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76)씨는 1년 전 길을 지나다 우연히 음식점 ‘라떼는 집밥’의 구인광고를 봤다. 코로나19로 집 안에만 있어 답답하던 차였다.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70세를 훌쩍 넘은 자신을 누가 써줄까 싶었지만 일단 지원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합격이었다. 김영숙씨를 더 놀라게 한 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직원들이 한둘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24년 100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고령자 돌봄과 일자리 문제는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라떼는 집밥’은 어르신들의 재사회화를 돕기 위해 설립된 동명의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평균 나이 73세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라떼는 집밥’을 지난달 25일 방문했다.
다시 세상 밖으로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2시. 음식점에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반찬은 무말랭이와 오뎅볶음, 콩나물국. 2020년 문을 연 ‘라떼는 집밥’에서는 손님들이 진짜 집밥 먹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매일 국과 밑반찬을 다르게 준비한다.
“2004년 서울 강북구 지역의 고령층을 대상으로 시작한 ‘반찬 나눔’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몇 년 동안 반찬을 배달해도 ‘그냥 집 앞에 놓고 가라’고만 하고 얼굴 한번 안보여주는 어르신들이 많았습니다.“ 김성희(55) 라떼는 집밥 사무국장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된 어르신들을 다시 밖으로 불러내기 위해 식당을 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고령층엔 모든 메뉴를 5000원에 판매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르신들은 주민센터와 복지센터 등의 지원을 통해 더 저렴한 가격에 음식점을 이용할 수 있다.
“혼자 있으면 같은 반찬을 며칠씩 먹지. 요리하기가 힘드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가족이 나에게 이렇게 해줄까 하는 생각도 들어(웃음).”
최태자(80)씨는 일주일에 한번씩 ‘라떼는 집밥’에서 식사를 한다. 혼자 생활하는 최씨에게 이곳은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다. 직원들과 안부를 주고받고 대화도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는 공간이다. 협동조합을 통해 알게 된 또래 어르신들과 이곳에서 모임을 갖기도 한다. 김성희 사무국장은 “라떼는 집밥이 음식점을 넘어 어르신들의 소통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평균 나이 73세
주문이 들어오자 ‘오렌지’가 식당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릇을 설거지하고 떨어진 밑반찬을 채워 넣는다. 조리장 보조로 일하는 김영숙씨는 ‘라떼는 집밥’에서 오렌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가게에 근무하는 직원 4명의 모두 김씨처럼 별명이 있다. 라떼는 집밥의 조리장을 맡고 있는 이춘원씨는 ‘올리브’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나이에 대한 편견을 깨고 수평적 구조로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내일 모레 90살인데 누가 날 써주겠어. 그런데 여기선 일도 하고 나처럼 혼자 사는 노인들까지 도울 수 있으니 좋지.” 홀 세팅과 서빙을 맡고 있는 직원 김형수(89)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직원 외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하는 직원들도 여럿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매일 출근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일주일에 두 시간씩 가게에 와서 자신이 잘하는 반찬을 만들고 가는 식으로 일한다.
김성희 사무국장은 “서비스 대상자와 지역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고령층이 아닌 중장년층의 고독사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을 위한 교육과 재사회화와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에요. 또 강북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지역의 특성에 맞는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한명현 청년기자(청세담14기)