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우리는 14년째, 11개월 단기 계약직 신분”

박막례(74·가명) 할머니는 3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 자식들에 이어 할아버지마저 떠나간 집, 할머니는 그 집에 홀로 남아 세상과 담을 쌓았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이따금 오는 자식들의 전화도 예전만큼 반갑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를 세상 속으로 다시 이끈 것은 다름아닌 ‘일’이었다. 정부 노인일자리사업에 은빛사랑나누미(독거 노인 도시락 배달)로 참여하며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노인들 도시락 만들고 배달해주며 말동무 하는게 재미있어. 돈도 돈이지만 활동하는게 좋아. 나 어디 아픈 곳 없냐고 묻는 사람도 전담선생님밖에 없어. 가족이나 다름없지”

하지만 박막례 할머니는 지난해 12월 어느날부터 전담선생님을 볼 수 없었다. 복지관에 문의했지만 담당자들은 “개인 사정으로 쉬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이듬해 2월 새로운 전담선생님이 오기 전까지 정서적 돌봄을 받을 수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노인일자리 전담인력은 사업 첫 해인 2004년부터 현재까지 11개월 단기계약직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간으로 진행되는 노인일자리사업과 달리, 이를 관리하는 전담인력은 11개월 계약이라 매년 2개월 가량의 공백이 생기는 것.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안정적인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이유다.

◇최근 10년간 노인일자리 31만개 증가… 반면 전담인력은 1952명 느는데 그쳐

42만 9726개. 정부가 2004년부터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해 창출한 신규 일자리 수다. 노무현 정부에 시작된 노인일자리사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정과제로 선정, 사업추진에 탄력을 받았다. 지난 14년간 노인일자리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총 2조2692억원. 최근 출범한 문재인 정부 역시 노인일자리 확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6월 5일 공개된 정부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추경 682억원을 투입, 3만195개의 공익형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최근 5년간 노인일자리사업 현황 인포그래픽. ⓒ한승아 청년기자

올해로 14년차에 접어든 노인일자리사업. 매년 일자리창출 목표량 대비 실적이 100%를 넘어서는 등 사업은 순항 중이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에도 노인일자리사업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에 비해 아직도 부족한 공급, 일자리의 낮은 임금수준 등 사업초기부터 지적되어온 고질적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인일자리사업을 전담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질적인 측면에서 성장이 지지부진하단 지적이다.

노인일자리사업은 2004년 일자리 3만5000개에서 시작해, 지난해 누적 창출일자리 수 42만 9726개를 돌파했다. 사업규모는 계속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담당하는 전담인력의 증가속도는 한없이 더디다. 2016년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수는 41만 6934명. 하지만 사업 전담인력은 전국을 통틀어2685명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 전담인력 1인당 평균 약 155.28명의 노인참여자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10년간 노인일자리는 31만개 가까이 늘었으나, 동기간 전담인력은 고작 1952명 증가한데 그쳤다.

다양한 노인일자리 현장. ⓒ한국노인인력개발원 홈페이지 

참여노인을 현장에서 직접 관리하는 전담인력의 업무과중은 해가 갈수록 더했다. 보건복지부의 전담인력 1인당 참여노인 배치기준도 지난 3년간 꾸준히 증가해왔다. 복지부가 매해 발간하는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운영안내’에 따르면, 2014·2015년은 참여 노인수 136명당 전담인력 1인을 배치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이 기준은 2016년 전담인력 1인당 노인수 150명으로 늘어났고, 올해 역시 154명으로 전년보다 4명 더 증가했다.

담당자의 업무과중은 현장 애로사항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행기관 전담인력으로 근무중인 A씨는 “노인일자리사업은 참여자가 대다수 독거노인이라, 경제적인 이유보다도 심리적으로도 전담인력에게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유대감을 형성해 노인들이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과 외로움을 해소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업무가 과중하다보면 이런 부분에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11개월 계약직 신분의 전담인력… 사업 전문성·연속성 저하시켜

핵심 문제는 전담인력의 ‘11개월 계약직’ 신분이다. 참여자를 현장에서 실제 대면하는 상근인력이지만, 사업 첫해부터 지금까지 매년 11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고 있다.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인 월 126만원(2016년 기준) 남짓이며, 근로계약이 자동 연장되지 않는다. 1년 근속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퇴직금도 없다. 이러한 고용불안은 전담인력의 잦은 교체를 초래, 사업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낮은 임금 수준도 전담인력의 장기근속을 저해하는 원인 중 하나다. 그간 노인일자리사업 예산은 꾸준히 증대되었으나, 전담인력 임금 상승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5년간 노인일자리사업 예산은 연평균15%씩 증가했지만, 전담인력의 임금은 6%의 상승폭을 보이는데 그쳤다. 사업 전체 집행예산에서 전담인력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적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2016 노인일자리 통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담인력 인건비는 27억원 가량으로 전체 예산(4035억원)의 약 0.7% 수준에 불과했다.

현장에서는 전담인력이 장기근속해야 사업의 효율성 제고가 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3년째 민간수행기관 전담인력으로 근무중인 B씨는 “참여자들의 그날 건강상태에 따라 근로상황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일이 많다”면서 “안전을 위해선 노인참여자 개개인별 지병을 정확히 숙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전담인력이 장기근무해야 파악이 가능한 사항”이라고 했다. 이 이유로 일부 기관은 계약기간이 끝나도 기존에 고용했던 사람을 다시 쓰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서류상에만 11개월 단위로 신규계약을 맺는 것이지,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 것. 하지만, 전담인력의 퇴직금 문제 등 근무여건의 변화는 없다.

◇전문가들 “복지부·기재부·고용부 서로 발맞춰 전담인력 문제 해결해야”

전문가들은 “사업의 질적 개선을 위해 전담 인력 처우 개선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노인 일자리 사업 관계자는 “사업 초기와 달리 지금은 일자리 유형 자체가 다변화된 상태”라면서 “사업 초기에는 6개월 단위 노인 일자리가 다수였기에 전담 인력도 단기 고용 형태였으나, 이후 연중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음에도 전담 인력 문제는 개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작년 국회에서도 전담 인력 문제가 논의됐으나, 아무 결과도 없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관계자는 “현장에서 민원이 엄청나게 들어와서 전담 인력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예산 배정이 안 된다”며 “노인 일자리 사업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유관 부처의 협조가 강력하게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한승아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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