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18)군의 장래희망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축구선수다. 자신의 재능을 알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과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촉망받던 스트라이커의 미래는 단 한 경기만에 미래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상대 수비수의 거친 태클로 큰 부상을 당한 것. 긴 재활치료 중인 A군을 원하는 프로팀과 대학팀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찌감치 축구를 포기한 친구들은 새로운 길을 찾았고, 고등학교에 와서도 축구를 계속했던 친구들은 지금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평생 축구 외길을 걸어온 A군은 앞으로의 미래가 막막하기만 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어린이가 프로축구선수가 될 확률은 산술적으로 0.78%에 불과하다. 팀에 입단해도 핵심선수로 자리 잡지 못하면 방출 되는 것이 프로의 생리다.
‘TNT FC’는 A씨처럼 피치 못할 사정으로 프로선수가 되지 못하거나 프로세계의 경쟁에서 밀려 재기를 노리는 선수들의 재도약을 돕는 ‘독립축구단’이다. 올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서만 5명의 선수를 프로팀에 진출시켰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축구의 꿈을 접은 청년들에게 안정환, 이운재, 이을용 등 전·현직 국가대표의 멘토링을 붙여 ‘두 번째 기회’를 준 TV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일레븐(2015)’의 현실판인 셈이다.
TNT FC가 처음부터 재기 전문 축구클럽이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창단 때만 하더라도 동호회 성격이 강했다. 변화는 2013년 겨울, 박정훈(현 고양 자이크로)선수가 합류하면서 시작됐다. 박씨는 2011년 드래프트 1순위로 전북현대에 입단했지만, 부상의 불운이 겹치면서 프로팀 잔류에 실패한 상태였다. 재기의 희망을 놓을 수 없었던 그는 TNT FC에서 독한 훈련을 계속했고, 마침내 2014년 부천FC에 입단하며 프로무대 복귀에 성공했다.
박정훈 선수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그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TNT FC를 찾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재기전문구단’을 선언한 TNT FC는 2년 만에 통산 18명의 선수를 프로팀에 입단시켰다.
태국 양통FC에 진출한 호승욱 선수도 그 중 한명이다. 유소년 시절에는 이청용·기성용 등과 함께 청소년 대표팀으로 발탁될 만큼 유망주였지만, 전남 드래곤즈 입단 후에는 부상 때문에 2년 간 단 한경기도 뛰지 못했다. 결국 팀을 떠난 그는 동대문에서 옷을 팔고, 유소년 축구교실에서 코치로 일하는 등 ‘축구선수’와는 먼 길을 걷게 됐다. TNT FC 가입도 취미활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은 재기에 성공한 팀 동료들이었다. 김태륭 TNT FC감독과 스태프가 물심양면으로 그의 훈련을 지원했고, 호씨는 결국 6년의 공백 끝에 프로무대 복귀에 성공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두번째 기회가 주는 삶의 원동력
TNT FC의 눈부신 성과 뒤에는 사비를 털어가며 팀을 운영하는 스태프들의 노고가 있었다. 독립구단이다보니 급여는커녕 고정비도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이지만, 스태프들이 사비를 털어가며 팀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TNT FC가 내세우는 가치에 동감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유니폼과 훈련장비도 후원받고 있다.
특히 스포츠해설가로 활동 중인 김태륭 TNT FC 감독의 역할이 크다. 이적시장이 열리는 연말과 여름이면 직접 프로팀에 선수를 추천하고, 중계석에 앉을 때면 양복 깃에 TNT FC의 후원 배지를 달고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한다. 2001년 그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TNT FC와의 인연을 이어온 탓이다.
“학교 축구팀이 훈련을 하지 않는 일요일에도 축구가 하고 싶어서 동호회를 찾다 TNT FC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이듬해 프로팀에 입단했는데, 어린 나이에도 팀 내 유일한 현역 선수라는 이유로 감독직을 병행하게 됐죠. 그 이후로 쭉 팀을 떠난 적 없어요.”
김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TNT FC와 함께할 선수를 뽑는 것이다. 팀의 정원은 총 30명. 스태프들이 어렵게 만든 ‘두 번째 기회’를 허투루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짜배기’ 건져내는 안목은 더욱 중요하다.
“TNT FC는 목적(프로입단)이 분명한 선수들이 모인 구단입니다. (팀에 들어오려는 선수는 많고)정원은 제한돼있기 때문에 까다로운 선발 과정이 필요하죠. 특히 선수 개인의 절박함이 클수록 자신과 팀에게 보탬이 됩니다. 일주일정도 같이 생활하고 훈련하다보면 이 친구가 얼마나 절박한지 알 수 있어요. 선수로서의 커리어, 현재 몸 상태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하죠.”
지난여름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 ‘상파울리’와 재계약 소식을 알려온 박이영 선수는 TNT FC 선수들 중에서도 집념이 각별했다. 필리핀 2부 리그에서 뛰던 그는 더 큰 무대에 대한 갈증으로 한국에 돌아와 TNT FC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이후 팀 스태프의 도움으로 포르투갈 CS마리티무의 입단 테스트 기회를 얻었지만, 결과는 거절. 박씨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대신 유럽에 남아서 직접 구단을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독일 프로리그팀 입단에 성공했다. 김 감독은 “경력이 변변치 않은 선수가 소속사도 없이 유럽팀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막연하고 어려운 일”이라면서 “박이영이 직접 구단에 보낸 이메일만 수백 통에 달하는 등 본인의 집요함이 좋은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오늘을 사는 청춘들에게 꿈을 이룰 ‘기회’는 너무나 희박한 확률로 찾아온다. 간신히 찾아온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 사회는 ‘낙오자’라는 족쇄를 채워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김태륭 감독과 TNT FC는 다르다. 이들은 청춘에게 ‘두 번째 기회’가 필요함을 말한다. 그것이 실패의 진짜 가치를 알게 하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축구계의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야 한다”면서 “소위 선수로서 ’사망선고’를 받았던 이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는 게 우리의 기쁨이자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TNT FC같은 팀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이 만들고 운영하기는 어렵겠지만 대한축구협회나 프로축구연맹 차원에서는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이미 유럽에는 소속팀이 없는 선수들이 회비를 내고 환경이 갖춰진 곳에서 운동하는 시스템이 협회 주도로 정착돼있어요.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열심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미련을 접으면 되는 겁니다. 선수로서 성공하진 못하더라도 그 힘으로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김성태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