르게 빚는 걸 보고 양반다리로 고쳐 앉았다. 양손에 하나씩 쥐고 속도를 높였다. 10분 만에 매트는 시드볼로 가득 찼다. 일곱, 여덟 명이 손을 모으니 금방이었다. 어림잡아 60개는 돼 보였다.

수락산 일에서 진행된 그린웨이브 프로젝트 현장에서 시드볼에 묻힐 토종 씨앗을 손에 들고 있다. /신세계아이앤씨

다음은 토종 씨앗을 묻히는 단계였다. “안에 넣으면 싹이 잘 틀지 않을 수 있어서 겉에 묻힐 거예요. 토핑처럼 골고루 뿌려주세요.” 김 대표가 설명했다. 시드볼의 성분 덕에 그냥 뿌리는 것보다 생존율이 1.5~2배 높고, 6~8월이면 꽃을 피운다고 했다. 쑥과 돌콩은 익숙했지만 비수리와 벌개미취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디저트 위에 스프링클을 올리듯 시드볼 위에 흩뿌렸다. 바닥에 남은 흙과 씨앗을 모아 자투리 시드볼도 하나 빚었다. 옆 사람과 말 한마디 없었지만, 남김없이 긁어모으는 손길의 호흡이 맞았다.

완성한 시드볼을 바구니에 담아 산길을 올랐다. 20분쯤 걸었다.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기우였다. 헐떡이는 기자와 임직원의 숨소리 사이로 “애벌레가 진짜 많아, 애벌레 산인가?”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함께 시드볼을 만들던 다섯 살 아이도 여덟 살 오빠 손을 잡고 씩씩하게 올랐다.

도착한 곳은 중턱의 너른 자리였다. 네 팀이 위아래 좌우 구역을 나눠 맡았다. 기자 팀의 몫은 아래쪽 오른편이었다. “제가 김광현이 되어보겠습니다.” 호기롭게 외쳤지만 시드볼은 겨우 5미터 남짓 날아갔다. 한 임직원이 던진 공은 방향이 엇나가 나무에 명중했다. “저건 어떡하죠?” “비 오면 씻겨 내려가지 않을까요?” 걱정 섞인 말들이 오갔다. 바구니 아래쪽 시드볼들은 너무 질게 만들었는지 형체가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아이들 손에 쥐어주려고 다시 동그랗게 빚었다. 남은 것까지 싹싹 긁어 마지막 한 개도 손에 들려줬다.

그린웨이브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자가 토종 씨앗을 담은 시드볼을 수락산 자락에 던지고 있다. /신세계아이앤씨

홍지아(12) 양은 “처음엔 손에 흙 묻는 게 싫었는데 하다 보니 찰흙 놀이 같아서 재미있다”며 “내가 숲을 관리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미소 지었다.

가파른 사면과 깊은 숲은 드론의 몫이었다. 드론용 시드볼은 금귤만 한 크기였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 드론이 씨앗을 뿌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햇빛이 정면으로 쏟아져 눈이 부셨다. 볼이 떨어질 때마다 툭, 툭 소리가 났다. 눈을 찌푸린 채 나무 사이 위쪽을 올려다보자, 드론이 웅웅 소리를 내며 숲 위를 가르고 있었다. 조종기를 쥔 신원협 대표 주변에서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드론을 올려다봤다.

드론이 사람이 닿기 어려운 숲 안쪽에 시드볼을 뿌리고 있다. /신세계아이앤씨

숲을 관리한다는 지아 양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임직원들은 9~10월에 온라인에서 식물종의 위치와 규모를 기록하는 ‘객체 라벨링’ 작업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씨앗을 뿌리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숲의 변화를 추적한다. IT 기업의 특성을 살려 복원 과정을 수치로 관리한다. 신세계아이앤씨는 연말까지 생물다양성 지수와 식생지수 변화를 분석할 계획이다.

◇ 함께 살아갈 숲, 또 다른 돌봄의 방식

“숲생태계가 잘 돌아가려면 다양한 동물이 있어야 해요. 곤충이 없으면 숲이 이뤄지지 않아요. 그러면 곤충한테는 뭐가 필요할까요?” 강사로 함께한 정다경 숲 활동가가 물었다. 먹이, 친구 같은 답이 오가던 중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집이요.”

정답은 집이었다. 대나무 통 안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낙엽을 채워 일명 ‘곤충 호텔’을 만들었다. 식물이 자리 잡으면 곤충이 돌아온다. 벌, 무당벌레 같은 곤충들이 머물 공간이다. 아이들은 재료를 찾아 이리저리 뛰었다. 밤송이를 까서 밤을 꺼내오는 아이를 보고, 다른 아이는 솔방울을 주워 담았다. 완성된 곤충 호텔에는 무당벌레와 꿀벌이 그려지고, 가족의 이름도 하나씩 적혔다.

그린웨이브’프로젝트에 참여한 어린이가 곤충 호텔을 둘 자리를 살펴보고 있다. /신세계아이앤씨

곤충 호텔을 둘 위치도 중요했다. 사람 발길이 적고,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 돌무더기가 눈에 띄었다. “저기 어때요?” 누군가 물었다. “사람들이 올 수 있지 않을까요?” “보통 등산로를 잘 안 벗어나긴 하는데, 햇빛이 바로 닿는 게 걸리네요.” 결국 자리는 나무 그루터기 사이로 정해졌다. 호텔을 끼워 넣자, 정 활동가가 입구가 아래를 향하도록 각도를 고쳐 잡았다. 벌레가 드나들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막 자리를 잡은 곤충 호텔 입구로 까만 딱정벌레 한 마리가 들락날락했다. 호텔을 만들 때부터 있던 녀석인지, 새로 찾아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윤채진(8) 군은 쪼그려 앉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딱정벌레 어디 갔어요?”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이며 눈을 떼지 못했다.

내려오는 길에야 올라갈 때의 경사가 실감 났다. 아이들처럼 폴짝폴짝 뛸 수 없어 한 발씩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아래에 도착하니 보자기에 싸인 나무 도시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린웨이브 프로젝트 현장에서 다회용 용기에 담아 제공된 점심 도시락. /신세계아이앤씨

배우자와 함께 봉사에 참여한 한수웅 SM2담당은 “코로나 이후 가족과 함께하는 행사가 많지 않았는데 주말에 아내와 산책하듯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며 “지구가 더워지는 것은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는 만큼 이를 관리하는 일은 다음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활동으로 실천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드볼이라는 개념도 처음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자녀와 함께 온 임직원이 대다수였던 만큼, 이날 활동은 봉사활동인 동시에 생태 교육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린웨이브를 함께 운영하는 환경재단의 박기영 국장도 같은 맥락을 짚었다. 박 국장은 “임직원이 가족과 함께 참여하면 교육처럼 배우고 돌아가 생활 속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특히 어린이가 부모의 행동을 되짚으면서 효과가 더 커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경험이 기업 내부의 ESG·CSR 활동을 확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집으로 향하며 손을 들여다봤다. 손톱 사이사이에 흙이 끼고 손바닥은 황토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불편하기보다 마음이 가벼웠다. 손에 남은 흔적처럼, 수락산에 뿌린 씨앗들도 제자리를 잘 찾아갔으면 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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