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덕희 하나더하기 대표
“발달장애인에게 운동은 필수예요.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면 그나마 학교에서 했던 체육 활동마저 할 수 없게 되죠. 초중고 학생부터 성인까지, 모든 발달장애인이 건강한 체육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안덕희(51) 대표가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하나더하기’에서는 발달장애인이 마음껏 운동을 배울 수 있다. 2011년부터 발달장애인이 기초 체력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배구, 태권도, 하키 등 종목도 다양하다. 지난 4월에는 시흥도시공사와 발달장애인 배구선수를 육성하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선수 육성에 나섰다.
하나더하기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직업 재활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공동작업장을 2015년부터 운영 중이다. 하나더하기 이름을 건 과자와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수익금은 다시 발달장애인 스포츠 복지 사업에 사용한다. 학생 50명, 성인 70명. 총 120명이 하나더하기의 구성원이다.
지난달 23일 경기 시흥의 ‘동키마켓’에서 안 대표를 만났다. 하나더하기 작업장과 연계된 카페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발달장애인들이 직원으로 일한다. 노란색 그늘막을 지나 매장에 들어서니 밝은 음악과 커피 원두 가는 소리가 가득했다.
발달장애인의 ‘운동할 권리’
-가게가 정말 예쁘다.
“그런가(웃음). 카페형 매장으로 꾸며봤다. 커피뿐 아니라 지역 생산품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하나더하기 공동작업장에서 제작한 먹을거리와 생활용품도 있다. 건빵, 두부과자, 고구마 스틱 같은 먹거리를 대량 구매 후 소분해 판다. 협력업체인 생활공작소가 만드는 락스, 섬유유연제, 물티슈 같은 생활용품은 하나더하기에서 포장을 맡아서 하고 있다.”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다. 하나더하기의 주 사업은 무엇인가?
“하나더하기의 시작이자 주축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스포츠 복지’ 사업이다. 과거 발달장애인 부모님에게 체육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냥 노는 것 아니냐’고 되묻곤 했다. 발달장애인은 나이가 들수록 뇌 기능이 약해지고, 활동량이 줄어든다. 살이 찌면서 기초 체력도 부족해진다. 부모가 곁에 없을 미래에 아이가 자립하려면 기본적인 건강관리에 힘을 쏟아야 한다.”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나.
“배구, 태권도, 하키, 자전거 타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학교 필수 과목인 줄넘기를 추가해달라는 학부모 요청이 있어서 줄넘기 종목도 만들었다. 최근에는 세그웨이 같은 스마트 모빌리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과정도 마련했다.”
-여전히 ‘발달장애인 스포츠 복지’가 생소한 사람이 많다.
“일반적으로 발달장애인 복지라고 하면 주간 보호 시설이나 언어·음악·미술 치료를 떠올린다. 스포츠 복지에 대한 관심이 적은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정책이다. 장애인 복지 정책이 ‘치료’의 개념으로만 한정돼 있다. 신체장애인 정책은 주로 재활 치료, 발달장애인 정책은 언어·미술 치료에 집중한다. 복지의 영역이 치료에서 더 확장돼야 한다. 둘째는 이 치료 프로그램마저도 청소년기까지만 해당한다는 것이다. 과거보다 발달장애인 수명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정책이 그 흐름을 따라오지 못한다. 성인 발달장애인은 치료 중심의 복지에서도 소외된다.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복지, 지속 가능한 복지가 중요하다.”
-자기 결정권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건가.
“아이들이 제때 밥 먹고 다치지 않도록 보살피는 데만 그치지 말고, 산과 들로 데리고 다니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거다. 여러 선택지를 경험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알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체육 활동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또 지속가능해야 한다. 청소년기를 넘어 평생에 걸쳐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더하기가 추구하는 모델이다.”
민우와의 만남, 운명이 바뀐 그날
안 대표는 2004년부터 비장애인 아동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어린이 청소년 체육문화연대’를 운영했다. 그가 사회적기업을 차리기로 마음먹은 건 2011년 발달장애인 민우(가명·당시 17세)와의 만남 이후였다.
-발달장애인 스포츠 복지 사업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11년 전 민우라는 아이가 수영을 배우고 싶다며 엄마와 함께 어린이 청소년 체육문화연대에 찾아왔다. 자폐성 장애가 심한 친구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조금 걱정됐지만 ‘이미 다른 수영장에서도 쫓겨났다’며 ‘여기서 안 받아주면 갈 데가 없다’는 어머니의 애절한 부탁에 등원을 허락했다. 무엇보다 민우가 물을 정말 좋아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얼마 뒤 학부모들에게 항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집에 오면 애가 민우 흉내를 낸다’며 ‘그 친구를 내보내지 않으면 그만두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물속에서 행복해하는 민우를 내칠 수 없었다. 민우를 품자 다른 아이들이 그만두기 시작했다. 대신 발달장애인 부모님들에게 소문이 나 새롭게 반이 구성됐다. 인라인스케이트 등 다른 스포츠 종목 반을 추가로 열었고, 주변 조언에 따라 사회적기업으로 등록했다. 그렇게 경기도 최초로 장애인에게 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하나더하기’가 탄생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면.
“5년째 하나더하기에 다니는 진희(가명)라는 친구가 있다. 희귀병을 앓고 있어서 150kg이 넘는다. 우울증이 있고, 당뇨로 눈도 잘 안 보인다. 처음 왔을 때는 건강이 더 안 좋았다. 지금은 산책하고 운동하는 걸 재밌어하고 매주 수업에도 잘 나온다. 이런 친구들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
-공동작업장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막상 사업에 뛰어들어보니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복지 예산이 넉넉지 않았다. 후원을 받기도 애매했다. 고민 끝에 ‘우리가 직접 벌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자’ 생각했고, 2015년 작업장을 만들었다. 이 수익으로 아이들 밥 한 그릇 먹일 거 두 그릇 먹이고, 유니폼도 맞춰줄 수 있게 됐다. 좋은 일도 돈이 없으면 못 하는 거더라. 사회적기업이 안정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모델과 사회 복지 모델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직업, 맘껏 선택할 수 있기를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시흥국민체육센터로 이동했다. 하나더하기와 발달장애인 배구선수 육성 MOU를 맺은 시흥시가 제공한 장소다. 강당 문을 열자 배구 수업이 한창이었다.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붉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각자 원하는 속도로 걷거나 뛰고 있었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기도 했다. 몸 풀기를 마치고서는 코치의 신호에 맞춰 한 명씩 서브 연습을 했다.
-선수는 총 몇 명인가.
“7명이다. 오늘은 취재를 나온다고 해서 아이들이 평소보다 많이 왔다(웃음).”
-훈련은 얼마나 자주 하나.
“매주 월요일마다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꾸준히 연습해서 올 하반기쯤에는 생활 체육 대회나 전국 동아리 대회에도 출전해보려고 한다. 배구 외에 다른 종목 팀도 구성해 실업팀처럼 활동하고 싶다. 공동작업장에서 얻는 수익으로 아이들 월급을 주는 방식을 구상 중이다.”
-하나더하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발달장애인도 좋아하는 걸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나중에 체육 활동, 직업 재활 훈련, 평생 교육 등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갖춘 복합 시설을 만들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맘껏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바뀌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날이 오길 바란다.”
시흥=양윤선 청년기자(청세담 1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