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엔 포함 66개 국제기구서 발 뺀다”…글로벌 다자협력 구조에 충격

유엔 분담금 22% 차지하는 미국의 이탈 선언, 기후·보건 등 글로벌 의 전반에 파장 예상
“유엔 분담금은 법적 의무”, “미국의 자책골”…국제사회 비판 잇따라

미국 백악관은 1월 7일(현지시간) 유엔 산하기구 31개와 비(非)유엔 국제기구 35개 등 총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거나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대통령 각서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유엔 정규예산 분담률 22%를 맡고 있는 미국이 대규모 지원 중단에 나서면서, 국제 다자협력 체계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 ‘미국 우선주의’ 방침에 따라 유엔을 포함한 66개 국제기구에서의 탈퇴·지원 중단 방침을 발표했다.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에 따라 유엔을 포함한 다수 국제기구에서의 탈퇴 및 지원 중단 방침을 공식화했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해당 기구 중 상당수가 미국의 주권과 경제적 경쟁력에 반하는 급진적인 기후 정책과 글로벌 거버넌스, 이념적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며 “미국 납세자들은 수십억 달러를 지출했지만 실질적 성과는 미미했다”고 밝혔다. 이어 “탈퇴를 통해 납세자 부담을 줄이고,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분야로 자원을 재배치하겠다”고 설명했다.

탈퇴 및 지원 중단 대상에는 기후변화 대응, 보건, 식량, 개발, 평화 구축 등 글로벌 의제를 담당해 온 주요 국제기구들이 다수 포함됐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15년 파리협약의 과학적·제도적 토대를 마련한 핵심 기구로, 현재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과 이행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UNFCCC는 국제 기후 협상의 틀을 제공하고, IPCC는 기후위기의 원인과 영향, 대응 경로를 과학적으로 평가해 정책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 왔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개발도상국의 모자보건과 성·재생산 건강, 여성과 청소년의 권리 증진을 담당해 왔으며, 세계식량계획(WFP)은 분쟁과 기후위기로 식량난에 직면한 지역에 긴급 구호를 제공해 왔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개도국의 무역·투자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유엔 평화구축기금(PBF)은 분쟁 이후 국가에서 정치·안보·개발을 연계해 평화 정착을 돕는 재원 역할을 수행해 왔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즉각 나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총회에서 승인된 유엔 정규예산과 평화유지예산 분담금은 미국을 포함한 모든 회원국이 유엔 헌장에 따라 부담해야 하는 법적 의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유엔은 아직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탈퇴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밝히는 한편, 미국이 지난해 유엔 정규예산을 전혀 납부하지 않아 현재 체납액이 약 15억 달러(약 2조1900억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시몬 스티엘 UNFCCC 사무총장은 이번 결정을 “자책골(colossal own goal)”에 빗대며 “산불과 홍수, 초대형 폭풍, 가뭄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세계적 리더십과 기후 협력에서 미국이 물러나는 것은 결국 미국 경제와 일자리, 생활 수준에만 해를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후퇴는 미국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고 경제적 번영을 저해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네스코(UNESCO)에 대한 지원 중단을 선언한 바 있으며, 유엔 분담금 납부에서도 전면적 참여 대신 ‘선별적 선택’ 방식을 취해 왔다.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기구와 사업에는 참여를 유지하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는 활동은 배제하는 방향으로 조정해 온 것이다.

미국의 국제기구 탈퇴·지원 중단 선언으로 기후·보건·식량·개발·평화 등 글로벌 공공재를 지탱해온 다자협력 체계 전반에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UNICEF

이번 발표가 파장을 키우는 이유는 국제기구 내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재정적·정치적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엔 정규예산 분담률은 상한선인 22%로 책정돼 있으며,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분담금도 2025년 기준 26.15%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크다. 지원 중단이 현실화할 경우, 그 공백은 다른 공여국이나 민간 부문, 현장 NGO로 전가되거나 재정 여력이 취약한 국가들에서 보건·인도적·개발 서비스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자주의의 작동 방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된다. 다니엘 포티 국제분쟁그룹(ICG) 유엔 담당 국장은 AP통신에 “미국식 다자주의 접근법이 ‘내 방식이 아니면 나가라’는 형태로 굳어지고 있다”며 “국제 협력을 워싱턴의 조건에 맞춰 재구성하겠다는 매우 분명한 구상”이라고 말했다.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넬라 앤더스 정책담당관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공동 노력이 근본적으로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탈퇴 선언이 곧바로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국제기구마다 탈퇴를 인정하는 공식 절차가 있으며, 절차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회원국 지위가 유지된다. 태평양지역 환경프로그램 사무국(SPREP) 역시 “탈퇴에는 정해진 절차가 필요하며, 그 전까지 미국은 회원국으로 남는다”고 밝혔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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