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폭염 속 노숙인을 돌보는 사람들… ‘아웃리치 상담원’과의 동행

“용산 김OO 선생님 어제부터 센터에서 보호 중이고 다음 달에 일자리 연계할 거고요. 남대문 박OO 선생님 긴급주거지원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으니 오늘 만나면 전달 부탁합니다.”

지난달 22일 오후 7시 20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의 희망지원센터에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직원 10명이 모였다. 이들은 노숙인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아웃리치(Outreach) 상담원들이다. 아웃리치란, 대상자가 있을 법한 장소에 직접 찾아가는 사회복지 활동이다.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상담원들의 활동 지역은 서울역 광장, 서울역 근처 지하도, 용산역 주변, 숭례문 부근이다. 2인 1조로 나눠 순찰한다.

“선생님, 주무시는데 깨워서 죄송합니다. 오늘 비 예보가 있어서 여기서 이렇게 주무시면 위험해요.”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지하철 환풍구 위에 누워 있는 노숙인에게 말을 걸고 있다. /주태민 청년기자
“선생님, 주무시는데 깨워서 죄송합니다. 오늘 비 예보가 있어서 여기서 이렇게 주무시면 위험해요.”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지하철 환풍구 위에 누워 있는 노숙인에게 말을 걸고 있다. /주태민 청년기자

이날 약 30분의 회의가 끝나자 상담원들은 각자 노란 조끼를 입고 일사불란하게 활동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 센터를 나섰다. 정상록(24) 상담원은 발을 다친 노숙인 오상훈(가명)씨를 떠올리고 구급약품을 챙겼다. “담당하는 지역에 따라 챙기는 물품이 다 달라요. 오늘은 간단한 응급처치가 필요한 노숙인 선생님이 계셔서 의약품을 챙겼어요.” 기자는 정상록·서한빛(23) 상담원과 한 팀을 이뤄 서울역 인근 아웃리치 활동에 동행했다.

“날마다 건강 상태 체크해요”

“약 드실 땐 술 마시면 안 된다니까요, 선생님.” “이거 물이에요, 물.”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역 근처 육교 아래 텐트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술이 든 생수 페트병을 들고 있던 노숙인 최형수(가명)씨는 잔소리가 익숙한 듯 웃어넘겼다. 정 상담원이 추궁하자 최씨는 결국 “계속 참다가 오늘 딱 한 병 마셨다”고 실토했다. “간경화 진단받고 퇴원한 지 얼마 됐다고 또 술이에요.” 정 상담원은 걱정 묻은 잔소리를 이어 나갔다. 최씨에게 안 마시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에야 다른 텐트로 이동했다.

롯데마트 후문에 모여 있는 텐트촌으로 이동했다. 인근 공사부지가 확장돼 텐트를 철거해야 한다는 소식을 텐트마다 전하고, 발을 다친 노숙인 오씨를 찾아 챙겨온 의약품을 건넸다. “선생님, 이건 응급처치일 뿐이니까 더 아프시면 꼭 센터 방문해서 병원 가셔야 해요.”

아웃리치 활동 규모는 2011년 8월 서울역에서의 노숙이 금지되면서 확장됐다. 서울역에 모여 있던 노숙인들이 각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복지 혜택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경우가 급격하게 늘었다. 아웃리치는 순찰 범위를 넓혔다. 상담원들은 노숙인들에게 직접 정보를 제공하고 센터에 와서 상담을 받도록 유도한다. 그 후엔 센터 실무자들이 상담을 통해 대상자의 상황에 맞는 복지 서비스를 연계한다.

상담원들은 대로변, 주택 사이 쭉 뻗은 거리뿐 아니라 텅 빈 공원 벤치, 환풍기 뒤까지 꼼꼼히 살폈다. 노숙인들이 주로 머무는 위치뿐 아니라 어느 병을 앓고 있는지, 무슨 약을 먹는지, 가족관계는 어떤지까지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주머니 가득 들고 간 사탕을 만나는 노숙인마다 쥐여 주면서도 당뇨를 앓는 노숙인에게는 주지 않았다. 체중이 갑작스럽게 줄어든 경우 특별히 체크하기도 했다.

“이런 XX, 니네보다 내가 나를 더 잘 알아!” 아웃리치 상담 시작한 지 30분이 되지 않아, 욕설이 담긴 고함이 들려왔다. 피를 토하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적 있는 노숙인 최수용(가명)씨의 목소리였다. 센터와 연계된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라는 상담원 말에 최씨는 강력히 거부의사를 표현했다. 상담원들은 최씨의 옆에 앉아서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건강상태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한 뒤 ‘수급 유지 여부’ ‘의료급여 종류’ 등을 쉬운 용어로 풀어서 설명했다.

폭염·혹한이 올 때마다 분주해지는 사람들

상담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꼭 센터로 오라”는 말이었다. 상담원과 약속해놓고 1년이 넘게 센터를 방문하지 않는 노숙인도 있다. 서 상담원은 “활동 초기엔 ‘와서 지원받으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왜 오지 않으시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점점 저마다 사정이 있다는 걸 깨닫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익숙해진 어떤 것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누군가 저한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 만지지 말라고 조언해줘도, 저는 그 작은 습관 하나 고치기 어렵거든요.”

오후 9시 30분, 서울역 인근 거리를 다시 한 번 크게 돌았다. 해는 졌지만 습도가 높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정 상담원은 “오늘은 정말 시원한 편”이라며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는 날이면 걱정부터 앞선다”고 말했다.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가장 긴장하는 계절은 여름과 겨울이다. 폭염과 혹한이 다가올수록 거리에서 긴급상황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 상담원은 “아웃리치 활동을 시작하며 일기예보를 더 주의 깊게 보게 됐다”고 했다.

긴급주거지원을 통해 지낼 곳이 제공돼도, 여름이 되면 거리로 나오는 노숙인들이 있다. 고시원이나 쪽방 같은 경우 에어컨이 거의 없고, 있어도 중앙제어라 틀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다. 활동 중인 상담원들에게 먼저 다가온 한용석(가명)씨 역시 같은 이유로 서울역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한씨가 “웬만하면 방에 있어보려 했는데 너무 푹푹 쪄서 나왔다”고 말하자 정 상담원은 “그래도 오늘 밤엔 비 소식 있으니까 꼭 집에 들어가라”고 당부했다.

오후 10시 30분, 마무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다시서기 화이팅!” 소리가 들렸다. 한씨가 도로 건너편에서 두 팔 들고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땀범벅이 된 상담원들이 활짝 웃었다. “한번은 남대문 일대를 돌다가 거리 생활을 정리하고 자활 근로를 시작한 선생님을 뵀어요. 알고 보니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고 매일 나와서 기다렸다고 하시더라고요.” 서 상담원이 말했다. 정 상담원도 “일해서 번 돈으로 음료수를 사서 센터에 들고 오시는 분들도 있다”며 “그런 분들을 만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웃리치는 유급 자원활동이라는 점에서 다른 자원활동과는 차이가 있다. 하루에 5만원 정도의 활동비가 나온다. 다시서기 센터의 문민수 사회복지사는 “활동비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르바이트 찾듯 방문하는 분들도 있다”며 “일이 너무 고되기 때문에 그런 마음가짐으로 오는 분들은 금방 그만둔다”고 말했다.

‘2021 다시서기 사업성과 보고서’에 따르면,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한 해 동안 2만500건의 서비스가 제공됐다. 매월 400건 이상의 상담과 조치가 이뤄졌으며 월평균 173명의 남성 노숙인과 13명의 여성 노숙인이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은 인원을 대상으로 3000건의 응급보호가 진행됐고, 연 134명이 희망지원센터 시설에 입소했다. 하지만 성과에 비해 아웃리치 상담원의 수는 충분하지 못하다. 아웃리치 상담원 양성과정이 없어 자질 있는 상담원 모집과 성장에 어려움이 있다. 문민수 사회복지사는 “무엇보다도 단순히 시혜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진정 자립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태민 청년기자(청세담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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