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 공동체 라디오가 담는다

“공동체 라디오는 한 마디로 ‘원래 시민 것이던 전파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전파의 주인은 시민이고 그걸 국가가 방송 사업자들에게 임대해 주는데, 이 과정에서 시민의 작은 목소리가 묻히게 되잖아요. 그래서 주류 방송에서 다루지 못하는 작은 목소리를 전하는 저희 같은 방송이 태어난 겁니다.”

서울 성산동에 자리 잡은 마포 FM은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부에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공동체 라디오’다. 지난 2005년 전국에서 네 번째로 세워졌다. 공동체 라디오는 지역 공동체가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국으로, 인종·계층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송국을 말한다.

마포 FM 역시 홍대 인근 예술가나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기성 언론이 다루지 않는 이주민, 한부모, 비혼 가정 등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달 20일 마포FM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장지웅 마포FM PD는 “공동체 라디오는 ‘라디오’ 자체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방송”이라고 했다.

“지역 사회 소수자를 포함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활동을 하는데 그 플랫폼이 라디오인 거죠. 원래 시민이 가졌어야 할 ‘마이크’를 시민과 지역 공동체에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0일 서울 성산동 마포FM 인근에서 만난 장지웅 PD는 ‘공동체 라디오는 우리 사회에 언제나 있었지만, 목소리 낼 곳이 없던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주는 방송’이라고 했다. /박창현 사진작가

‘성 소수자, 비혼, 한부모…이 사회에 우리도 살고 있다’ 알리는 방송국

공동체 라디오의 장점은 ‘지역에 사는 누구의 목소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류 미디어에서 주로 다루는 기업이나 거대 정치인 소식보다는 ‘지역에 예전부터 지금까지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주로 다룬다. 성소수자, 청소년, 장애인, 지역사회 활동가 등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프로그램이 많다. 대표 프로그램은 레즈비언 프로그램 ‘L 양장점’, 60대 이상 주민을 위한 ‘행복한 하루’, 인디 문화를 소개하는 ‘진저팝의 서울언더그라운드’ 등이다. ‘청소년라디오 제작단 라디오 톡’(청소년), ‘라디오, 너는 괜찮니?’(정신장애인) 등 시민이 직접 제작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지역정보부터 음악이나 교양 프로그램 등 다른 방송국에도 있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하지만 이 안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녹여내려고 노력하고, 이들 목소리를 전면적으로 담아주는 프로그램도 만드는 식으로 우리 지역에 이 사람들이 산다’는 걸 알리려고 노력합니다.”

장 PD는 “사회 소수자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이들을 일방적인 도움이 필요하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묘사하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했다. “저희목표는 ‘세상엔 이런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걸 알리는 ‘다양성’에 있어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의 주체적인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거죠. 그런 원칙을 거스르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습니다.”

공동체 라디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다. 그는 “사회 부조리를 겪으면서, ‘왜 주류 언론은 힘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보도하나’하는 의문을 갖게 됐어요. 그러면서 가장 힘없고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주는 언론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지역에 밀착한 공동체라디오를 선택했습니다.” 장 PD는 지난 2011년 인턴을 거쳐 2017년 마포 FM에 정식 입사했다.

소수자 이야기 담아내는 창구 ‘공동체 라디오’ 지원 필요해

요즘 마포 FM 식구들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3월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진행하는 공동체미디어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4편으로 이루어진 라디오 다큐멘터리 ‘또 하나의 가족’을 제작하고 있어서다. 또 하나의 가족은 성소수자·비혼·다문화·한부모 가족의 이야기를 당사자들이 직접 전하는 각 30분 분량의 작품으로, 오는 11월 중 송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상과 인터뷰를 모두 담기로 했지만, 코로나19로 활동 반경에 제약이 생겨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출연자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소리와 직접 말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는다는 게 애초 계획이었어요. 예를 들면 성소수자 편에서는 퀴어 퍼레이드 현장 소리를 따고, 이주민이 일하는 공장에 가서 일상을 담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대부분 행사가 취소되거나 외부인 출입금지가 되면서 생생한 소리를 담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출연자와 교감하면서 이들이 겪는 일상을 인터뷰나 이야기 재구성으로 녹여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차별은 물론 사람으로서 겪는 기쁨이나 슬픔, 어려움을 헤쳐나가려는 주체적인 모습까지 잘 담아봐야지요.”

가장 큰 걱정은 재정이다. 그는 “재정 문제로 힘을 잃어가는 공동체라디오 현실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했다. “지금은 약 7군데 지역에 공동체 라디오가 있는데, 이마 저도 열악한 재정 상황으로 숨만 붙어 있는 상태에요. 2005년 문을 열었다가 2009년에 사라진 나주FM이 5년을 못 버틴 게 모두에게 남 일이 아닌 상황입니다. 라디오 제작자들이 살아갈 최소한의 인건비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방송국은 그대로 있더라도 숙련된 인력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문제는 거의 유일한 수입원인 지자체 보조금이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들쑥날쑥하다는 것이다. 그는 “공동체 라디오를 지원해주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며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 체계가 절실하다”고 했다. “대부분 공동체라디오가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어요. 하지만 계속 제작자들의 희생과 사명감만으로 이어갈 순 없죠. 지역 행정을 감시하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공공성 있는 언론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 자리에서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근 관심을 갖는 주제는 기후변화다. “지역에서 시작된 기후변화 대응 움직임을 담기 위해 ‘에코 살롱’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입니다. 여러 사람과 힘을 모아 지역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알려보려고 합니다. 공동체 라디오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다 보면 계속 해나갈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문예준 청년기자(청세담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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